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보건복지부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돌봄통합지원법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 제정의 취지인 '지역사회 중심 통합돌봄체계' 구축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법이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마침 지난 4월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여러 우려가 제기됐다. 돌봄을 수행할 다양한 전문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를 비롯해 관련 예산 확보나 인프라 구축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 한 가지 원인으로 기본법인지 사업법인지 애매한 법의 성격을 지적하며,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불분명한 '면피용' 법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통합돌봄을 단순히 요양·의료 중심의 한정된 사업으로 좁히는 경향이나 지자체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문제, 그리고 행정 논리에 치우쳐 돌봄 주체인 지역주민들을 정책 설계 과정에서 배제하는 문제 등도 거론되었다.
장애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돌봄통합지원법 대상자에 포함되었지만, 정작 제도 논의 과정에서는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기존 장애인건강권법이나 활동지원법 등이 메우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 돌봄의 사각지대 문제를 개선하는 데 이 법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은 평등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이 큰 장애인들이 통합 돌봄 체계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동등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관점이 비중 있게 반영된 통합 돌봄 체계라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탈시설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장애계 내에도 탈시설에 부정적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탈시설은 흔히 오해하듯이 무작정 자립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론'을 내세워 시설을 유일한 선택지로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자 자립이 가능한 조건을 보장하라는, 인권에 기반한 정당한 요구인 것이다. 특히 시설 거주자 대부분이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시설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시설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얼마 전 울산 태연재활원 사건이 보여주듯이 시설이야말로 폭력과 학대의 위험이 더 큰 공간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족의 돌봄 부담이 가중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용적 돌봄체계 구축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머물지 않을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즉 시설 밖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일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시설은 장애인을 그저 돌봄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장애인 역시 자립생활을 통해 '자기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비장애인에 비해 자기 돌봄에 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어차피 그 누구도 홀로 자기를 돌볼 수 없는, 언제나 서로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지 않은가. 탈시설 운동은 각자도생 원리를 내면화한 채 폐쇄적인 '자기 돌봄'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저항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탈시설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비록 지난해 서울시 탈시설 조례가 폐지되는 퇴보가 발생하긴 했지만, 올해 2월 '장애인자립지원법'이 제정되며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 법만으로 모든 게 풀리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는 탈시설 시대를 열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시설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들로 인해 치열한 정치적 경합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시설 카르텔의 한 축인 천주교계에서 법안 폐지 시도가 있자, 탈시설 운동가 세 명이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 기존의 불평등한 역학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도록 동료 시민들의 더 큰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탈시설 운동이 건강권 운동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탈시설 사회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장애인 건강 불평등 문제도 완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시설화에 수반돼야 하는 장애인 의료 접근성 개선과 돌봄·건강관리 체계 강화,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해소 등이 모두 장애인의 건강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탈시설화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도전적이고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해석돼야 한다.
탈시설화를 위해서는 특히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연구자, 임상가, 실무자)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시설 체제를 유지하려는 논리와, 또 반대로 탈시설을 촉진하는 동력 모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된 장애인 서비스지원종합조사표는 '의학적 손상 정도'를 척도로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도를 15개 등급으로 재단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 장애인의 필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활동지원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의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의학적 기준이 활용되는 문제에 대해 보건의료계가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탈시설화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재택 의료지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법과 제도로는 복합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건강형평성학회와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가 공동 개최한 봄 학술대회의 라운드테이블 세션 '미래의 의료인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참여한 김신애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대표는 복합 중증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재택간호의 열악한 현실을 토로하였다.
"방문간호를 받은 적이 있는데 방문한 간호사들이 혈압은 잴 수 있지만 소독도, 설명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활동보조사들이 위루관 소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안에서 바깥으로 원을 그리면서 소독해야 한다고 말을 해도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나 역시 이런 부분을 입·퇴원을 반복하며, 간호사에게 혼나면서 배웠다. 연하재활 등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고만 들었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활동보조사에게 설명을 해도 교육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빨갛게 붓고 염증이 생기고 있다. 소독하는 부분만이라도 교육해 주면 안 되냐고 방문간호사에게 말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법적으로 안 된다고."(김신애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대표)
방문간호제도가 있지만, 의사의 방문간호지시서에 포함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에 가래를 빼는 석션이나 환부 소독, 소변줄·콧줄 교체 등 기본적인 의료 처치도 지시서에 없으면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6/21)부터 시행된 간호법은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을 뿐,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내용은 담기지 못했다. 또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이 수년째 시행되고 있지만, 의사들의 참여 저조로 큰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제는 탈시설을 갈망하는 장애시민들의 목소리에 보건의료계가 응답해야 할 때다. 복합 중증장애인도 안심하고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재택 돌봄·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연루되는 실천적 노력을 통해 탈시설 사회의 실현을 한 걸음 앞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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