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분단은 세계사 속 패권의 논리에 따른 것이었지만 미래세대가 주도하는 평화와 통일은 우리 민족이 주도할 수 있다.”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1일 오후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광복은 맞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며 "이제는 세계사의 객체에서 벗어나 평화와 통일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중근장군 전주기념관(관장 고혜선)이 주최·주관해 전주대건신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조 전 부원장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한반도 분단의 기원을 19세기 서세동점 제국주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했고 패권 경쟁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 국권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과정에서 "실질적 해방은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에 의한 것"이었다며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크지만 국제정세에서의 존재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1945년 9월 20일 소련 스탈린이 내린 비밀지령에 대해 "스탈린은 북한을 소비에트화하고 사실상 국가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이후 북한은 소련의 지원 아래 1946년 2월 인민위원회를 수립하고 3월 토지개혁, 8월 남녀평등법을 발표하며 공산화가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1948년 2월 8일 15만 규모 정규군을 창설해 체제를 완성했고 같은 해 9월 9일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반면 대한민국은 수많은 혼란과 갈등 끝에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수립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주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뒤따랐다.
조 전 부원장은 6·25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도 “김일성이 48번이나 스탈린에게 남침을 요청했지만 스탈린은 망설였다”며 “그러나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을 성공시키고 중국에서 공산혁명이 완성된 뒤 결국 김일성에게 ‘남침 허용’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전쟁은 미국의 유럽 중심 전략을 아시아로 분산시키려는 스탈린의 전략이었다는 해석이다.
또한 그는 “에치슨 라인의 본질은 대만을 미국 방어선에서 제외한 것이었는데 한국은 그 여파에 휘말린 것일 뿐”이라며 “미국의 전략 중심에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사의 흐름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이제 평화와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며 “6·25가 스탈린 전략의 성공이라면 다음세대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이뤄내야 할 ‘반전’”이라고 강조했다.
조 부원장은 특히 "평화와 통일에 대해 '통일을 위한 평화와 평화를 위한 통일'의 이중주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국민의 통합없이는 민족통일이 불가한 만큼 평화와 통일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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