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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 살인적 비닐하우스 노동에 방치된 이주노동자…"폭염 규칙? 여긴 그런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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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 살인적 비닐하우스 노동에 방치된 이주노동자…"폭염 규칙? 여긴 그런 거 없어요"

[현장] 이주노동자 숨져 시행된 폭염 휴게규칙, '현대판 노예' 이주노동자에겐 무용지물

지난달 7일 오후 5시경 경북 구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23살 베트남 노동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일 구미의 낮 최고기온은 38.2도, A씨의 발견 당시 체온은 40.2도였다. 당일 한국인 노동자들은 단축근무를 시행해 오후 1시경 퇴근한 반면,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팀은 오후에도 작업을 계속했다.

이 비극은 지난달 17일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장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2시간에 20분 휴게시간을 주는 산업안전보건규칙 개정안 시행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후로도 폭염 속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계속됐다. 지난달 24일 제초작업을 하던 네팔 노동자가 숨졌고, 사흘 뒤 에어컨 없는 공장에서 일하던 미얀마 노동자가 숨졌다.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폭염 방지대책이 정작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상황. 이주노동자가 많은 농업, 제조업 산업 현장의 폭염 관련 개정 산안규칙 준수 상황을 들여다봤다.

체감온도 34.5도 땡볕 속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농촌 이주노동자

지난 1일 경기도 포천의 한 기업형 채소농장을 찾았다. 당일 해당 지역의 낮 최고기온과 체감온도는 34.5도를 기록했다. 버스가 서울을 떠나 포천으로 들어서자 "폭염경보 발효 중 논, 밭, 공사장 등 야외작업을 자제하고 휴식을 취해주세요"라고 적힌 경기도청 명의 안전안내문자가 핸드폰에 찍혔다.

현실은 달랐다. 비닐하우스로 가득한 농장에서는 하루 기온이 정점에 달하는 오후 2시 경에도 밀짚모자를 쓴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검은 색 긴 옷으로 온몸을 둘러싼 채 땡볕 속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에게 최근 근무시간을 묻자 "점심시간 한 시간 빼고 아침 6시에서 오후 5시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폭염이면 2시간에 20분 쉬어야 한다는 데 쉬나"라는 질문에는 "여긴 농장이라 그런 거 없다"고 답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일터로 향하는 듯한 네 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전거를 타고 옆으로 지나갔다. 좀 더 걷자 이번에는 다섯 명씩 팀을 이뤄 작물을 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두 동 더 보였다. 그 안에 강풍기는커녕 선풍기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 중간 작물이 심어진 비닐하우스 몇 곳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 작물이 열을 흡수해 상대적으로 덜 뜨거운 바닥의 온도도 32도를 넘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금속 살이 덧대진 곳의 온도는 50도를 웃돌았다.

나오는 길 농장 옆 대로변에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 법적 근거 마련"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지역 국회의원 명의로 걸려 있었다. 이주노동자 없이 농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땡볕 속에 쉬는 시간 없이 일하는 동안 그들의 건강을 위해 현장 감독에 나선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왼쪽)과 비닐하우스 안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오른쪽). 가장 낮은 곳의 온도가 32.5도다. ⓒ프레시안(최용락)

선풍기 한 대로 버티는 공장 이주노동자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한 제지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B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공장에서 일할 때 덥지 않느냐"는 질문에 "많이 덥다. 많이 더워서 물에 적신 수건을 어깨에 걸고 계속 땀을 닦으며 일한다"고 답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에 20분 쉬어야 한다는데 온도 측정이나 휴게시간 부여가 이뤄고 있나"라는 질문에 그는 "그런 건 없다"고 단언했다. "에어컨 설치나 보냉장구 지급은 되고 있느냐"고 묻자 "일하는 곳 옆에 선풍기는 하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구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자신도 이주노동자인 차민다 금속노조 대구성서공단지역지회 부지회장도 폭염 속 공장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묻는 말에 "한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 안에 에어컨 같은 건 잘 없다. 보통 선풍기 정도만 놓여 있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 대구 인근에 금속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제품을 만드는 주물공장이 밀집한 공단이 있는데 일하는 사람이 "거의 이주노동자밖에 없다"며 "그 안에 가보면 진짜 너무 덥다. 죽을 만큼 더운데 냉방설비가 잘 안 돼 있다. 옛날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갖고 '선풍기 하나면 충분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용허가제 아래서 폭염 노동 문제 제기 어려워…영세 현장 감독도 미흡"

2시간에 20분 휴게가 포함된 폭염 산안규칙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장소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 규칙이 실제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발언권을 높이고 정부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활동가들의 견해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고용연장 권한을 사업주가 갖고 있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도 극히 제한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로 일하고 있다"며 "폭염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한 노동자는 고용 연장이 되지 않거나 강제 출국되기 쉽다. 문제 제기조차 하기 어렵다"이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감독도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주에도 폭염 감독을 나가는 걸 봤는데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법인형 사업장으로 갔다. 정말 열악한 사업장으로는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도 "폭염 규칙을 준수하는지 감독 중이라고는 하지만 영세한 곳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도 취약한 위치에 있다 보니 사업주에게 문제 제기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폭염 규칙이 실제 준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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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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