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안철수 혁신위원회' 좌초 뒤 9일 '윤희숙 혁신위'를 내세웠지만, 당 쇄신의 의지는 읽히지 않는 모습이다. 당내 비주류에서는 구체적인 쇄신 제안이 나왔지만 정작 윤희숙 신임 혁신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혁신의 주체는 당원"이라는 원론만 반복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 지도부는 기껏 띄운 혁신위와 혁신안 관련 논의는 뒷전으로 미룬 채, 당 소속 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검사 수사 방어전' 전담 기구 구성을 의총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 비대위 회의를 열고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을 신임 혁신위원장으로 인선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당이 실패한 과거와 결별하고, 수도권 민심 속으로 다가가는 정책 전문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윤 혁신위원장이) 혁신의 조타수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이 발표한 '5대 개혁안' 관련 논의를 이어갈지, 안철수 의원이 제안한 '쌍권'(권성동·권영세 의원) 인적 쇄신안을 받을지, 윤 혁신위원장에게 혁신위 운영에 관한 전권을 부여할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윤 혁신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간략한 입장 발표 자리를 갖고 "혁신위는 굉장히 절박한 시점에 꾸려졌고, 이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혁신의 주체는 당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쌍권' 인적 쇄신 필요성에 동의하냐는 물음에 윤 혁신위원장은 "혁신의 대상, 청산에 대해서는 당원의 권한"이라며 말을 아꼈다. 송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전권을 약속받았냐는 질문에도 "전권이냐 아니냐를 확인하는 작업은 지금 필요없다"며 "지도부나 저나 무슨 권한을 줬네, 안 줬네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묻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의원총회에 참석한 윤 혁신위원장은 "정말 새로운 모습의 전당대회가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재창당 수준의 혁신안을 저희가 마련할 것이고, 그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의 전 당원 투표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도 윤 혁신위원장은 "혁신의 주체는 당원"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득권 청산이나 인적 쇄신 등 단어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날 의총에서는 당을 향한 쇄신 요구나 쓴소리를 불편해하는 일각의 분위기도 감지됐다. 연이틀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경태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서 집결했던 의원 45명"을 인적 쇄신해야 한다고 저격하자, 이에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인 참석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쌍권' 인적 쇄신 요구를 거부당한 뒤 지난 7일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한 안 의원은 이후 처음 열린 이날 의총에 불참했다. 반면 '쌍권', 즉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의총에 참석했다.
권 전 비대위원장은 의총장을 나서며 기자들과 만나 인적 쇄신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가 뭐 쇄신 당할 게 있나. 안철수가 그냥 알아서 얘기한 거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송 비대위원장은 의총 모두발언에서 최근 특검의 김선교 의원 출국금지 조치, 윤상현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 마찬가지로 수사 대상이 된 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의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끼리 서로 다투고 있을 시간도 없다"며 "정치 특검의 부당한 야당 탄압, 정치 보복에 대해 당 모든 의원들이 행동을 함께하자"고 요구했다. 그는 "(여당의) 내란특별법에 맞서 가칭 '독재방지특별법'을 제정하겠다"며 특검 방어전에 열을 올렸다.
박성훈 원내대변인은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윤상현 의원 자택 압수수색에 대해서 과도한 조치라는 의견이 있었다"며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한 건 불필요한 과잉수사였다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특검 수사에 대한 대응기구 발족이 의총에서 논의됐고 그 결과 "참석한 의원들 만장일치로 기구를 설치했다", "참석한 의원 전원이 동의했다"고 했다.
안철수·김용태, '인적 쇄신' 한 목소리…친한계 "찐윤, 꼼수로 위기 모면"
당에서 '혁신 좌초'를 겪은 인사들은 연일 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새 혁신위원장이 전권을 받기 "힘들 것"이라며 "최소한의 인적 쇄신은 필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은 SBS 라디오에서 "우리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세력들이 혁신 대상"이라며 "인적 청산, 쇄신을 말하면 그 청산 대상들이 아주 똘똘 뭉쳐 혁신위를 계속 좌초시키거나,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한동훈계 진종오·김예지·김소희·우재준·한지아 의원과 원외 인사 15명이 속한 국민의힘 원내외 소장파 모임 '언더73'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언더 찐윤(진짜 윤석열계)'은 혁신위 출범과 같은 꼼수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하고 있다"며 "'언더 찐윤'과 같은 기득권에게 당원이란 모셔야 할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이고 동원의 대상일 뿐"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언더 찐윤"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거명하며 비판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 7일 혁신위가 좌초하면서 국민의힘은 혁신하는 시늉조차 제대로 못 하는 답 없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당을 진정 혁신할 생각은 없고 혁신위를 들러리 세워 혁신하는 척만 하려고 한 국민의힘 비대위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변화와 쇄신의 과정에는 인적 청산도 물론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당의 주인인 당원에게 주권을 돌려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당헌을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당론은 의총 의결이 아닌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다.
또 "시도당위원장은 시도당 대의원 투표가 아닌 시도당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자", "원내대표 선출에 전당원 투표 결과를 반영하자"는 제안도 했다. 모두 원내 다수파인 현 주류 세력을 겨냥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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