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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보다 많은 복권 판매점, 대만이 복권 천국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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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보다 많은 복권 판매점, 대만이 복권 천국된 이유는?

[이웃 나라 타이완] 복권 천국 대만의 비밀

대만의 길거리에서 유난히 가장 자주 보이는 간판이 있다. 복권 판매점의 노란색 간판이다. 식당이나 음료 가게는 숫자가 많지만 가게 이름도 간판도 제각각이다. 그에 비해 복권 판매점 간판은 '공익채권(公益彩券)'이라는 글자와 로고가 공통적이다. 대만 전역에 70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독보적인 편의점 '세븐일레븐'보다도 훨씬 많다. 대만에 복권판매권한을 가진 판매인의 숫자는 7만 명이 넘는다.

▲ 대만 길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간판은 복권 판매점이다. 특유의 노란 간판에 '꽁이차이취안(公益彩券)' 로고가 선명하고, 각종 복권 로고까지 더해져 눈에 잘 띈다. ⓒ필자

대만은 복권의 천국이다. 한국으로 치면 로또에 해당하는 번호 추첨형 복권만 해도 세 가지 종류다. 49개 숫자 중에 6개를 뽑는 '대러터우(大樂透)'는 한국의 로또와 흡사하다. 인생역전의 상징이자 가장 전통적이고 인지도 높은 복권으로 주 2회 추첨한다. '웨이리차이(威力彩)'는 파워볼과 비슷하다. 1등 당첨금이 계속 누적되어 수십억 대만달러(NTD)에 달하는 최고액 당첨금을 배출하기도 한다. 매일 추첨하는 소액 추첨도 있다. '진차이(今彩)539'는 39개 숫자 중에 5개를 뽑는 소액, 고빈도 로또다.

긁어서 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즉석식 복권도 많다. 즉석복권은 연말이나 명절에 특히 더 많이 구입하고, 서로 선물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복권까지 더해진다. 경기 결과뿐 아니라 점수도 예측하는 방식이다. 스포츠 복권의 수익 일부는 스포츠 발전 기금으로 환원하는 등 모든 복권은 수익금을 사회로 환원한다. 당연히 발행, 판매, 수익금 활용 등 전 과정을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한다. 복권 판매점 운영권은 장애인, 대만 원주민,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간다. '공익(公益)'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다.

한국에도 복권 판매점이 많지만, 대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독립된 자영업자라도 공통된 색상과 로고를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더 눈에 자주 띈다. 공익채권 로고에 추첨형, 즉석식, 스포츠 복권의 로고들이 알록달록하게 붙어서 가게 안팎을 장식하고 있다. 대부분 가게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다. 가게 안은 물론이고 가게 앞에도 앉아서 담배를 태우며 쉴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다. 대형 TV에는 스포츠 중계가 나온다. 복권을 구입하는 손님, 앉아서 쉬면서 가게 주인장과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복권시장의 규모도 크다. 전체 규모는 한화로 4~5조 원 규모다. 6~7조 원 규모인 한국보다 작지만, 1인당 복권 소비금액을 보면 17~22만 원 정도로 한국의 12~14만 원보다도 높다.

대만이 복권 천국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도박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카지노가 없다. 외국인을 위한 카지노를 외딴섬에 만들려는 계획도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했다. 경마, 경정, 경륜도 없다. 그레이하운드 레이스나 투계, 투견도 없고, 소싸움도 없다. 일본에 넘쳐나는 '파친코'도 없다. 운을 시험하고 '인생 한방'을 노릴 수 있는 합법적인 도박은 오직 복권뿐이다. 한국과 일본도 도박과 사행산업에 대해 보수적이지만 대만은 이들을 한참 뛰어넘는다.

중국 본토를 포함한 중화권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도박에 대한 인식은 비슷하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사회악이다. 역설적으로 한중일은 세계적으로 도박을 좋아하는 나라다. 전 세계 어느 카지노를 가도 이들이 가장 중요한 손님들이다. 숫자도 많지만 베팅도 많이 한다. 오락으로 즐기기보다는 한방으로 인생을 바꾸려 한다. 아마 이들이 한꺼번에 발을 끊는다면 카지노 산업 자체가 붕괴될 지도 모른다. 엄격한 규제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워낙 좋아해서 엄격한 규제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도박을 좋아하는데 사회적 시선은 엄격한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한국은 도박을 엄격하게 규제하지만 몇 개의 탈출구가 있다. 정부의 통제하에 운영되는 각종 복권에 더해 '강원랜드'라는 내국인 카지노가 있고, 경마, 경륜, 심지어 민속놀이 소싸움도 있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는 도박산업들도 사회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는데, 음성적인 불법도박이나 회색지대에 있는 사행성 게임도 많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사설 도박장, 온라인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법도박, 스포츠 베팅 사이트 등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 상의 '확률형 아이템' 등이 회색지대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일본 역시 도박에 엄격하지만 파친코라는 탈출구가 있다. 파친코는 법적으로 도박이 아니지만 사실상 규제를 피한 도박이다. 구슬을 구입해서 게임하고, 당첨된 구슬을 상품권이나 지폐로 바꿀 수 있다. 돈을 걸고 운에 따라 돈을 버는 구조는 도박의 본질에 가깝다. 그 시장 규모와 매장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 파친코 시장은 한화로 약 140조 원 규모고 전국에 7,000개가 넘는 매장이 운영 중이다.

중국은 도박에 대해 가장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지만, 마카오라는 엄청난 예외가 있다. 국내에서는 엄격한 규제에 억눌린 중국인들은 중국 본토 바깥과 온라인에서 큰손 노릇을 한다. 마카오, 필리핀, 캄보디아는 물론 호주, 미국에서도 카지노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항상 중국인이다.

