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테오의 부인 요 반 고흐 봉어르는 빈센트에게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아기는 분명)이쁜 아들일 것이고, 아주버님이 대부가 되어준다면 아이 이름을 빈센트라고 부르려 합니다"
1890년 1월 31일 아기가 태어났다. 그때 그녀는 몰랐겠지만 빈센트는 <아몬드꽃>을 완성해두었다.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기 시작한, 조카를 위한 그림이었다. 작품은 5월 초 도착하는데, 빈센트가 침실에 걸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거실 피아노 위 눈에 잘 띄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걸린다. 훗날에는 요가 어린 빈센트와 함께 지낸 침실에 걸었다.
그래서 책 장정은 <아몬드꽃> 그림이 차지했다. 책 이름은 시아주버니 빈센트와 아들 빈센트를 위한 <빈센트를 위해>가 됐다. 원제가 더 정확하다. <모든 것, 빈센트를 위해 Alles voor Vincent>. 그렇다면 테오는 어디갔을까. 이 모든 것은 테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거기에 가려진 '여자의 일생'.
지금까지 우리들의 관심은 "빈센트와 그의 동생 테오였고, 테오의 미망인 요는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주목받을 자격이 있었다. 빈센트가 사망 후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그의 작품이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상당 부분 요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이 일대기는 요의 꺾이지 않는 의지, 아낌없는 헌신, 놀랍도록 다층적인 그 인생을 다룬다."
빈센트가 세상을 떠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요가 털어놓았다.
"아주버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테오에게 내 이야기를 하셨대. 'elle ne connaissait pas cette tristesse là(그녀는 이 슬픔을 몰랐어).' 나는 그 말이 계속 생각나. 처음에는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이해 못했는데 이젠 알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1891년 1월 25일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1914년 4월, 요는 테오의 시신을 오베르쉬르우아즈로 옮겨 빈센트 옆에 나란히 묻는다.
이후 요는 테오가 직접 하고자 했던 빈센트의 미술 알리기라는 과업에 전념한다. 더불어 예술이 대중을 고양시킨다는 사회주의 관점을 지지하며 작품들을 많은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게해서 빈센트 반 고흐는 역사가 됐다. 역사의 달빛에는 요가 반사된다. 우리 모두는 요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한다.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필독서로 삼아야한다.
방자하게 선언하자면 올 여름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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