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을 상대로 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상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무분별한 상소로 피해 생존자들의 2차 피해가 이어진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상소를 취하하고 더 이상 항소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지난 5일 공식 발표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해 피해 생존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된 사건은 무분별한 상소를 지양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2주 만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652명이 제기한 111건, 선감학원 피해자 377명이 제기한 42건 등 진행 중인 소송에서 정부의 반복된 상소로 인한 지연은 멈추게 됐다. 법무부는 사실관계가 추가로 다퉈질 필요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상소를 포기하고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만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 생존자들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라며 환영하면서도 정부의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관계자는 "수십 년을 기다려온 사과와 보상의 길이 이제야 열린 것 같다"며 "국가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는 공식 사과와 유족·생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보상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상소 포기 결정이 있기까지 피해 생존자들은 수차례 반복되는 법정 다툼에 시달려왔다. 일부는 소송 중 세상을 떠나는 등 2차 피해도 잇따랐다. 지난달에는 피해자인 홍영식씨가 정부의 상고 소식을 듣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대법원에서 국가배상 책임이 확정된 사례들이 있는데도 정부가 시간을 끌며 상소를 반복해온 점을 두고 '국가의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대법원은 올해 3월 형제복지원 피해자 1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최종 확정한 바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법리적 논리를 앞세운 상소로 피해자 권리구제를 지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번 상소 포기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질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나설지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피해 생존자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피해자 지원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결정은 '늑장 대응'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상소 포기 결정으로 법적 절차는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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