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뒤에는 늘 ‘모범운전자’들이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들의 존재는 우리가 매일 오가는 도심 교통의 안전판이다.
모범운전자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도로교통법 제146조에 따르면 무사고 운전자 또는 2년 이상 사업용 자동차 운전을 하며 교통사고 전력이 없는 운전자 가운데 경찰청장이 정한 기준에 따라 선발되어 모범운전자 회원으로 교통안전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범운전자들은 지역 축제, 시험장, 교통 혼잡지역 등에서 교통 질서를 유지하는 봉사를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출퇴근길 혼잡한 교차로, 수능날 시험장을 향하는 수험생들, 교통 질서가 절실한 대규모 행사장엔 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모범운전자회 회원 수는 2022년 2만 5570명에서 2025년 4월 기준 2만 979명으로 4년 새 4500여 명이 줄었다. 서울은 6600명에서 4296명으로 35% 가까이 감소했고 대전· 대구·부산·인천 등 대부분 지역에서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그만큼 현장의 공백도 커지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위험은 그대로인데 보호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23년 10월 안양시에서는 교통안전 활동 중이던 한 모범운전자가 화물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노원구에서 활동 중이던 또 다른 모범운전자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해도 법적으로 명확한 보호 장치는 없다. 보험 가입은 임의 규정이고 치료비나 보상금 지급에 대한 법적 근거도 미비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박용갑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중구)이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모범운전자가 봉사 중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가가 보험을 통해 보상금과 치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경찰청이 징수한 과태료 재원을 통해 연합회에 대한 예산 지원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모범운전자연합회가 구청 등 국공유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 박 의원은 대전 중부모범운전자회와의 간담회에서 현장 의견을 직접 청취했고 법안은 그 만남에서 시작됐다.
“지역 교통안전과 문화 확산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에겐 최소한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게 박 의원의 말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모범운전자들은 더 이상 ‘헌신만 요구받는 존재’가 아닌, 사회로부터 정당한 존중을 받는 ‘교통 안전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안전한 도로는 시스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현장을 지키는 사람에게도 마땅한 보호와 예우가 있을 때 진정한 교통문화는 완성된다.
모범운전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격려의 박수 뿐만 아니라 제도라는 안전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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