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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 자유파는 있는데 사회파는 어디에?

[장석준 칼럼] 부동산시장 대 주식시장 혹은 '보수파' 대 '자유파'?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식 회의에서 부동산시장 대신 주식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돈이 부동산시장을 맴돌며 집값만 턱없이 올리는 현 상황을 타파해야 하며, 그러려면 주식시장으로 돈이 옮겨가 산업 투자에 기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밝히는 점이 반갑고, 그 대안으로 주식시장을 더 키우겠다는 입장이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지난 주 후반에는 윤석열 정부가 부자 감세로 망가뜨린 재정을 원상복구하려는 새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주식시장을 뒤흔들었다. 개편안에 포함된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확대 기조가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러한지에 관해서는 여러 쟁점이 있지만, 아무튼 정부의 주식시장 부양론에 기대를 걸고 있던 상당수 주식 투자자들이 '실망했다'는 반응을 쏟아낸다. 그만큼 주식시장을 투자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이 상당한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분명 돋보이는 행보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주장들을 이것저것 끌어 모아 잔뜩 나열하기만 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와 달리, 이재명 정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힘들이 병존하며 서로 충돌하고 있는지 냉철히 분석하는 것 같으며,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전략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 양김 씨 이후에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노련한 '정치'다.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오전 9시 9분 현재 3,205.72다. 지수는 전장보다 39.40포인트(1.25%) 오른 3,187.15로 출발했다. ⓒ연합뉴스

부동산시장 대 주식시장 혹은 '보수파' 대 '자유파'?

물론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이 그렇게 다른 것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다. 아파트를 여러 채 사들여 임대료를 챙기거나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이 '불로소득'이라면, 유망한 기업의 주식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배당금을 받거나 차익을 획득하는 것 역시 '불로소득'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최근 수십 년간 우리 삶을 지배해온 '땅' 대 '땀'의 대립 구도에서 주식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땀'보다는 '땅'에 더 가깝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을만하다.

그러나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 사이에는 이런 공통점이나 공모관계보다 훨씬 더 선명한 차이나 대립관계 역시 존재한다. 적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시장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나 역학, 동맹과 대립의 지형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그렇다. 주식시장에 비해 부동산시장이 더 부정적이거나 퇴행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첫째, 작금의 부동산시장은 완전히 '기생적'이다. 수요와 공급이 서로 만나게 한다는, 모든 시장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가장 원초적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시장을 형용할 말은 '기생적'이라는 단어 밖에는 없다. 서울 강남구의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 한 채가 100억 원 이상에 거래되고 웬만한 중간계급 가정도 큰 규모로 대출을 받지 않고서는 집을 사거나 빌릴 수 없는 한국 부동산시장이 바로 그런 시장이다. 이 시장은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된 자가 주택이나 임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뛰어든 금융 세력과 특정 계층의 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둘째, 부동산시장은 단순히 사회에 기생할 뿐만 아니라 이를 철저히 '약탈'하기까지 한다. 투기 시장은 사회의 잉여를 빨아들이며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까지 송두리째 곤경에 빠뜨린다. 투기 시장의 판돈이 커질수록 집값 전체가 상승하여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많은 이가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하고, 임대료도 덩달아 올라 무주택자의 등골이 휜다. 단지 현재의 다수 서민만 수탈당하는 게 아니다. 집값 전체가 오르면 오를수록 미래세대 가운데에 부동산 상속을 기대할 수 없는 다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셋째, 이 모든 결과로 부동산시장은 가장 경직된 의미의 '계급'을 낳는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시장은 주식시장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활성화되어왔다. 그래서 이미 여러 세대가 부동산 소유 여하에 따라 삶이 어떻게 확연히 갈라지는지, 그리고 이런 운명이 부동산 상속에 의해 어떻게 철저하게 후세대에 계승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서울 강남권이나 신흥 투기 지역의 다주택 보유자로부터 가장 취약한 주거 불안정층에 이르는 계급-계층 피라미드가 단단히 구축돼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지속되는 한, 이 피라미드는 미동도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다들 안다. 이미 승리해온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면, 도전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런 부동산시장의 승리자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동맹은 흡사 과거의 토지소유계급, 서양식으로는 귀족, 한국식으로는 양반을 연상시킨다. 이 계급은 자본주의 중심부인 유럽, 일본 등지에서조차 20세기 초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이르도록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데 앞장섰다. 이들은 대규모 농지 소유에서 비롯되는 불로소득 '수탈'에 의지하며 낡은 '계급' 질서를 완강히 고수하는 '기생적' 존재였고, 흔히 '보수주의'라 불리는 이념이 이들을 대변했다. 한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바로 부동산시장의 승자들과 그 동맹 세력이 과거의 이 토지소유계급, 보수주의 지지층과 유사한 위상을 점하며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이재명 정부의 주식시장 부양론이나 이를 지지하는 주식시장 소액 투자자들은 역사적으로 보수주의와 경쟁, 대립했던 이념, 즉 '자유주의'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보수주의의 주적이 자유주의이던 시절에 자유주의 지지자인 신흥 계급-계층은 늘 능력 있고 야망 있는 개인이 밑바닥으로부터 성공할 자유, 부와 권력을 세습해온 기득권층에 맞서 부와 권력의 새로운 틈을 열 자유를 옹호했다. 오늘날 주식시장을 부동산시장의 대안으로 바라보는 이들 역시 이른바 '경제적 자유'라는 깃발 아래 거의 같은 내용을 외친다. 의식하든 못하든 이들은 보수주의와 충돌했던 과거 자유주의의 몸짓을 반복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6·27 대책 발표 이후 5주째 둔화 양상을 이어가는 가운데 3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지난달 31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넷째 주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2% 올랐다. 상승폭은 전주(0.16%) 대비 0.04%포인트 축소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제3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 - '사회파'

