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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정부'가 '제2의 촛불정부'가 아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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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정부'가 '제2의 촛불정부'가 아니려면

[장석준 칼럼] '땅'에 대한 '땀'의 승리를 약속하라

새 정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정부인 탓에 장관들도 새로 임명하지 못한 채 이재명 대통령과 대통령실 중심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3년 동안 줄곧 '정치' 자체를 방기했던 전임 대통령과 대비되다 보니, 대통령이 국무위원회를 내실 있게 주재하고 야당 대표를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 행보조차 반갑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만큼 새 정부, '국민주권정부'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그러나 기대가 커질수록 걱정도 깊어진다. 21세기 들어 경험한 두 차례의 범민주당 계열 정부가 남긴 쓰디쓴 기억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둘 다 개혁의 부푼 꿈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환멸과 좌절, 사회 전반의 보수화만 유산으로 남겼다. 다시금 등장한 더불어민주당 정부도 똑같은 길을 밟는 것은 아닌가. 많은 이들이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이재명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이참에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크게 실패한 대목들이 무엇이었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가까운 과거의 범민주당 계열 정부가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따져보면, 현 정부가 착수해야 할 일의 가닥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노이 노딜의 교훈 – 트럼프 시대는 '견뎌내야' 할 시간일 뿐

문재인 정부의 최대 패착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을 것이다. 아마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라 답하는 이들이 많을 테고, '검찰 개혁 실패'라 하는 이들 또한 이에 필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런 일들도 중대한 실책이었지만, 이른바 '촛불정부'의 실패를 결정한 요인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요인은 다른 데 있었다. 조국 사태나 검찰 개혁 논란 이전에 문재인 정부는 이미 개혁의 최적기를 놓친 채 목표 상실 상태에 있었다. 내가 보기에 결정적 요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전 역량을 쏟아 붓다시피 한 남북미 협상과 그 실패였다. 2017년부터 2019년 초까지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했던 북미 대화 주선과 평화 정착 노력이 '하노이 노딜'이라는 실망스러운 결말로 끝나버린 다음부터 문재인 정부는 목적지 없이 헤매는 난파선 신세가 됐다.

참으로 비극적인 것은 남북미 대화와 평화 정착이 실제로 모든 것을 걸만한 과제'임에 틀림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전력을 경주한 결과로 획기적인 남북 교류와 평화 국면이 열렸다면, 한국 사회 분위기 전체가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한반도 긴장이 풀린다고 하여 불평등이나 기후위기 대응, 저출생-고령화나 지역 소멸 같은 산적한 문제들까지 덩달아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런 문제들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들이 지금보다 힘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촛불 개혁'을 지지했던 다수파 연합('촛불시민연합')이 웬만한 충격쯤은 견뎌내며 지속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잘 알았기에 남북미 대화에 판돈을 모두 걸었다. 그 시점에는 이런 결정을 내릴만한 판단 근거도 없지 않았다. 1기 트럼프 정부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의 정체는 아직 모호했다. '극우 포퓰리즘'이라 할 만한 내용을 선동하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더 나쁜 세상(파시즘)을 향한 추락의 시작인지 아니면 기존 도그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실용주의자의 등장인지 불분명하기만 했다. 북미 대화 초기에 트럼프는 후자의 가능성을 체현하는 듯 보였고, 그래서 남북미 교섭에 전력투구하기로 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을 마냥 힐난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도박은 도박이었다. 2년의 시간을 쏟아 부은 결과가 결국 '노딜'로 판명나자 이제까지 남북미 대화를 둘러싸고 쏟아졌던 기대와 낙관은 고스란히 실망과 반감으로 반전됐다. 나는 대화가 한창이던 무렵 거리 곳곳에 걸렸던 "평화가 민생이다", "평화가 경제다"라는 더불어민주당의 표어를 기억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평화'가 손에 닿을 수 없는 목표로 다시 멀어지자 이 야심찬 구호는 '민생', '경제' 모두 비어 있다는, '평화'에 올인한 정부-여당에 의해 '민생'이든 '경제'든 버림받고 말았다는 당혹스러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당혹감을 밑에 깐 채 문재인 정부 후반기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5년 넘게 지난 뒤, 이제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다시 트럼프 정부다. 2019년에 불발된 원대한 기획에 재착수할 기회가 온 것일까? 조금이나마 기대를 담아 이런 물음을 던진다면 새 정부 역시 대실패의 길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슬프지만 이게 엄연한 진실이다.

2기 트럼프 정부는 1기 트럼프 정부와 또 다르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아직 반년도 못 채운 임기 동안 그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나라 안에서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으며, 나라 밖에서는 이스라엘 극우 정부에 휩쓸려 또 다른 위험천만한 전선(이스라엘+미국 대 이란 전선)을 열었다. 2기 트럼프 정부를 움직이는 세력이 모종의 파시즘으로 나아가려는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건설적인 미래 청사진도 없이 과거 미국의 오류를 더 무참하게 반복할 뿐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도대체 뭔가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함께 거사를 도모할 상대가 결코 아니다.

이런 전 지구적 형세 속에서 2017-19년에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를 둘러싸고 큰 판을 열려는 시도는 절대 금물이다. 한창 협상을 벌이던 상대국에게 느닷없이 공습을 가하는 사람이 지금 미국 대통령이다. 이런 사람이 제국의 권좌에 앉아 있는 시대에는 차라리 한반도가 최대한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만드는 게 상책이다. 어설프게 남북미 대화 등에 기대를 걸어봐야 참사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는 그저 최악만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물며 "평화가 민생이다", "평화가 경제다" 같은 구호는 꺼낼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평화는 항상 그 자체로 소중할 따름이다.