이처럼 한중일 세 나라는 도박에 매우 엄격하지만, 도박에 대한 인기는 식지 않는 공통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대만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은 도박을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오직 복권이라는 공식적인 탈출구를 열어두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온라인 불법도박, 해외 원정도박 등 불법적인 탈출구도 있겠지만, 그런 범법행위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와 달리 합법적이고 소소하게 사행심을 채워주는 탈출구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가족과 친구끼리 즐기는 마작이다.

마작은 대만의 국민 보드게임이다. 한때 한국에서 가족들이 모이면 화투를 꺼냈던 것과 비슷하다. 고스톱처럼 도박성이 강하다.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 식으로 한판에 큰 승부가 나는 것처럼 마작에서도 짜릿한 큰판이 나온다. 큰돈이 오고 가는 불법 마작판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지만, 대만인들에게 마작은 대화를 나누면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명절이나 주말에 가족, 친구들이 모여서 논다. 네 명이 둘러앉아 적은 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데, 놀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동참하는 일도 있지만, 눈이 벌게져서 밤새 마작판을 벌이는 건 아무래도 나이 든 아저씨들의 문화다.

▲ 대만의 가족형 아케이드 오락센터 체인 '톰스월드'의 모습. 말 그대로 '가족을 위한 오락실'과 '카지노 체험장'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지만, 법적으로는 분명히 합법적이며 필리핀 등 다른 나라에도 진출한 오락 비즈니스다. ⓒ톰스월드 홈페이지 www.tomsworld.com.tw 캡처

또 다른 탈출구는 오락실이다. 거리마다 인형뽑기 가게도 제법 많지만, '톰스월드(Tom's world)'라는 대형 오락실이 전국에 7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대만을 대표하는 가족 아케티드 오락센터인데, 나의 첫인상은 카지노 체험장 같은 느낌이었다. 외형은 한국의 대형 몰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오락실과 비슷하다. 슈팅 게임, 대련 격투 게임부터 농구공 던지기 같은 스포츠 게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문제는 파친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행성이 큰 게임들도 제법 많다는 점이다.

카지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먼저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조명이다. 게임 방식도 비슷하다. 일단 전용 코인을 구입한다. 카지노에서 칩을 구입하거나, 파친코에서 구슬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코인을 넣고 게임을 하면 결과에 따라 종이 쿠폰이 나온다. 매장에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상점이 있어서 장난감, 인형, 간단한 생활용품, 문구류, 팬시 상품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게임을 더 하기 위해서 쿠폰을 코인으로 바꿀 수도 있다. 카지노, 파친코와 차이가 있다면 그 쿠폰을 현금이나 환금성 상품권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카지노라고 부를 순 없어도, 카지노 체험관이라고는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한 이 오락실은 아이를 데리고 온 대만인 가족들이 붐빈다. 한 시간 정도 즐겁고 놀고 쿠폰 몇십 장을 얻어서, 휴대용 티슈나 색연필로 교환해 돌아가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수천 장은 돼 보이는 쿠폰을 바꾸러 오는 손님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이랑 열심히 두더지 머리를 때려서 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좀 더 도박성이 강한 게임에서 잭팟이 터진 거다. 실제로 그런 게임기 앞에 코인을 쌓아놓고 무심하게 게임을 반복하는 손님들이 꼭 있다. 헝클어진 머리나 멍한 눈빛이 단순히 아이 데리고 오락실에 온 부모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쿠폰을 현금화하는 루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장면이다.

홀덤(Hold'em)은 최근 대만에서 각광받는 새로운 탈출구다. 홀덤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포커 게임인데, 얼마 전부터 대만에서 열리는 홀덤 대회가 아시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상금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APT 타이베이 챔피언십'은 60억이 넘는 총상금 규모로 필리핀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대회의 상금 규모를 압도한다. 도박이 아니라 기술을 겨루는 두뇌 스포츠이고, 돈을 따는 게 아니라 상금을 받는 식이지만 포커는 가장 전통적인 도박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만에서 홀덤바와 홀덤 토너먼트 대회가 인기를 끄는 이유 역시 복권에 한정된 엄격한 도박 규제의 탈출구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덧붙여 대만에서는 모든 영수증이 복권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추첨해서 당첨금을 나눠준다. 그때 영수증에 인쇄된 QR코드를 스캔하면 당첨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도 현금 거래를 많이 하는 대만에서 탈세를 방지하고 영수증을 꼭 챙기게 하려고 만든 제도라고 한다. 영수증 사용을 독려한느 방식이 복권이라는 것이 정말 '복권 천국 대만'다운 발상이다. 영수증 복권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다. 최고 상금이 우리 돈 5억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대만 복권산업 규모를 계산할 때 영수증 복권도 어떤 식으로든 추가해야 할 것 같다.

▲ 대만에서 물건을 사고 받는 모든 영수증은 추첨을 통해 '상금을받을 가능성'을 가진 '복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열심히 영수증을 챙기고, QR코드를 확인하거나 영수증을 기부하기도 한다. 가끔 몇만 원 정도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는 일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필자

도박을 참 좋아하는데 복권 외에 합법적인 도박이 없는 나라. 그리고 도박할 방법은 없지만 다양한 탈출구로 그 재미를 느끼려 하는 국민들. '복권 천국 대만'이라는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다.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정답은 없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도박'이라는 난제에 대처하는 중이다. 그래도 카지노나 경마로 패가망신한 사람들보다는 복권 때문에 망한 사람이 더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범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쓰는 일을 하며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제주도에서 바람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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