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진정한 글로벌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와 헌신을 정직하게 기억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예우할 수 있는 성숙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교육, 언어, 의료, 독립, 문화의 바탕에는 자발적으로 이 땅에 와서 조용히 헌신한 외국인들의 발자취가 깊게 새겨져 있다. 이들을 단순히 선교사, 방문자, 의인으로만 기억하기에는 그들의 기여가 너무 크고 깊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합당한 예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립 외국인 묘지 조성과 국제예우제도 확립’이라는 세 번째 국가 전략의 핵심이다.
‘뉴코리아 8대 전략’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 협력강국, 품격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 계획이다. 첫 번째 전략이 우리의 민주주의 유산을 세계적 자산으로 승화시키고, 두 번째 전략이 산업화를 이끈 실천의 유산을 제도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세 번째 전략은 한국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을 국가적으로 예우함으로써 우리의 도덕성과 미래 정체성을 바로 세우자는 제안이다.
한국 개화기의 문을 연 관문이 인천항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 당시 외국인들이 조선 땅을 처음 밟았던 곳은 한강을 따라 올라와 도착한 마포나루와 양화진이었다.
이곳은 동양과 서양, 지방과 수도, 내륙과 해양이 교차하던 실질적인 국제무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지였고, 그 핵심에 오늘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자리하고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나란히 위치한 이 묘지는, 조선 말기부터 한국 현대사 초기까지 이 땅을 위해 살다 간 외국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박사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단지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언어학자일 뿐 아니라, 조선 민족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를 외부에 알린 인물이자 실천가였다.
헐버트 이전에는 조선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한글의 과학성과 체계성, 문화사적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유교 질서 아래에서 글은 곧 한문이었고, 백성을 위한 글자인 한글은 하급 문자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에 헐버트는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민족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입증하는 자산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띄어쓰기를 도입한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제작했고, 서구 학계에 한글을 체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단지 문자 이상의, 문화적 자존감의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나아가 그는 1899년 6월 미국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에 ‘코리안 인벤션스’라는 제목으로 한글과 함께 거북선, 금속활자, 현수교, 폭발탄(비격진천뢰) 등을 조선이 만들어낸 ‘5대 발명품’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내는 물론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는 조선 사회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 고유의 과학 문명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분석이자 재조명이었다. 그 순간, 자기 나라의 유산조차 하찮게 여기던 조선인들에게 헐버트는 조선이 결코 후진국이 아니며, 위대한 문명사적 전통을 지닌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당시 한국은 민족의 기운이 바닥을 치고, 지식인들조차 자조와 좌절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헐버트는 오히려 한민족이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고, 그 정신과 문명이 절대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를 단순한 민중 시위로 보지 않고 ‘3.1혁명’이라 명명했다. 그것은 조선 민중의 정신과 가능성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을 상징한다.
그는 끝까지 한국을 지켰고, 마침내 한국에 묻히기를 택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니라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우리 민족보다도 우리 민족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한 외국인의 깊은 헌신과 신념이었다.
그의 한민족에 대한 헌신은 두 개의 훈장을 통해 분명히 증명된다. 헐버트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과, 문화 발전에 공헌한 이에게 주어지는 문화훈장을 모두 받은 유일한 외국인이다.
주목할 점은, 이 두 훈장을 모두 받은 사례가 한국인 가운데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안중근이 “내가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도 헐버트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를 이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조선, 그 누구도 평가하지 않던 조선의 유산, 그 누구도 믿지 않던 조선의 미래를 끝까지 신뢰하고 세상에 증명해낸 인물이 바로 헐버트였다.
어쩌면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한글이 아닌 한문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 잊어버렸던 민족적 자긍심과 문명의 뿌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 그것이 헐버트가 한민족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그는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를 대신 기억해준 사람이었다.
이처럼 조선을 위해 싸운 외국인은 또 있다.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은 영국 언론인으로, ‘배설’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양기탁과 함께 일제의 침략을 날카롭게 고발하며 언론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그는 일본 헌병대의 고문 후유증으로 30대에 요절했고, 그가 묻힌 묘비 앞에서 시인 이은상은 “청춘에 배를 띄워 유록국토(有緣國土) 찾은 것이 불행히 이 땅이라…”는 시를 바치며 그의 헌신을 기렸다.
또한 양화진에는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라는 두 위대한 선교사가 잠들어 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조선 청년들에게 근대 교육의 문을 열었고, 성경 번역과 한글 교육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조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선교사 이상의 사명을 감당했으며, 선교 출장 중 해상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언더우드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이자, 한글 성경 번역과 조선어 사전 편찬에 헌신한 교육자이자 학자였다. 그는 또한 기독병원을 세워 당시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데 힘썼다. 이 두 사람은 단지 종교인이 아니라, 이 땅의 교육과 보건의 토대를 놓은 조력자들이었다.

그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은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다. 한국 근대화의 출발점이자, 세계와 함께 만든 한국의 진정한 공동유산이다.
그러나 이 유산은 아직 국립의 품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적지로만 남아 있는 이 묘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국립 외국인 묘지로 지정하고, 보호·기념해야 한다. 그들의 공적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관을 마포 일대에 세우고, 기존의 소규모 시설에는 국고 예산을 지원하여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헐버트의 고향인 미국 버몬트 주, 베델의 고향인 영국 브리스틀과 같은 도시들과 문화·교육 교류를 확대하여, 이들의 업적을 함께 기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대상’과 같은 공식적인 시상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예우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54만여 명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약 4.9%를 차지하고 있다.
다문화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학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배제, 그리고 ‘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신화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외국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대우하느냐는 단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인가에 대한 미래 비전의 척도다.
글로벌 강국은 경제 규모나 기술 수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우리를 도운 이들을 어떻게 예우하느냐에서 비롯된다.
양화진을 국립 외국인 묘지로 만드는 일은 과거의 채무를 갚는 것이자, 미래의 품격을 쌓는 일이다.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세계에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았고, 그 고귀한 뜻을 후손들이 기억하며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뉴코리아 8대 전략’은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기억과 미래를 연결하는 국가 리디자인 전략이다.
그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예우, 역사에 대한 존중, 관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 산업화를 이끈 노동자, 이 땅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까지,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존재들은 이처럼 다양하고 풍성하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혼자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이들의 발자취를 기억한다면, 세계는 대한민국을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의 출발점은, 바로 양화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