▲ⓒUS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Summer soiree on the South Lawn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on Wednesday, June 4, 2025. Trump and Republican senators discussed ways to scale back the $40,000 state and local tax deduction cap in the House version of the president's tax-cut bill, Senate Majority Leader John Thune said. Photo by Eric Lee/UPI

부동산 문제에 대응하려면 부동산 정책 이상이 필요하다

하노이 노딜 같은 극적 광경을 수반했던 남북미 대화와 달리, 문재인 정부 내내 일상 속에서 꾸준히 정부의 발목을 잡은 좀 더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다. 바로 부동산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그랬듯이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서울 강남, 수도권, 광역시 순으로 아파트 값이 계속 급등했고, 그럴수록 부동산을 둘러싼 민심은 분열했다. 덩달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다수파 연합 역시 허물어졌다. 자기 집값이 오른 이들은 오른 가격을 유지하려고 지지를 철회했고(반대당으로 갈아탔고), 집값 상승을 초조하게 바라본 이들은 그게 못마땅해 또 지지를 철회했다.

한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부동산 유령이 다시 출몰하고 있다. 강남구를 시작으로 한강변에 자리한 서울 각 구에서 최근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는 중이다. 마치 범민주당 계열 정부가 들어서면 아파트 값이 상승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다는 듯이 부동산 시장에서 무자비한 집단행동이 다시 시작됐다. 이러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전국으로 확산됐던 문재인 정부 시절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싶다.

결코 그래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더욱 깊이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경기와 상관없이 자산 가격만 고공 상승하는 상황은 어떤 경제이론을 들이대더라도 문제없다고 진단하거나 변호하기 힘들다. 미래의 파국을 막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하루빨리 이 상황을 진정시켜야 하며, 새 정부에게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광장' 세력은 지금 무엇보다 이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재연하지 않기 위해 꼭 확인해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서는 부동산 정책에만 시야를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세부 조율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논쟁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히 세공된 부동산 정책이라 하더라도 부동산 정책을 넘어선 더 커다란 개혁 정책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기대만큼 효과를 보기 힘들다.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니, 무슨 말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땀'이 '땅'보다 위에 있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땅'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누리는 계층을 가리키며, '땀'은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등 모든 일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땀이 땅보다 위에 있다는 것은 곧 불로소득계층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여러 산업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뜻이며, 이런 산업 활동의 장려를 통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땅이 땀보다 위에 있다. 땅이 땀을 지배하며 수탈한다. 다량의 토지, 건물, 주택을 보유한 불로소득계층(제1계층)이 아파트 값의 지속 상승을 고리 삼아 '똘똘한 한 채' 이상을 보유한 계층(제2계층)을 끌어들여 강고한 '땅' 동맹을 형성한다. 그리고 '똘똘한 한 채' 이상 보유 계층에 합류하길 갈망하는 계층-세대(제3계층)가 이 '땅' 동맹의 움직임에 동참하면, 주기적으로 아파트 값을 폭등시키는 집단행동이 발발한다. 이 세 계층의 상호 상승 작용을 통해 아파트 시장이 들썩이고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전개된다.

▲최근 급격한 서울 집값 상승으로 서울 평균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비율)은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23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에 붙은 전세 매물 안내문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이날 부동산R114가 서울 25개 자치구 아파트 157만가구의 평균 가격을 표본 삼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평균 전세가율은 45.2%로 2017년 1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강남 3구는 30%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이런 계급-계층 역학을 감안하면,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제3계층의 부동산 집단행동 동참을 제어하고 이를 통해 제1계층의 동원력과 지배력 행사를 최소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땀이 마침내 땅에 승리할 것이라고 제3계층과 예비-제3계층을 설득해내야 한다. 굳이 '땅' 동맹에 가담하지 않아도, 땀의 승리를 보장하는 다양한 공공 정책을 통해 안정된 삶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이런 목표는 좁은 의미의 부동산 정책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조세와 금융 규제, 공공 공급 확대 등의 부동산 정책조합을 통해 '땅'의 수익을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러 정책을 통해 '땀'의 권익을 늘려야 한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고 고용을 안정시켜야 한다. 자산 시장이 아니라 산업 투자에 돈이 돌도록 만들어야 한다. 돌봄 사회의 요청에 맞게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을 지역 회생 전략과 결합시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이것들은 분명 부동산 정책은 아니지만, 땅에 대한 땀의 승리를 약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통해서든 부동산 정책과 노동, 산업, 복지, 지역 정책의 결합을 통해서든 땀이 땅을 이길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설득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땅' 동맹은 더욱 확대되고 견고해지기만 했다.

그럼 이재명 정부는 어떠한가? 아직 부동산 대책이 정리돼 나오지는 않았고,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 중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비롯해 땀의 승리에 기여할만한 정책 요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정책 요소들을 하나로 잇는 관건적 역할을 할 조세 정책의 방향이 오래 전부터 감세 쪽으로 굳어진 것은 아무리 봐도 불길하기만 하다. 부동산 대책 안에 부동산 불로소득 제어의 정공법인 증세가 빠질 것이라는 말이 계속 흘러나오니, 벌써부터 감이 안 좋다. 혹시 우리는 '땅'의 독재를 더욱 굳혀줄 '세 번째' 실패와 마주하고 말 운명인가?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했다지만,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국면이다. '광장'이 할 일이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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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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