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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완성한 라틴아메리카 원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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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완성한 라틴아메리카 원형의 역사

[안치용의 노벨상의 문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함께 모여 앉아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이나 되풀이하고,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신경질이 날 정도까지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얘기하는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또 들려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얘기를 듣는 사람이 그러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듣고 싶다고 대답하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라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자리를 뜰라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자리를 뜨라고 부탁한 적이 없고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는 등, 그런 식으로 며칠 밤이 새도록 지속되는 지독한 모임에서 밑도 끝도 없이 장난을 쳐 대곤 했다."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라틴아메리카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은 누구나 제목은 아는 소설이다. 100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신화적 요소와 환상적 묘사를 결합하여 다룬다.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인데다 가문 구성원의 이름이 나중 세대에 다시 사용되기에 헷갈리기 쉽다.

시작은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부부. 이 둘은 사촌간으로 둘 사이의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자식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부부가 40명의 고향 젊은이와 함께 건설한 마을이 마콘도이다. 이곳에서 7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가 펼쳐진다. 고독이 핵심 주제라면 근친상간은 주요 소재다. 근친상간에는 신화적인 성격과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에 관한 상징성이 담겼다.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되는 비극은 가문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르카디오(Arcadio)'와 '아우렐리아노(Aureliano)'라는 이름을 반복해 사용하는 것과 연관된다. 예언서에 적힌 대로 부엔디아 가문은 고독 속에서 멸망한다.

100년에 걸쳐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가장 뼈대가 되는 사람은 부엔디아 성을 갖지 않은 호세 아르카디오의 아내 우르술라이다. 마콘도의 이브 같은 존재이다.

남편이 실험에 미쳐서 가산을 탕진하고 차남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동물 모양 과자를 만들어 팔아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 부엔디아 가문의 주춧돌 격인 인물이다. 억척같은 생활력과 함께 인간미를 갖춰 남을 많이 배려한다. 가족의 잘못을 막으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애를 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예컨대 양딸인 레베카의 결혼을 뒤로 미뤘다가, 그녀가 장남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 사태를 방조한다. 이 집안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로, 무려 현손자 아우렐리아노의 탄생까지 보고 쪼그라들어 죽는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태어났을 때 울지 않는 등 초인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에 서툴다. 금물고기 세공에 취미가 있다. 아내의 이른 죽음 이후 차가운 사람으로 변했고 참전 이후 더 냉혹한 면모를 드러낸다.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 각지에서 17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는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이다. 작가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모델로 해 창조했다고 한다. 말년엔 방에 틀어 박혀 금물고기를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금물고기를 팔아 금화로 바꾸고, 금화를 녹여 금물고기로 바꾸는 시지포스의 형벌 같은 일을 한다.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말로를 맞는다. 아버지가 죽은 밤나무 아래에서 고독하게 죽는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년, 콜롬비아)는 콜롬비아의 대서양 쪽 작은 도시인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어려서 외조부모 아래서 자랐다. 그의 부모가 직업을 찾아 인근 대도시 바랑키야로 이주하며 어린 마르케스를 그들에게 맡겼고 외조부모는 어린 마르케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할머니는 미신과 민담 등을 많이 들려주어 그의 상상력을 키워줬고, 외할아버지는 콜롬비아 내전에서 활약한 퇴역 대령으로 훗날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소재가 됐다. 정치 역사 명예 배신 등에 관한 개념을 배웠다. 자연스럽게 아라까따까는 <백년의 고독>의 무대가 된다.

청소년기는 부모와 합류하여 바랑키야에서 성장했고, 법학 전공으로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자유파 신문인 <엘 에스펙타도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로마 특파원으로 본국의 정치적 부패를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을 계기로 유럽,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사실상 유배 상태에 처한다. 쿠바혁명 후에는 쿠바 언론사 소속으로 특파원 생활을 이어갔다. 생애 대부분을 콜롬비아가 아닌 멕시코시티 유럽 등 해외에서 보냈다. 초반은 고향에서 강한 토속성과 함께 하고 어른이 된 이후론 세계를 떠돌며 산 인생이었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

<백년의 고독>은 전 세계 수십 개국에서 번역 출판돼 2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사로잡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 작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며 세계문학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1960~70년대에 중남미 작가들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시기를 '붐(Boom) 세대'라고 하는데,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보르헤스 등과 함께 '붐 세대' 대표 작가이다. 23년을 구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백년의 고독>이 1967년 출간되었을 때 전세계 독자들은 즉각적으로 열렬하게 반응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당시 말해지던 '소설의 죽음'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한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체코의 세계적인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소설의 소생과 마르케스를 직접 연결지어 평가한 셈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적 역사와 역사 속 인간의 조건을 개별적인 관점과 전체적인 관점을 동시에 갖추면서 파악했다. 여기에 유머에 녹여 넣으면서 신화와 민담이 풍성하게 우러나도록 해 무엇보다 소설이란 게 읽을 만한 것이 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에서 마콘도는 에덴동산처럼 고립된 이상향이었고 어쩌다가 집시들의 방문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콘도의 고립은 금세 깨져 시장의 등장, 내전, 철도 건설, 외국인 바나나 농장 건설 등 문명사회와 접촉하며 탈고립의 사건들로 비화한다. 근대화와 신식민지라는 중남미의 정치 및 사회 상황의 문학적 반영이다. <백년의 고독>이 신화와 민담, 환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비현실적 전개를 통해 리얼리즘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지만, 주제 의식에서는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말에 '돼지 꼬리를 가진 아이'가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나며 예언이 실현된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 떼에 죽임을 당한다. 이 아이의 아버지이자 7대를 이어온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인물의 이름이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인 것 또한 상징적이다. 성서의 제국과 유다왕국의 멸망 등과 연관된다. 인용문은 <백년의 고독>의 글쓰기 방식과 전개 방식을 함축한다. 그런 식으로 소설이 펼쳐진다. 라틴아메리카 역사도 인용문과 비슷한 점이 있음직하다. 1982년 수상

▲Venus Guiding Eneas and The Trojans To The Latin Shore (1862) William Page (American, 1811-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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