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수출하려다 배추에 걸렸네
몇 년 전, 나는 한국 인디게임을 핀란드 현지 게임 개발자들 상대로 플레이테스트를 하는 프로젝트에 관여한 적이 있다. "플레이테스트(playtest)"란 해당 게임이 잘 작동하는지, 개선점은 없는지 미리 테스트를 해보는 것을 뜻한다. 해외 시장을 노리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외국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플레이테스트를 해야 한다. 이 게임이 과연 외국 관점에서 봤을 때 재미가 있을까? 혹시 기술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잘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과 리소스가 부족한 중소 게임 스튜디오들은 해외에서 플레이테스트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관련 기관과 시민단체의 협력 하에 한국 인디 게임들을 몇 점 모아다가 핀란드 현지에서 내로라 하는 게임 개발 경력자들을 끌어 모아 플레이테스트를 해 보았다.
과연 핀란드 사람들은 한국 인디게임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플레이테스트 중 가장 많이 지적된 사항은 영어 지원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웬만해선 영어로 게임을 한다. 게임필리아의 "'홍길동전' 게임을 중국서 개발한다면? 왜 게임에 'Made in ( )'이 없나"편 참고.) 영어로 게임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한국어 팝업창이 뜬다든가, 번역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싶은 수준이라든가. 이 중엔 번역이 잘못된 경우도 종종 있었고, 때로는 한국 유행어나 농담을 영어로 직역하다보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중심적인 시스템이 원인이 된 케이스도 있었다. 게임을 카카오톡 계정과 연동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거나, 자세한 게임 정보를 알려면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라고 한다거나. (참고로 카카오톡과 네이버는 한국과 아시아권 일부 지역에서만 왕성히 쓰이는 플랫폼으로, 유럽에선 접속하는 것 조차도 오래 걸린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모 농사 경영 게임에 대한 지적 사항이었다. 귀여운 캐릭터들을 움직여 각종 농작물들을 심고 키워 판매해 포인트를 얻는 게임이었는데, 게임 자체로 따지자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플레이테스트 참가자 몇몇이 튜토리얼에서 헤매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니, 도대체 왜?
"배추 아이콘이 안 보이던데요?"
원인은 '배추를 심어보자' 미션이었다. 말 그대로 배추 아이콘을 화면에 끌어다 놓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 배추가 자라고, 그걸 수확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단순한 미션이었다. 그리고 이걸 통과해야 튜토리얼을 마치고 본격적인 게임 이용이 가능한 구조였다. 그러나 문제는 배추 아이콘 모양에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김치용 배추 모양의 아이콘인데…그걸 못 알아본 것이다. 아뿔싸.
"이게 배추라고요? 왜 배추가 길쭉하지? 아, 동배추인가? 그럼 이걸 클릭하면 되는 건가요?"
세상에는 뾰족한 배추, 넙적한 배추 등등 다양한 배추가 존재하지만, 보통 영어로 Cabbage라고 하면 유럽 사람들은 '양배추'를 떠올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서양'에서 봤을 때 '양'배추는 그냥 배추다. 그러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쭉한 배추는 이 동네 관점에서 봤을 때는 무엇이 될까? '동배추'가 된다. 영어로는 Napa cabbage 또는 Chinese cabbage. 핀란드어로 Kiinankaali (끼이나칼리)라고 불리며, 말 그대로 직역하면 '중국배추'다. 중국산 배추라는 것이 아니라, 옛날 옛적 '차이나(China)'란 단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역' 그 자체를 뜻하던 시절 굳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로 이 게임은 유럽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면 튜토리얼에서 '동배추를 심어보자!' 미션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거나, 아니면 배추 아이콘을 '양배추' 모양으로 수정했어야 한다.

여기까지 상황 파악이 되자 웃음만 나왔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든 게임이 정작 배추 모양 아이콘 하나 때문에 해외 시장 진출이 막힐 뻔했던 거다. 진작에 이런 플레이테스트를 안 하고 덜컥 게임을 해외 모바일 시장에 내놓았다고 상상해보라. 배추 때문에 '게임이 어렵네요', '튜토리얼 하다가 중간에 막혔어요'라는 리뷰가 달릴 뻔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 – '재미'를 어떻게 번역하나?
여러 플레이테스트 사례 중에서 유독 이 '배추 아이콘' 사건이 유독 내 기억에 남는 건, 게임을 다른 문화에 맞게 번역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지 여실히 드러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여타 문학, 예술작품 번역과 마찬가지로 게임 번역 또한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문화적 코드에 맞게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의 '분수'를 번역하기 어려웠다던 이야기, 봉준호의 <기생충>에서의 짜빠구리가 어떻게 초월번역되어 세계 관객들에게 어필되었는지 한번이라도 들어본 이라면, 게임 번역도 쉽지 많은 않은 공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클릭 버튼, 스토리에 등장하는 이름과 설명, 채집하는 아이템 하나하나와 그들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번역해야 하니 작업량도 만만치가 않다. 거기에 요구되는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게임 번역은 외주의 외주의 외주가 만연한다. 이는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양상이기도 하다.)
