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얼마 전 '캡틴따거'라는 유튜버의 중국 여행 영상을 봤다. 이 여행 유튜버는 숙소로 가는 길에 택시비를 현금으로 내도 되냐고 물었고 기사님은 된다고는 했지만, 실은 현금을 받으면 지금 쓸 수 있는 데가 없다고 했다. 지금 중국은 오지에서조차 현금을 받지 않아서 알리페이 전자결재를 통해서만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VISA' 카드조차 잘 쓸 수 없었던 중국이었다. 그런데 기업에서 출시한 결제 수단을 통해서만 지불가능한 중국이라니!
그 영상을 한참 바라본 건 한국에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돈가스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종업원에게 현금으로 결제해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내가 하면 안 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송구스럽다. 행여라도 거슬러 줄 돈이 없다는 얘길 들으면 얼른 휴대전화의 은행 앱을 켜고 송금해 드릴 계좌번호를 물어본다. 불러준 계좌번호를 누르고 이름을 확인한 후 비밀번호를 누르고 송금 완료가 뜬 화면을 보여준다. 그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종업원분은 다른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러 바삐 간다. 나는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으로 그 돈가스집을 나온다. 단지 내가 먹은 돈가스를 현금으로 결제하려고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 '현금 없는' 사회
2021년 10월부터 일부 구간에만 시행되고 있는 '현금 없는 버스'는 서울시를 비롯해 22년 10월 옥천, 23년 7월 인천, 25년 4월 대구와 광주, 24년 9월 세종시, 24년 10월 제주 모든 노선, 25년 1월 광양 등 수많은 지자체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경기도도 최근에 뒤를 이었다. “버스요금, 카드로만 받습니다. 현금은 사양합니다” 슬로건을 걸고 5개 노선부터 오는 7월에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현금 없는 버스를 마치 '누가 누가 먼저 하나' 내기라도 걸린 것처럼 시작한다.

사실 수도권은 환승 때문이라도 현금보다는 카드 결제가 시민에게 더 유리하다. 그래서 대부분 어떤 종류로든, 카드로 지불한다. 그럼에도 카드를 이용하지 않거나 못 할 때, 현금 없는 버스에선 현금이 있어도 굳이 계좌이체를 하거나 그것도 할 수 없다면 내려야 한다. 성남에 사는 친구가 임시로 운영되던 9000번 버스를 현금을 내고 타려고 했다가 기사님이 잔돈이 없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기사님께 원래 가능하지 않냐고 말했고, 그러면 가능한 차를 타라고 해서 결국 차에서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 그도 기사님께 현금 승차를 요청하는 동안 다른 시민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돼버린 데다, 내려서 버스 문이 닫히는 걸 봐야 했다. 그는 지갑에 있는 현금으로 버스를 타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다. 아마도 처음 교통카드로 버스를 탈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의 의도는 시민들의 편리였을 텐데, 어느 사이에 그게 축적되고 나니 카드나 계좌이체만 가능하며 이 외의 것들은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현금을 이용하는 이들은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게 당연해졌다. 편리하려고 만든 시스템이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를 축소하고 시스템에 맞춰서 인간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하면 과장일까?
현금 없는 사회는 당연한가
작년에 대만과 일본에 갔을 때도 버스에서든, 가게에서든 현금과 카드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여행했었다. 물론 어떤 가게에선 현금만 가능하다고도 한 적이 있었지만, 특히나 대중교통 이용할 때 한 번도 현금이든, 카드든 결제할 때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은행의'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현금 사용하는 비율이 오스트리아(61.6%)·이탈리아(60.6%)·스페인(57.4%)·독일(53.3%)·프랑스(43.1%)이며, 40개국 중 한국은 현금 사용 순위가 29위라고 한다.
특히나 최근에 독일을 다녀온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독일도 어떻게든 디지털화하고 싶은데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독일 교통티켓은 카드 혹은 계좌와 연동해 구독하는 방식인데, 계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들을 위한 지원센터를 만들어 지원센터 명의로 계좌나 카드를 개설해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즉 현금으로 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떡해요' 하면 방법을 찾아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떡해요' 라고 하면 또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배제되는 사람이 없게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왜 독일은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일까? '안 되면 어쩔 수 없죠'라며 버리는 방식의 제도에 익숙한 나는, 국가 시스템이 시민에게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공공기관이 신경 쓴다는 그 이야기가 어쩐지 어색했다. 현금은 우리 경제활동에서 지불수단이자 기초이다.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재화나 용역에 대한 지불 대가로 채택하는 건 현금이다. 이 기초에 더해 카드가 추가되고 '페이'도 가능하다. 현금을 지불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무언가를 구매해서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게 나만 이상한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현금 없는 버스를 반대한다
결국 '현금 없는 버스'에서 수치감과 당혹감 사이의 감정을 수차례 느낀 그 친구는 지난 5월 12일에 이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인권위는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아니며 이용 불편에 불과하다'는 위원들의 판단으로 사건을 각하했다. 이 결정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 이 '자연스럽지만 어색한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자고 얘기했다.
연속 기고는 이 글을 포함해 총 여섯 차례 이어질 예정이다. 2회 차에선 현금결제가 되지 않는 버스 정책의 확산과 문제점을 짚어 보고자 하며, 3회 차는 지방정부들이 공공서비스에서 현금결제를 막는 사례를 살펴보고, 4회 차에선 현금이 뺏기면 기본권이 뺏기는, 우리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5회 차에선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해외에서의 현금 결제 쟁점과 왜 그들은 여전히 현금 결제가 가능한지를, 6회 차에선 현금 없는 사회의 위험성과 기본권의 하나인 현금 결제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금 없는 사회가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인권위의 결정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신용불량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할 때, 농협과 우리은행은 은행 거래를 할 수 없는 수급자에게 실업급여 지킴이라는 계좌를 개설해 준다. 고용노동부가 금융거래하기가 어려운 실업자들에게 안심하고 공공 서비스를 받으라는 취지로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현금 없는 사회는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일 거라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정책도 함께 입안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당신이어도 당연한지를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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