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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하루 14시간 운전하다 '쾅'…배달 현장에는 법도 조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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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하루 14시간 운전하다 '쾅'…배달 현장에는 법도 조사도 없다"

[인터뷰]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최근 5년 산업재해 승인 1, 2위 기업은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였다. 올해 들어서도 라이더유니온지부가 파악한 것만 16명의 라이더가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재해 근절 근무회의를 열어 공개한 날로부터 일주일 사이에도 두 명의 라이더가 각각 버스에 치어 숨졌다.

그러나 배달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질타나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통상적 산재 대응에 비춰보면 이상한 일이다.

정부의 침묵을 깨고자 지난 12일 100여 명의 라이더가 직접 거리로 나섰다. 당일 이들은 지난 5일 숨진 고 김용진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이 사고를 당한 경기 군포 당동사거리에서 출발해 지난달 31일 또다른 라이더가 숨진 서울 서초 반포역 인근 도로를 거쳐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행진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로 위에서 숨진 라이더들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차렸다.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국화꽃을 놓은 검은 단상 뒤에 배달노동자 16명의 영정을 형상화한 현수막을 걸고 차린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분향소에서 정부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을 지난 24일 만났다. 그에게 라이더를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과 필요한 대책을 물었다. 인터뷰 중에도 한 명의 분향객이 찾아와 국화꽃을 놓으며 묵념을 하고 갔다.

구 지부장은 일정 배달 건수를 채울 경우 배달료를 더 지급하는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의 보상 제도가 라이더들에게 장시간, 과속 운전을 강요한다며 지난 5일 숨진 김용진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도 이때문에 주 6일 하루 14시간 운전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밝혔다.

라이더 산재사망을 교통사고로 분류해 중대재해 조사를 수행하지 않고, 배달 플랫폼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라이더 산재를 막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구 지부장은 이를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는 △라이더 중대재해 조사 제도 구축 △플랫폼 노동자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최소수입 보장을 위한 안전운임제 도입 △과도한 배달 건수 기준 보상제도 규제 등을 언급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했을 당시 구 지부장으로부터 이미 이 요구안을 전달받았다.

다만 구 지부장은 이후 노동부 연락은 없었다며 오는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기 전 정부가 라이더들과 만나 산재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종합대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구 지부장과 한 인터뷰 전문이다.

▲ 산재사망 배달 노동자 추모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프레시안(최용락)

프레시안 : 지난 12일부터 라이더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대통령실 앞에서 올해 들어 사망한 라이더 16명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차렸다. 분향소를 지키며 라이더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구교현 : 라이더 일을 2, 3년 정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사고를 당한 라이더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알게 된다. 그동안 그런 분들을 제대로 추모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하는 활동이 부족했고, 이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진 라이더들이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분향소를 차리고 목소리 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라이더들이 있었다.

프레시안 : 올해 들어 산재로 숨진 라이더 중에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 5일 사망한 김용진 씨다. 고인은 생전에 어떤 근무환경에서 일했나?

구교현 : 고인이 버스에 치여 돌아가시기 전날이 쿠팡이츠 리워드를 채웠는지 확인하는 기준일이었다. 그래서 더 쫓기듯 일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쿠팡이츠 리워드 기준이 2주 동안 400건 배달에 수락률 90%다. 이걸 채우면 배달료를 30% 더 준다. 주 6일 하루 30건 이상 배달해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김용진님이 쿠팡이츠에서만 일한 게 아니라 배달의민족 일도 했다. 배민에도 프로모션이 있는데, 세 시간에 10건 배달하면 하루에 2, 3만 원 더 주는 방식이다.

평균적으로 라이더들이 한 시간에 2, 3건 정도 배달한다고 한다. 김용진님은 천천히 달리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났었다고 하니, 한 시간에 3건 배달도 빠듯했을 거다. 그런데 고인께서 쿠팡이츠 리워드와 배민 프로모션 기준을 모두 채운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 14시간 주 6일 정도 일했을 걸로 짐작한다.

일주일에 52시간 이상만 일해도 불법인데, 고인이 일한 시간이 그걸 훌쩍 뛰어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 상황을 잘 인지하고 회피하기 어려웠을 거다.

프레시안 : 배달 건수를 기초로 한 쿠팡이츠의 리워드이나 배민의 프로모션이 사실상 출퇴근 시간을 감독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구교현 : 30%를 더 준다니 모두가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 기준에 맞춰야지’하고 일을 시작하는 순간 몸을 갈아 넣게 된다. 그러니까 배달 플랫폼사들도 기준을 채운 사람과 못 채운 사람 간 수입 격차를 크게 둔다.

프레시안 : 김 조합원 외에도 15명이 더 사고로 숨졌다. 사고 원인이나 생전 근무환경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또 있나?

구교현 : 그 외에는 잘 모른다. 라이더 산재에 대해서도 보상은 이뤄지지만, 교통사고로 취급하기 때문에 중대재해 조사를 안 한다. 조합원이 아니면, 우리도 정보를 얻기 어렵다.