하지만 '부동산시장 대 주식시장'으로부터 이렇게 '보수파 대 자유파'를 떠올리는 것이 그릇된 추측만은 아니라면, 곧바로 이런 물음들이 뒤따라야 한다. 과연 자유파의 도전만으로 보수파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지금 한국의 맥락에서는, 리버럴 정권과 주식 소액 투자자들의 동맹만으로 부동산시장 동맹을 제압, 해체할 수 있겠는가?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보수파 대 자유파라는 이항대립만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자본주의 등장 과정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며 성장해온 세 번째 항이 있다. 역사를 직시하는 이라면 누구든 보수주의, 자유주의와 더불어 근대 정치 이념-운동의 세 축 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모두와 경쟁, 대립하면서, 때로는 자유주의와 동맹을 맺어 보수주의를 후퇴시키는가 하면 보수주의 지지층의 열망이나 문제의식을 흡수해 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복잡한 '삼체(!)' 운동을 시야에 담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근대'에 미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논의에서도 세 번째 항의 존재나 역할을 염두에 둬야만 하지 않는가? 이 맥락에서 부동산시장 동맹과 주식시장 동맹이 각각 '보수파', '자유파'에 상응한다면, '사회파'란 어떤 내용에 해당하는가? 부동산의 가족 내 상속도 아니고 주식시장의 개인 간 경쟁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경로로 생존 기반을 확보하고 권익을 확대할 수 있는가?

역사적 사회주의의 넓은 영향권으로부터 오늘날 '사회파'라 정리될만한 일반적 의미를 뽑아낸다면, 그것은 가족, 개인을 넘어선 연대를 통해 공통 정체성, 집단적 역량, 공동의 지위와 기능을 다지고 이에 바탕을 둔 사회 세력 간 쟁투, 교섭, 합의를 통해 권익을 확보하는 존재방식,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이든 주식시장이든 어떤 시장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 안팎에 걸쳐 노동조합, 협동조합 같은 결사체를 만들어 생존력, 발언력, 교섭력을 획득하는 것이고, 이 힘을 바탕으로 타협에 도달하고 제도를 만들며 사회 곳곳의 흐름을 관리함으로써 공동의 성취를 이루거나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는 보수파, 자유파는 너무나 뚜렷이 눈에 드러나는 데 반해 사회파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동맹은 여전히 생활 현장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주식시장 동맹은 새 정부를 쥐락펴락 할 정도로 실력을 행사하지만, 사회파는 이들에 대당할만한 흐름으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파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유파에도 끌리지 않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지만, 좀처럼 결집하거나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항상 이렇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조합운동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었던 예외적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수파, 자유파, 양 세력의 헤게모니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럼 사회파가 이렇게 미약하거나 부재할 경우에 보수파와 자유파의 각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적 선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사회파가 약하거나 없는 곳에서 보수파와 자유파는 결국 야합하거나 수렴한다. 겉으로는 계속 싸우는 듯해도 사실은 서로 너무나 닮아 버려서 더 싸울 이유가 사라진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신자유주의 전성기가 그 전형적 사례였다. 세계적으로 현실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의 도전이 거의 사라지자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장지상주의를 추진하는 거대 연합이 대두했다.

한국 사회의 부동산시장 동맹과 주식시장 동맹을 놓고도 같은 공식을 적용할 수 있다. 산업을 기반 삼아 이에 참여하는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율함으로써 미래를 열려는 사회파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의 돈 흐름과 실제 산업 투자를 잇는 가느다란 끈은 끊어지고 만다. 주식시장은 다만 형식적으로만 산업 투자와 연결된 채 실은 현재의 부동산시장만큼이나 '기생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현재 부동산시장 동맹과 주식시장 동맹은 서로 구심점만 다를 뿐 많은 부분이 중첩된다. 대출 끼고 산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기만 바라는 중간계급 상당수가 동시에 주식 소액 투자자들이다.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완강하게 고립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다른 힘이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 투자가 산업 내의 집단 간 교섭-합의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음을 목격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양 동맹의 중첩지대에 포진한 이들은 더욱 막강해진 불로소득 대동맹의 형성에 동원되기만 할 것이다. 지금, 증세를 둘러싼 논란에서 벌써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29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브리핑실에서 2025 세제 개편안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만희 조세총괄정책관, 이 차관, 박금철 세제실장. ⓒ연합뉴스

늦더라도 '사회파'가 성장해야 한다

여기에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근본 과제가 있다.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이 해야 할 일은 한국 사회에 '사회파'라 할 만한 흐름을 등장, 성장시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처럼 집권 리버럴정당의 들러리를 서거나 이와 반대로 자잘한 쟁점마다 이견을 내는 데 만족하며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모처럼 가시화되고 있는 부동산시장 동맹과 주식시장 동맹의 경쟁 같은 사회적 균열-대립선에 주목하고 뒤늦게나마 '사회파'라는 세 번째 항의 씨앗으로서 이 중대한 역사적 국면에 개입해야 한다. 노동조합법 개정 등을 통해 열리게 될 국면을 이런 개입의 기회로 살려내야만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의 운명이 걸린 막중한 책무다. 사회파가 성장하지 않은 채로, 사회파의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지 않은 채로 기후급변, 돌봄결핍, 지역쇠퇴 등이 심화되고 만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도, 부동산시장은 물론이고 주식시장에 의지해 그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구체적인 기능과 역량을 갖춘 집단들 간의 소통, 논쟁, 타협에 이미 익숙해 있는 사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에게는, 지금 없는 세 번째 항, 적어도 보수파-자유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사회파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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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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