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이 확정됐다는 속보를 접했다. 그 순간 나는 몇 달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던 그 겨울날을 떠올렸다.
지난해 12월,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서울 동십자각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광화문 부근을 우회하던 버스가 꽤 오래 정차했는데, 누군가 열어둔 차창 밖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연설이 들렸다.
"저는 올해 50대 후반입니다. 나름 잘 살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자라 좋은 대학에 갔고, 대학생활 동안 데모를 쫓아다닌다고 수업도 매번 빼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졸업이 어렵지 않았고, 졸업 후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 취직해 아이 둘을 명문대에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피땀 흘려 이룬 산업화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대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가도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소위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586 운동권들, 데모나 쫓아다니던 제 또래들이 다 민주당 가서 배지 차고 국회의원 한 자리씩 해먹으면서 자칭 진보란 작자들이 나라를 망쳐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성 청년이 하차벨을 다급하게 누르며 기사에게 여기서 세워달라고 했다. 그의 가방 한쪽에는 작은 태극기가 꽂혀있었다. 나는 쥐고 있던 응원봉을 주머니에 넣어 가렸다. 순식간에 공기가 서늘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저 청년들의 분노는 정말 '586 세대'를 향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겪어온 불공정한 경쟁 구조에 대한 것일까?

끔찍했던 입시 현장
2010년대 중반, 내가 사교육 강사로 일했던 시절을 돌이켜본다. 당시 대학 입시에는 '있을 수 없는 전형'이 있었다. 서류와 면접이 기본 틀이었는데, 서류전형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연구 참여, 인턴십, 봉사활동, 비교과 활동을 전부 기록할 수 있었고, 증빙자료만 간단히 첨부하면 됐다. 쉽게 말하면, 학교 밖에서 했던 모든 활동을 제약 없이 기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받은 오더는 논문 대필이었다. 학생 5명분의 원고료를 줄 테니 5명을 논문 공저자로 만들어서 몇 가지 논문과 보고서를 완성해 달라는 것이다. 대치동에는 그런 산출물을 대필해 주며 큰돈을 버는 사교육 업체가 즐비했다. 논문 대필, 보고서, 자소서 대필은 사교육 시장에 거대한 기회였다. 평생 영어, 수학만 수업하던 어떤 강사들은 나에게 "너희 로또 맞은 거 아니냐. 이때 왕창 벌어라"라는 말도 했다. 학자금 대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학부모들이 제안한 금액은 내 한 학기 등록금에 가까웠다.
나는 거절했다. 대단히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났기 때문이다. "대필해서 서류를 허위로 제출했다가 면접 때 다 들통날 게 뻔하다"며 "차라리 논문 작성 강좌를 열 테니 학생이 수강하는 게 어떠냐"고 학부모를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이들이 내신과 수능 대비로 시간이 없어 직접 논문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그런 작업을 의뢰한 학부모들이 다 '잘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분들은 "누구는 교수 딸이라, 누구는 대기업 다니는 누구 아빠 아들이라, 누구는 고위공직자라 서로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다 부모 '빽'으로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어 이렇게 사교육 업계에 돈이라도 밀어 넣어 해줘야 하는 처지"라고도 했다.
추후 교수님들에게 그 전형에 관해 물을 기회가 있었다. 한 교수에게 "면접에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정말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이라는 표정으로 보면서, "그건 그냥 잘사는 학생들을 뽑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거 모르니?"라는 답을 해줬다.
내가 맡은 학생들은 국립묘지나 노인 요양병원에서 봉사 시간을 채웠는데, 강남의 입시 설명회에서 "봉사활동도 진로와 연관된 것을 해야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수십 시간의 활동증을 폐기했다. "성실히 했으면 괜찮다"는 내 말은 언제나 공허했다. 그 광기의 시절에 아등바등해 모든 악재를 뚫고 합격한 학생들도 있었다. 차라리 이딴 전형에 목숨을 거느니 수능을 잘 봐서 승부를 보겠다고 학교를 떠난 제자들도 꽤 있었다.
결국 한 남학생은 수시전형으로 원하는 대학 입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퇴해 검정고시를 봤다. 몇 년 후, 그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맞은편 재수학원 옥상에서 매일 죽을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내가 있는 교실 불빛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첫 마디는 "선생님, 저 정신과 좀 데려다주세요"였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2017년경이 되어서야 학교 밖 어떤 활동도 기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입시 전형이 바뀌었다. 그런 제도가 무려 7년간 지속되었다. 그 7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렸을까. 물론 조국 전 대표가 그러한 입시제도를 만든 것도 아니고, 그 일가족이 그런 사회를 부추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 죄가 없고, 누구나 그 정도는 했던 때"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위조는 했지만 입시 당락에 영향이 없었다"거나 "봉사시간을 부풀린 것이 뭐 대수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때 그 제도 아래에서 고통받았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재수학원 옥상에서 절망했던 그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것
2025년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장에서 586 민주화 세대를 향한 증오의 언어가 쏟아졌다. 마이크를 잡은 청년들은 입시비리에서 시작된 '부모찬스'와 기회의 불평등을 약자 혐오로 치환하며 극우세력과 공명하고 있었다.
이번 사면을 계기로 우리는 또다시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극단화된 갈등과 마주하게 됐다. 사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 부와 권력의 대물림 문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 꿈틀거리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동체가 지녔던 최소한의 윤리적, 상식적 감각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그 정도는 했다"는 식의 상대주의, "입시 당락에 영향이 없었으니 괜찮다"는 식의 결과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되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윤리적 감각을 잃어버렸는가? 공정과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마저 무너뜨린 채 진영논리에만 매몰돼 있지는 않은가?
그 버스 안에서 느꼈던 서늘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분열과 증오로 얼룩진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대화할 수 있을까? 정녕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를 공유할 수 있을까?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고 진보적 가치의 매력 자본을 거머쥐고 법무부 장관까지 된 그와 그들이, 어떤 세대에 혹은 그 사회 전체에 "아, 한국은 신분제 사회였지 참." 이 말을 재확인시킨 일이라면 그 죄가 작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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