또한 게임을 향한 현지 문화적 인식이 어떤지에 대한 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 한 예로, 한국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게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게임을 '(디지털) 오락'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나아가 게임이란 '컴퓨터'를 통해 플레이되어야 한다(그게 아니면 '보드게임'이라고 하거나) 또 한국 플레이어 상당수는 게임에 '승패 조건'과 명확한 '목표'가 제시되는 것을 선호한다. 뭘 해야할 지 목표가 제시되는 게임이어야 재미있고, 덩달아 승리까지 쟁취한다면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계를 요구하며 명확한 미션 제시, 타인과 대결할 수 있는 경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심지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도 "게임"을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모든 문화권이 이렇게 생각할까?
우리는 영어 단어 game을 그대로 '게임'이라 차용하여 쓰는 나라 중 하나다. 즉, 영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새롭게 소개된 케이스다. 그래서 게임은 놀이와는 달리 무언가 최첨단일 것 같고, 디지털일 것 같고 등등 여러 뉘앙스를 풍긴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이 있다. 일본은 게임을 '게이무 ゲーム.'라고 읽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많다. 중국은 게임을 유희(游戏)라고 번역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하면 극을 관람하면서 유희를 즐긴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대륙 너머 유럽으로 가보면, 폴란드어로 게임은 Gra이다. '연극', '연기'와 연결된 개념이다. 그래서 (위쳐의 나라답게) 폴란드 게이머들은 대체로 스토리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은 게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내가 현지인에게 "그럼 게임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도 중요하게 보느냐"라고 물어보니 상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게임에 경쟁적 요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않나?"라고 되물어보기도 했다. 즉, 한국과 달리 게임 내 승부를 부차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옆 나라 독일은 게임을 das Spiel로 지칭하는데, 이 단어는 스포츠와 연관되는 단어이며 '규칙성'과 연결된다. 그래서 상호 합의된 규칙 내에서 요리조리 전략을 짜고, 때로는 규칙의 맹점을 파고들고 전략이 통했을 때 짜릿함이 게임의 묘미라고 인식한다. 그 때문일까, 독일 게임 플레이어들은 규칙이 복잡한 보드게임이나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 내 고립언어 중 하나인 핀란드어는 게임을 Peli라고 쓴다. 이 단어는 게임뿐만 아니라 스포츠, 내기, 가위바위보, 도박 등 여러 행위를 지칭할 때 두루 쓰인다. 여기에서 핵심은 '승부' '누가 이기고 누가 지냐' 개념이다. 핀란드 게임이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지 살포시 짐작해본다.

K-게임의 수출: 그 게임이 그 게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하기
대한민국 게임 시장은 세계 4위에 달하고 (Newzoo, 2024) 그 수익성이나 체급에 있어 K-pop과 K-드라마, K-영화를 압도한다. 하지만 한국 게임의 문화적 파급력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한국 게임 시장의 주요 수출 시장은 한국 내국시장 또는 한국과 유사한 문화적 코드를 가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 너머 북미와 유럽 등 소위 '서양권'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남미 등 'Global South'에서의 흥행은 비교적 저조하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에 K-게임들의 단일문화성에 원인이 조금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비정상회담>이라는 TV프로그램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독일식 농담이 스크린을 타며 '독일은 노잼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독일 출신 출연자가 나와서 한 독일식 농담이 한국 관점에서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재미있다고 꺄르르 웃는 농담 섞인 표현들이 해외에서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고(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며), 우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이 해외에 나가서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게임 속 배추 아이콘 모양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게임의 승패 방식이 문화코드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동네에서 통하는 유머와 우리나라 농담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한국에서 '흥행각'이라고 여겨지는 게임이 영어 번역만 짠~ 하면 그대로 해외에서 통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
최근 한국 게임사들도 새로운 수출 활로를 찾기 위해 북미, 남미, 동남아, 그리고 유럽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해외 게임쇼에서 한국 게임들이 부스를 차리고 연신 홍보하는 것이 더는 놀랍지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덕분에 최근 <데이브 더 다이버>,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등 몇몇 한국 게임들이 동아시아 너머의 시장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인도에서 대박난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도 좋은 사례에 해당된다. 다만 아직은 이러한 해외 성공사례들이 대형 게임사에 국한되어 있고, 상당 수가 '한국 게임을 영어로' 하는 수준의 단순한 현지화 전략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아직은 현지 게이머들에게도 어필할 만한 '세련된' 게임이라기 보단 '저 멀리 한국에서 온 특이한 게임'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그 '특이함'으로 어필할 수 있겠지만 만약 이 현실에 안주한다면 K-게임의 세계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이제 한국 게임 개발자들, 나아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 스스로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우리들의 기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배추'가 그 배추가 아닐 수 있듯,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이 그 게임이 아닐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재미'가 지구 반대편에선 재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당연한 것'에 역으로 질문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탐구하며, 그 기반 하에 현지 조사와 테스트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해외 시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우리한테는 재미있는데, 왜 안 되지?' '외국은 이상해~'라며 갸우뚱할 때가 아니다. 한국 중심적 사고와 선입관을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질문하고 비판을 해야 더욱 세련된, 독창적인, 그리고 창의적인 게임도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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