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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예능 야구' 품에 안긴 이종범 '클러치 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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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예능 야구' 품에 안긴 이종범 '클러치 에러'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득보다 실이 많은 '예능 야구' 진흙탕 싸움

2년 전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강야구가 프로야구 흥행에 큰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JTBC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를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당시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이후 접한 <최강야구>는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실제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주고받는 내밀한 대화와 야구에 달관한 듯한 명장 김성근 감독의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선수들의 진지한 재도전과 성공을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이 보기 좋았다. 이들이 만드는 서사는 야구를 넘어 하나의 '휴먼 스토리'로 느껴졌다.

아울러 실제 프로야구 경기의 퀄리티나 국제대회 성적 같은 경직된 성과만이 팬덤을 확장시키는 절대적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최강야구>가 일깨워줬다. 시청률 3%대를 기록하는 '예능 야구' 프로그램이 보여준 힘이다. 야구는 스포츠지만 팬덤은 일종의 트렌드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시즌 도중 KT를 떠나 최강야구로 향한 이종범

지난 2022년 <최강야구> 시즌1에서 감독 역할을 맡았던 이승엽은 그해에 두산 베어스 지휘봉을 잡게 됐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선수였지만 지도자 경험은 전무한 '초보'라는 점에서 다소 의외의 결정이었다.

<최강야구> 감독과 프로야구 감독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승엽은 성적 부진으로 지난 6월 2일 두산 감독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최강야구>와 프로야구의 첫 번째 트레이드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이승엽 감독의 자진사퇴 이후 세간에서는 그가 다시 <최강야구>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돌았다. 당시 <최강야구>를 제작했던 장시원 PD는 JTBC와의 프로그램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기존 출연진과 함께 <불꽃야구>라는 새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JTBC는 새로운 출연진을 구성해 <최강야구> 시즌4 준비를 시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뉴스가 나왔다. KT 위즈 코치를 맡고 있는 이종범이 <최강야구>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다. KT 관계자는 "이종범 코치가 <최강야구> 감독 합류를 위해 퇴단을 요청해 이강철 감독과 이에 대해 협의한 뒤 이 코치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현역 코치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그것도 시즌 중에 사임한 것은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치열한 순위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퇴단을 요청한 이종범 코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가 프로야구 코치로서의 책임감과 신의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광주일고 선배인 이강철 KT 감독이 새로운 자리 하나를 만들어 이 코치를 데려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최강야구> 제작진에 대한 비판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 이종범 코치가 소속한 KT에 양해를 구하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 팬들은 <최강야구>가 KT를 포함한 프로야구 팀과의 대결을 통해 인기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비판하고 있다.

<최강야구>는 주간 출연료가 3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 시즌에 40회 출연한다면 대략 1억2000만 원의 수입이 보장된다. 이는 프로야구 초임 코치가 받는 연봉보다 2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이종범이 지난 2012년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연봉이 5000만 원이었다.

물론 이종범 코치가 단지 돈 때문에 현장을 버리고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종범은 한화, LG, KT에서 코치와 2군 감독 생활을 했지만 아직 프로야구 1군 감독으로 선택 받지 못했다. 현역 시절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바람의 아들'의 지도자 생활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은 셈이다.

비록 프로야구 감독은 아니지만 그가 11번째 프로야구 구단을 표방하는 최강 몬스터스 감독직 제의를 수락했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예능이라고 프로야구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30일에 나온 이종범의 입장표명도 이를 뒷받침 한다.

▲ kt 위즈 코치로 활동하던 이종범 ⓒkt위즈

'득보다 실'이 많은 최강야구 vs. 불꽃야구

이종범은 "제 결정이 팀(KT)의 공백을 비롯해 야구계의 이례적인 행보로 비난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서도 "<최강야구>를 살리는 것은 한국 야구의 붐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JTBC는 "저작권 침해 사태로 (이종범 감독을) 촉박하게 섭외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구단과 프로야구 팬들에게 불편함을 드려 송구하다"고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최강야구>는 오는 9월부터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존 <최강야구> 제작 PD와 출연진이 나서는 <불꽃야구>와의 경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불꽃야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려고 했지만 JTBC측의 저작권 신고로 유튜브 방송이 중지됐었다. 하지만 SBS플러스가 불꽃야구와 계약을 맺고 지난 6월 22일부터 프로그램 생중계를 시작했다.

<최강야구>와 <불꽃야구> 가운데 어느 프로그램이 승자가 될지는 모른다. 다만 이종범 감독 영입 파장으로 <최강야구>는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불꽃야구>는 기존 <최강야구> 출연진인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박용택, 이대호, 정근우 등 스포츠 예능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은퇴 선수들이 출연한다는 점이 강점이다. 지난 22일 생중계에서 전국 분당 최고 시청자 수 30만 6000명을 기록한 이유였다.

이종범의 말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최강야구>가 프로야구 흥행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포맷이 비슷한 <최강야구>와 <불꽃야구>의 경쟁은 두 프로그램에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출연진만 다른 두 판박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신선감보다는 식상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돌발적인 이탈은 프로야구 현장에 상처를 남김으로써 팬덤 확장이라는 예능 야구 프로그램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냈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실제 야구 경기와 유사하게 구성한다고 해도 예능의 목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청률로 경쟁하는 TV 프로그램은 매 경기의 치열한 승부와 그 결과로 경쟁하는 실제 야구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최강야구> 감독을 거쳐 두산 지휘봉을 잡았지만 실패한 이승엽이 그 차이를 보여줬다.

야구 예능은 프로야구의 보완재가 될 수는 있지만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 시즌 중에 코치 직을 사임하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바람처럼 달려간 이종범의 선택이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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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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