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주년 제헌절을 맞아 정치권이 국민참여 개헌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헌법개정 절차에 국민의 실질적 참여를 제도화할 필요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국회와 대통령이 동시에 국민 참여형 개헌을 천명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현재의 헌법 및 청원 관련 법률 체계로는 국민이 헌법개정 논의에 직접 개입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학계와 입법계에서는 국민 개헌참여 제도화를 위한 다양한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로스쿨 신용인 교수는 6일 오후 안국동 수운회관에서 민청학련동지회가 주최한 제2차 연속 '국민개헌 운동의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 참석해 '국민주권 어떻게 실현할까?' 발제를 진행했다.
신 교수는 발제에서 국민 참여 개헌에 대해 '풀뿌리원탁회의 개헌청원'을 제안했다.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의 접점을 제시한 것으로, 신 교수는 "최소 5명의 소규모 지역 시민이 생활권 단위(읍·면·동)에서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는 비법인(非法人) 조직인 ‘풀뿌리원탁회의’를 통해 개헌 청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제도는 단계별 심사 구조(주민자치회 → 기초의회 → 광역의회 → 국회 개헌특위)를 통해 숙의 절차를 보장하고, 무분별한 청원의 남발을 방지한다.
또한 국민개헌청원에 요구되는 ‘50만 명 동의’ 등 요건을 배척해 실질적인 국민 참여 개헌을 이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 개헌 시도는 김성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시갑)이 발의한 '헌법개정 절차에 관한 법률안'과 김종민 의원(무소속, 세종특별자치시갑)의 '시민 숙의 중심 개헌 도입' 법안, 황운하 의원(조국혁신당 비례대표)의 '국민주도 개헌 법안' 등이 제출돼 있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법안은 김성회 의원의 개헌안이다. 이 법안은 국민 5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을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심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50만명 동의 요건은 이론상 직접민주주의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나, 현실에서는 대규모 조직 동원력과 자금력을 갖춘 정치세력 또는 거대 시민단체만이 실현 가능한 구조다. 신 교수는 "5만 명 이상의 서명으로 국회 청원을 할 수 있는 제도와 비교하더라도, 50만 명의 정족수는 개인이나 작은 단체로서는 사실상 청원이 불가능해 국민 주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청원 정족수는 고비용과 상업화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국민발안을 추진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며, 청원 캠페인 전문 기업의 지원 없이는 현실적 추진이 어렵다. 신 교수는 "이는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침해하고 정치 참여 기회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형식상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민이 실질적 주권실현 방식으로 직접 개헌에 참여할 수 있는 ‘헌법개정 국민발안제’는 부재하다. 1954년 2차 개헌 당시 신설됐으나, 1972년 7차 개헌을 단행하면서 폐지돼 현행 헌법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2020년 헌법개정 제안 자격에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 개헌안은 당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이상)를 채우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신 교수는 "헌법은 정치공동체의 규범적 기초이자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헌법 개정 절차에서 국민의 참여는 절차와 정체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진입 장벽이 낮아 개인과 소규모 단체도 실질적으로 개헌 청원에 참여할 수 있다"며 "지역단위의 숙의를 통해 포퓰리즘적 청원과 선동적 어젠다 설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정 기간 반복 청원을 금지하는 제도를 병행해 정치적 피로도와 정책 남용의 위험도 관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풀뿌리원탁회의 개헌청원은 국민주권을 형식적 선언에서 실질적 제도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 교수는 "현재 헌법이 직접적 국민발안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청원의 형식을 통해 점진적 제도화를 추진하는 전략은 정치현실과 헌법 이상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는 타당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국민이 헌법개정의 실질적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헌정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헌절차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법제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풀뿌리원탁회의 개헌청원은 그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실험이 될 수 있고, 향후 개헌 국민발안제 도입의 제도적 전초기지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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