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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엔 그늘도, 휴식도 없는데…폭염 수칙 지키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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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엔 그늘도, 휴식도 없는데…폭염 수칙 지키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것

에어컨 설치하다 폭염에 사망한 20대 청년…회사는 '혐의없음'

지난해 8월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양준혁씨가 숨졌다. 국과수 조사 결과 사인은 열사병이었다.

산재로 인정 받았음에도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양씨의 업체와 업체 관계자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광주지검에 송치했다.

이에 반발해 광주전남노동안전지킴이는 지난 1일 광주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시간 가까이 땡볕에 방치한 것이 휴식을 보장한 것인가, 노동청이 앞장서서 열사병 증상을 정식착란 상태로 몰아갔다"며 "업체 측이 즉시 119에 이송하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방치한 것이 왜 사후 구호조치 의무 위반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박영민 노무사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폭염을 재난이라고 하는데 노동청은 전혀 심각성을 못느끼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노동청은 '119 신고 의무가 없었다'는 말만 남겼다"면서 "사람이 쓰러지면 신고하는게 상식 아닌가. 규정에 없으니 119에 신고하지 않아도 책임이 없다는 게 지금의 구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노무사는 "지금 건설 현장이나 제조업이나 또 고령자들은 폭염에 심근경색이나 좀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지는 경우가 많다"며 "중대재해로 인한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신고한 사례도 많은데 대다수가 무혐의"라고 토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영민 노무사와 유족들.2024.09.03ⓒ프레시안(김보현)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의 폭염 대책은 '폭염 5대 수칙' 관리·감독에 머물러 있다. 2시간에 20분 이상 휴식, 냉방장치 설치, 냉각 의류 제공 등의 지침은 모두 권고 수준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지난달 1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시행으로 법제화하려 했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영세사업장에 부담이 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 속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 제공을 위반할 경우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사업주가 이 조항을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 개정안이었다.

역대급 폭염이라는 말이 상투적인 단어가 된 요즘 열사병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준상 건설노조 광주전남 지부장은 "폭염에 쓰러졌다는 연락이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온다"며 "2018년 역대급 폭염 이후 논의가 잠깐 진행됐지만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폭염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건축비가 100이라면 하도급이 받는 건 60~62 수준"이라며 "그 안에서 폭염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작업 효율이 30% 이상 떨어지는 폭염기에 휴식하기 위해서 교대 인력이 필요하다"며 "원청이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폭염 5대 수칙을 지키라는 건 하도급 업체 보고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다"고 분개했다.

▲폭염 속 건설노동 현장ⓒ연합뉴스

노동청에서 쉬라고 권고해도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비용 부담이 뒤따르니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 건설노조는 얼음물과 미숫가루 등을 챙겨 매일 건설 현장을 돌고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현장에 가면 노동자들이 30분이라도 쉴 수 있다"면서 "내부 논의를 통해 폭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선 고(故) 양준혁 씨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양준혁법'이 발의됐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이학영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20여 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은 사업주의 폭염 대응 의무를 명확히 하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기상여건으로 인한 위험'까지 확대하며, 119 미신고 시 과태료 부과 등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은 지난해와 달라진 것 없이 매일 더위와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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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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