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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구를 위한 에너지 전환인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공공재생에너지가 우리의 대안이다

폭우로 동네 하천이 넘쳤다는 소식, 폭염에 일하던 노동자의 산업재해 소식이 들려온다. 생존이 걸린 기후재난 앞에서, 심화하는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데엔 이제 이견이 없는 듯하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해 온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리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이 "생존의 문제"라며 '에너지 전환'을 하겠다고 공표하고 있다. '기후 정부'로 주목받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기후위기를 넘어설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산업 성장의 수단으로 전락한 '재생에너지 확대'

이재명 정부 에너지 정책의 주된 방향은 '재생에너지 확대'다.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축소하고, 전국 각지에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이라기보다는 '산업 성장 전략'에 가깝다. 현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녹색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고 있으며, 주요 메시지 또한 '산업 경쟁력' 'RE100 대응' 등 기업 중심 키워드에 집중되어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이며, 이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총량을 줄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온실가스의 상당량은 산업 부문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산업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에너지 소비도 줄이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 전체 에너지 소비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에너지 수요는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더군다나 정부가 미래산업으로 키우려는 반도체·이차전지·AI·수소 등은 에너지 집약산업이라는 점에서 전력 수요는 더 급증할 걸로 예상된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력 수요 증가를 전제로 하며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공급 확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추기는 방향인 것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한다고 해도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조건이 달라지지 않으면 기후위기 대응은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에너지 소비가 계속 증가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미봉책일 뿐이며, 산업 성장 기조 하에 배치된 기후위기 대응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를 가속해 온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이루어지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한계가 분명하다. 가령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하더라도, 산업이 여전히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자원 채굴과 폐기물을 늘린다면 지금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탄소 배출은 줄일 수 있을지라도 기후위기의 핵심 원인인 자원 착취와 과잉생산이 그대로 남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데 그칠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싸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위해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던져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전환인가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며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이 '에너지 고속도로'와 'RE100 산업단지'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에너지 생산지에서 전국 산업단지로 전력을 신속하게 이송하기 위한 대규모 송전망 사업으로 서해안을 시작으로 남해안과 동해안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누구나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분산형 에너지 네트워크'로 소개하며, 재생에너지를 전국 곳곳에 전달하는 '고속도로'로써 기후위기 대응책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안 지역의 해상풍력발전소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산업단지와 대도시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경로를 육상의 초고압 송전탑뿐 아니라 해저 케이블까지 동원하며 송전망 체계를 바다에까지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산업과 대도시를 위한 에너지 공급 기지로 지역을 취급해 온 문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에너지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참여를 배제하며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었던 추진 과정과 함께 해왔다. 송전탑 건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생업을 흔들며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지만,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은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알량한 보상으로 주민들을 가르고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며 강행되어왔다. 재생에너지가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햇빛과 바람으로 소멸 위기의 지방을 살려보겠다며 "에너지 기본소득"을 내세우는 전남에서는 도내 마을을 관통하는 고압 송전선로가 총 627킬로미터(km) 건설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소음과 진동, 전자파 피해, 삶의 터전 파괴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수많은 결정이 비공개적으로 진행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서도 반복될 우려가 크다.

RE100 산업단지는 지역이 에너지 생산지인 동시에 기업을 위한 소비지로써 이용되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RE100 산업단지는 입주한 기업들이 100%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정책이다.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은 기후위기 시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 할인, 세제 감면, 규제 완화 등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지역의 자원을 장기적으로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주된 방향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겠다며, '규제 제로' 구역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녹색'과 '상생'을 앞세운 기업 유치 정책일 뿐이다 이미 지자체 간 경쟁에 돌입했는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공론화하는 과정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개발 이익이 우선되며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도 크다. '생존의 문제'로 이야기되는 에너지 전환이 거꾸로 모두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지금의 구조를 바꾸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두'를 위한 에너지 전환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서 그 생산과 소비를 모두 민간 기업에 내맡기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기업에게 더 많은 자원과 권한을 몰아주는 현재의 방향은, 기후위기의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 또 다른 돈벌이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방향으로 전환을 이끌 것인지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의 90% 이상이 민간 소유이며, 해상풍력 사업의 절반 이상을 해외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는 한번 건설되면 수십 년간 유지되어야 하지만, 민간 자본은 단기적인 수익성에 따라 투자와 철수를 결정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의 일관성과 그에 대한 책임이 확보되기 어렵다. 민간 자본에게 에너지 전환이라는 공공의 과제를 맡긴다면 위기를 낳은 시스템만 강화할 뿐, 진정한 전환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공공재생에너지운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모두의 것인 햇빛과 바람이 특정 기업의 이윤 수단으로 독점되지 않도록 그 소유와 운영, 계획과 결정 권한을 공공과 시민이 함께 나누는 체계를 지향한다. 발전공기업, 지자체, 시민협동조합이 사업 초기부터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에너지를 모든 이들의 자원으로 만들어가는 구조다. 이는 단지 소유나 운영의 주체를 전환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껏 에너지 정책에서 시민들의 자리를 지워온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아 공공성과 민주성을 되찾자는 시도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공공이 주도하는 전환은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방향에 대한 전환으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맞춰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여 산업별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고,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은 에너지를 이윤의 수단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자원이자 권리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는 과잉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한 기존의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다. 에너지원만 바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공공성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 에너지 전환,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 우리 모두를 위한 전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권리로 : 지금, 여기의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의 책임은 함께 나눠야 하면서, 그 위험은 왜 가장 약한 이들에게 집중됩니까?"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외침이다. 올해 말부터 태안화력발전소를 시작으로 폐쇄되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일자리 대책 넘어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그동안 발전공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 작업을 외주화하며 비정규직 노동을 확대해왔다. 그 위에 김용균의 죽음이 있었다면, 이제는 발전소 폐쇄까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더 쉽게 회피하는 명분으로 더해지며 김충현의 죽음이 있었다. 이러한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정부를 향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는 전환을 요구하며 발전노동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 나섰다.

지난 7월 27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기본법(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청원이 5만 명의 동의로 성사되었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대안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에 많은 이들이 기꺼이 힘을 모아주고 있다. 성장을 내세우며 산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전환에만 골몰하는 정치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내맡길 수 없다. 공공성과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 권력이 아니라 권리가 중심 되는 전환. 지금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길 위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로 만들어가자.

▲'태안화력 고(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김충현 협의체' 구성 지연 규탄 및 약속이행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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