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노동시간, 교육 현장의 민낯
노동조합 교육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상 기준 근로 시간이 얼마인가?"라고 질문하면, 가장 흔한 답변은 "하루 8시간, 주 52시간"이다. "현재 보편적인 제도는 주 몇 일제인가요?"라는 물음에는 한결같이 "주 5일제"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하루 8시간에 주 5일을 곱하면 52시간이 맞나?"라고 되묻는 순간 교육장은 잠시 술렁인다.
다시 묻는다. "근로기준법상 기준 근로 시간은 하루 몇 시간, 한 주 몇 시간인가?" 비로소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주 52시간은 무엇인가?" 이제 정답이 나온다.
"그건 오버타임, 즉 연장 근로를 포함한 것이다. 주 40시간 외에 사용자-노동자 간 합의가 있으면 최대 12시간까지 추가로 일할 수 있다."
그렇다.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일해야 하는 법정 기준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연장 근로는 선택적이고 한시적이며, '기준 근로 시간'이 아닌 '최장 근로 시간'의 일부일 뿐이다. 기준 근로 시간이 지켜질 때 노동자는 가족과 함께 먹고살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선진국이란 바로 그런 나라다.
'주5일제' 프레임이 남긴 제도적 혼선
정작 이렇게 중요한 기준을 노동자들조차 헷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출발점은 20여 년 전, 고용노동부가 주도한 '주 5일제'라는 표현의 확산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주 40시간제'라는 명확한 표현이 물타기 되고, '주 5일제'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대다수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주 5일제'를 곧 '주 40시간제'로 이해했다. 하지만 관료들과 법률가들은 다르게 해석했다. 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조항을 한 주(7일) 가운데 5일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보고, 나머지 이틀은 제외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법정 기준인 주 40시간제가 적용되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놓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주 5일제'는 '주 40시간제'가 되지 못했고, '주 68시간제'라는 괴물로 이어졌다.
기준 근로 시간 40시간 + 연장 근로 12시간 + 주말 근로 16시간(토·일 각 8시간) = 총 68시간.
이 사기극의 피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등 하층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했고,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현장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행정 해석 하나 바로잡지 못한 문재인 정부
'주 5일제'가 근로기준법의 근로 시간 조항을 단지 5일에만 적용한다고 해석한 것은 어디까지나 고용노동부 관료들의 행정 해석에 불과했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지시 한마디로 충분히 취소 가능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직권으로 바로잡지 못한 채 국회에 미루면서 근로기준법에 "1주는 7일"이라는 당연한 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마치 "1일은 24시간이고 1시간은 60분이다"는 상식을 법에 적시한 셈이다. 당시 필요했던 것은 잘못된 행정 해석을 장관이나 대통령의 직권으로 철회하고 연장 근로 시간의 실질적 단축을 추진하는 정치적 결단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근로 시간 문제는 '날 수'가 아니라 '시간 수'로 따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반복되는 혼란: '주 4.5일제'의 실체
최근 또다시 이런 혼선이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새 정부의 공약인 '주 4.5일제' 추진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하면서 주당 연장 근로 한도를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즉시 반박자료를 내며 "해당 내용은 국정기획위에 보고된 바 없고, 구체적 내용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계획에는 금요일 조기퇴근을 유도하는 시범사업과 '실근로 단축 지원법' 제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단축에 참여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의 '주 4.5일제' 보고는 표면적으로 보면 근로 시간 단축을 향한 긍정적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주 5일제' 혼란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주 4.5일제'라는 포장만 화려할 뿐, 실제 근로 시간, 특히 연장 근로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없기 때문이다.
'주 48시간제'와 국제 노동 기준
현 시기 대한민국의 시급한 과제는 '주 5일제' 혼란을 연상시키는 '주 4.5일제'라는 말장난이 아니라 '주 최장 근로 48시간제'라는 명확한 목표다. 즉, 현행의 주 52시간제(40+12)에서 연장 근로 한도를 8시간으로 줄여 기준 근로 시간 주 40시간에 이은 연장 근로를 8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정 최장 근로 시간을 유럽연합(EU)의 수준인 '주 48시간'으로 맞추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당과 고용노동부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국제 기준이 있다. 바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호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 창립과 함께 채택된 이 협약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을 근로 시간의 상한으로 설정했다. 1810년대 영국의 산업자본가 로버트 오언이 외쳤던 "8시간 노동, 8시간은 휴식, 8시간은 자기계발(8 hours labour, 8 hours recreation, 8 hours rest)"이라는 슬로건은 100년이 지난 1919년 ILO 협약 제1호를 통해 국제법으로 제도화되었다.
현재 ILO 187개 회원국 중 52개국이 협약 1호를 비준해놓고 있으며, 비준국 중에는 우리나라보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모자란 나라가 다수다. 입만 열면 세계 경제 10위, 세계 군사력 6위, 'K-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주 48시간' 협약을 비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주 40시간 협약 47호까지 비준해 놓았다. 주 40시간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15개에 불과하다. 주 40시간 협약을 비준한 대한민국이 주 48시간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웃픈' 현실을 끝낼 때다.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 참고해야
주 12시간에서 8시간으로의 연 장근로 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근로 시간 지침(Working Time Directive)'도 참고할 만하다. EU 지침은 1주 최대 48시간(연장 근로 포함)이라는 상한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야간 근로의 최대 8시간 제한, 매 24시간마다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 최소 4주 이상의 연간 유급 휴가, 주 1회 이상 최소 24시간의 연속 휴식 보장 등을 설정하고 있다.
지금 이재명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주 5일제'의 실패를 연상시키는 '주 4.5일제'라는 애매모호한슬로건이 아니다. 연장 근로 시간의 실질적 단축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ILO 협약 제1호를 비준하고, 근로기준법상 연장 근로 한도를 주 12시간에서 주 8시간으로 명확히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주 4.5일제'와 '실근로 단축 지원법'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근로 시간 단축 의제를 물타기 하지 말고, 근로 시간 단축 문제는 날(일) 수의 계산에 앞서 시간의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주 최대 근로시간 48시간' 체제를 근로기준법으로 확립해야 한다.
ILO 협약 제1호 비준과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시급
현재 노동시장 이중구조 상황을 고려할 때 '주 4.5일제' 논의는 상층 노동자를 위한 논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주 52시간제 → 주 48시간제'라는 연장 근로 시간의 단축은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새 정부 노동개혁의 성공은 하층 노동자에게 직접적 혜택을 줄 연장 근로 시간의 단축을 통한 총 근로 시간의 단축이 가능할 지 여부, 즉 협약 제1호의 비준을 통한 근로기준법의 개정 여부에서 판명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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