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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500원 커피, 누군가에겐 눈물의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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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500원 커피, 누군가에겐 눈물의 가격이었다”

커피 한 잔의 파격, 그 뒤에 남겨진 소상공인의 현실

최근 백다방의 500원 아메리카노 할인 이벤트가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 환호성 이면엔 숨죽인 탄식도 존재했다. 커피 산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식품 전문기자로서 이 현상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최근 백다방 할인 관련 SNS를 살펴봤을 때 할인 행사 현장을 담은 게시물에는 매장 앞에 줄지어 선 인파와 북적이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포착됐다.

반면 같은 동네 주변 카페의 빈 테이블 사진도 함께 공유되며 극명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실제 댓글에서는 “점심 피크타임 손님 다 뺏겼어요”, “매출 45만 원에서 7만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오늘 매출 보고 눈물 났다”는 등 주변 자영업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많은 이용자들이 이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백다방의 할인은 소비자에겐 ‘혜택’일지 모르지만 주변 상권과 가맹점주들에게는 부담이자 생존의 위기였다.

무엇보다 이 행사가 ‘더본코리아의 쇄신과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그 상생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되묻게 된다.

정말 ‘상생’했는가? 점주? 직원들은? 옆 가게 사장은?

백다방 가맹점주들에게는 밀려드는 주문에 얼음과 원두가 동나고 하루 수백 잔의 주문을 감당하느라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부 매장은 조기 마감이라는 ‘비상조치’까지 했다. 이벤트 후 찾아온 것은 매출보다 탈진이었다.

또한 커피 장비의 소모는 단순한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다.

카페 장비 전문가들은 짧은 시간 내 과도한 추출이 커피머신에 과열을 유발하고 그라인더 날에 비정상적인 마모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커피 그라인딩 시 발생하는 열은 커피의 향미 손실뿐 아니라 기계 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보상이나 점주의 수리 부담에 대해 더본코리아가 언급한 바는 없다. 이벤트 전후로 커피머신과 그라인더 무상 점검 프로그램을 운영해 장비 예비 점검과 후속 점검이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할인을 통한 ‘브랜드 충성도 회복’은 본사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은 가맹점과 지역 소상공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른바 ‘상생’을 이야기한다면 차라리 500원 할인보다 더 의미 있는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원두 납품가 할인, 얼음 공급 비용 지원, 또는 일시적인 수수료 감면 등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본사와 점주 간의 ‘공존의 방식’ 아닐까?

실제 한국 카페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4년 기준 전국 카페 수는 약 9만 9000곳으로 편의점보다 많지만 평균 영업이익률은 5% 남짓에 머문다.

원두·우유 같은 원재료 가격이 2년 새 20% 이상 올랐고 인건비와 공과금, 배달 플랫폼 수수료까지 치솟으면서 고정비가 빠르게 증가했기 떄문이다.

그사이 대형 프랜차이즈와 개성 있는 개인 카페가 동시에 늘어 ‘과밀 경쟁’이 일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정도의 프랜차이즈가 초저가 할인 카드를 꺼내 들면 영세 카페들은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이벤트가 진정한 ‘상생’을 표방하려면 방향이 달랐어야 한다.

이번 백다방 사례는 단순한 마케팅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프랜차이즈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단순한 ‘싸게 팔기’가 아닌, 함께 오래 가기 위한 시스템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00원짜리 커피가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눈물의 원가를 함께 나누는 책임감이다.

500원짜리 커피는 잠시 달콤했을지 몰라도 남겨진 쓴맛은 길다. 할인 이벤트가 ‘상생’이 되려면 값이 아니라 가치와 부담을 함께 나누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더본코리아가 원재료 지원, 로열티 탄력제, 장비 유지보수 프로그램 같은 정책적 백업을 마련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커피산업은 이미 양적 포화를 넘어 질적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더 싸게 파는 기술이 아니라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파는 철학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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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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