▲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만든 고 김용진 조합원 부고장. ⓒ라이더유니온지부

"배달 현장에는 중대재해 조사도, 중대재해법도 없다"

프레시안 : 중대재해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사이에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산재율 1, 2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통상 위험하다고 여겨지던 건설, 조선 기업을 모두 제쳤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구교현 : 안전관리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전혀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산재 보상이 되긴 하는데, 보상을 넘어 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대책이 없다. 라이더들이 입은 재해를 교통사고로 처리하니 산업안전 관점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사업주가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사측이 서비스 품질을 유지한다며 과속과 과로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프레시안 : 앞서 말한 리워드나 프로모션 외에도 라이더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느껴지는 알고리즘이 더 있나?

구교현 : 최근에 배달의민족이 라이더가 자신에게 뜬 콜을 독점적으로 수락할 수 있는 시간을 1분에서 40초로 줄였다. 이러면 라이더들은 그만큼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고 빨리 수락해야 한다.

과거에는 독점적 콜 수락 시간 자체가 없어서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어떤 라이더는 운전 중에도 콜을 잡기 위해 핸드폰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그렇게 콜을 잡는 걸 '전투콜'이라고 불렀다. 이걸 없애자고 콜 수락 시간을 도입했고, 배민은 1분, 쿠팡이츠는 40초를 적용했었는데 결국 더 위험한 방향으로 수렴됐다.

배민이 운영하는 라이더 등급 제도도 문제다. 최상위 등급을 받으려면 콜 수락률이 50%는 돼야 된다고 한다. 과거에는 3개월 간 750건에 대해 50%를 달성하면 됐는데, 이제는 한 달 내내 모든 콜의 수락률이 50%를 넘어야 최상위 등급을 준다. 일하는 내내 모든 콜에 신경을 쓰게 만든 거다.

프레시안 : 역시 배달 플랫폼 기업이 노동강도를 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교현 :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아주 세밀하게 높여가면서 최대한의 생산량을 찾는 것 같은 일이 라이더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거다.

심지어는 그걸 약관 변경을 통해 한다. 라이더는 근로계약서를 안 쓰고 약관의 적용을 받는다. 약관은 불이익 변경일 경우에도 30일 전에만 공지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에는 30일 전 공지가 안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들은 다르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라이더에게는 약관이 취업규칙이나 다름 없는데, 이걸 이대로 두는 게 맞냐는 문제의식도 있다.

▲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실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 장관에게 라이더 안전대책 요구안 전달했지만

프레시안 : 정부가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낸다고는 하는데, 라이더 관련 대책은 상대적으로 비어보인다. 지난 12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을 찾았을 때 라이더 안전대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구교현 :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달라고 했다. 배달 플랫폼 기업이 라이더 안전을 위협하는 과도한 프로모션을 거는 데 대한 규제와 최소 수입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운임제도 제안했다.

기본적으로는 라이더들이 당한 재해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한다. 왜 사고가 많이 나는지 조사하고, 알고리즘과 배달료 등 배달 플랫폼 기업의 정책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점검해야 한다. 그런 자료가 있어야 제도 개선도 가능하다.

국토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도 담았다. 라이더들이 지켜야 될 자격 기준, 면허, 보험, 교육 등을 법제화해달라는 것이었다. 라이더들 입장에서도 규제가 강화되는 일이지만, 안전을 위해서 는 꼭 필요한 일이다. 배달 대행사 등록제도를 운영해 법을 어기거나 중대재해를 유발한 곳의 면허를 취소하는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프레시안 : 그 뒤로 노동부에서 연락이 왔나?

구교현 : 아직 없다. ‘여러 가지로 검토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만 듣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최저보수제를 제시하기는 했다. 지난 주에 발표된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에도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안법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정말 딱 그 한 줄뿐이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프레시안 : 김 장관이 여러 산재 현장을 찾았는데, 아직 라이더 분향소에는 안 왔나?

구교현 : 안 왔다. 라이더 안전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장관이 오지는 못하더라도 실무자라도 와서 협의를 하자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만 일부 왔다 갔다.

▲12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면담을 위해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방문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로부터 서한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산재 발생 1위 업종 배달 안전 대책 세워야

프레시안 : 가장 크게는 라이더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것 같다. 다만 라이더 중에는 생계 때문에 장시간 운행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구교현 :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장시간 노동을 하려는 라이더들을 전부 제어하기는 어려울 거다. 다만 라이더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줘야 한다. 지금은 너무 급여가 낮고, 리워드나 프로모션을 과도하게 거니 모두가 장시간 노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달 기본 단가를 높이고 프로모션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사고도 줄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소비자들이 라이더 산재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구교현 : 효과적인 조치로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다만 무료 배달이라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군가 배달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라이더들은 더 몸을 갈아넣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무료 배달에 익숙해지고 서비스 이용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데 대한 저항감이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라이더 노동안전 개선은 쉽지 않다.

프레시안 : 끝으로 주무부처의 장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구교현 : 이재명 정부가 산재 감축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다. 그러면 전체 업종 중에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배달업종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라이더들과 협의도 하고 요구안도 전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계속 지금처럼 싸울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말한 대로 산재 1, 2위 기업이 속한 업종의 안전대책을 세우는 일에 정부가 공을 들이면 좋겠다.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나오기 전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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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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