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건강보험이 시민의 건강이 아닌 이윤 창출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민간기업이 건강보험을 운영할 수 없으며, 민간보험은 건강보험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이해하지만, 보건의료까지 시장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 한국 시민사회는 이러한 상식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싸워왔다.
최근 이런 사례를 다룬 연구가 발표되었다(☞논문 바로가기: 공공성 담론의 힘 - 보건의료체계 민영화에 맞서는 대항-헤게모니 구성체 분석). 이 연구는 10년 넘게 보건의료체계 민영화에 대항해 온 시민사회와 일반 시민의 참여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공공성 담론이 건강권, 건강형평성, 연대,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보건의료체계를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의 제도가 시민들의 인식과 이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공공성을 둘러싼 담론과 제도 모두가 시민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자유주의에 맞서 왔다.
하지만 건강을 상품화하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점점 더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여기에 과학과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극우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모두가 건강한 사회에 도달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이제는 신자유주의뿐 아니라 극우까지 함께 고려한 분석, 전략, 실천이 요구된다.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현재 공공성 담론·제도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먼저 공공성은 '국민'이라는 경계 안에 갇힐 위험이 있다. 내부와 외부를 나누고 후자를 배제하는 전략은 신자유주의가 우회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극우가 성장하는 토양이 된다.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를 포괄하고 다른 지역의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넘어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 이상의 전략이 필요하다. 나의 건강을 넘어 타인의 건강까지 돌볼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사람들이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진심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불평등한 지배 구조와 권력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명함과 동시에 동료 시민이 더 비판적으로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있는 배경이 요구된다. 이런 가치가 담긴 이야기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극우 연구가 보여주듯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평등과 그로 인한 필요가 항상 평등을 향한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한국의 건강 담론은 의료를 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건강 보장을 의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사고한다. 일자리, 주거, 교육, 가난, 기후, 차별과 혐오, 참여, 권력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그 배경에 있는 원인의 원인까지, 즉 현재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건강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호명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건강과 질병으로 인한 아픔은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일부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려는 요구는 개인, 보건의료제도, 가시적인 사회적 결정요인을 넘어 사회 질서에 대한 공통의 민주적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이 가능성을 현실의 전략과 실천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불필요한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여겨져 온 뿌리 깊은 구조까지 바꿔야 한다.
*서지 정보
Ha, J., & Kim, C.-y. (2025). The Power of 'Publicness' Discourse: An Analysis of Counter-Hegemonic Formation Against Health System Privatisation.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47(6), e70020. https://doi.org/10.1111/1467-9566.70020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