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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서 기자 무더기 살해한 이스라엘, '마지막 목소리' 침묵 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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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서 기자 무더기 살해한 이스라엘, '마지막 목소리' 침묵 노리나

로이터·AP 등 기자 5명 사망·구급대도 참변…"진실 침묵 위한 체계적 언론인 살해" 비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을 공격해 취재 중이던 기자 5명을 포함해 최소 20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쪽은 "실수"라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현장 영상에 따르면 같은 장소를 두 번 공격한 정황이 포착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참상의 목격자인 언론인을 침묵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5일(이하 현지시간) <AP>, <로이터> 통신, 미 CNN 방송 등을 보면 이날 이스라엘군은 기자들이 현장 생중계를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는 주요 장소인 나세르 병원 상층부 외부 계단에 두 차례 공습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취재 중이던 로이터, AP,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 영국에 기반을 둔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 기자 5명이 숨졌다. 기자 5명을 포함해 이 공격으로 최소 20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

기자들이 숨진 나세르 병원 계단참은 높이 덕에 주변 거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휴대전화 연결이 비교적 용이해 기자들이 보도를 위해 애용한 장소였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집트 알가드TV 특파원 이브라힘 카난은 "해당 장소는 로이터가 카메라를 설치한 곳으로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매일 로이터가 이곳에서 생중계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번 공격으로 숨진 로이터의 계약직 영상기자 후삼 알마스리 또한 지난 6주간 이 장소에서 생방송을 해 왔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이날 첫 공격 뒤 마스리가 나세르 병원에서 보내던 생중계 영상이 갑자기 끊겼다고 전했다.

<AP>는 이 공격으로 사망한 자사 프리랜서 기자 마리암 다가와 함께 일한 선임연출자 와파 슈라파가 "이제 그와 영원히 연락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슈라파는 첫 공격 뒤 다가와 연락이 안 돼 "촬영 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었다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 연달아 두 번 공습…'언론인 침묵 노린 고의적 공격' 비판 거세져

이스라엘 쪽은 이를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같은 장소를 10여 분 만에 두 번 공격한 상황이 포착되며 가자지구 참상을 폭로하는 언론인들을 침묵시키기 위한 고의적 공격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첫 공격은 이날 오전 10시 직후, 두 번째 공격은 10여 분 뒤인 오전 10시17분께 일어났다.

두 번째 공격 장면을 생중계한 알가드TV 영상을 보면 구조대 등 열 명가량이 첫 공격을 받은 계단참에서 사상자를 수습하고 있는 가운데 같은 장소가 공격을 받아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뒤 자욱한 연기로 작업 중이던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이후 연기가 걷히며 계단이 무참히 파괴된 모습이 드러났다. 첫 공격 뒤 해당 현장에서 촬영된 <로이터> 영상에도 유사한 장면이 담겼다.

해당 영상을 촬영한 기자 하템 칼레드는 두 번째 공습으로 부상을 입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같은 장소에 대한 두 번째 공격으로 첫 공격을 수습하러 달려 온 구조대원, 의료진, 기자들이 추가로 사망했다고 병원 관계자 및 목격자들이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이스라엘군은 같은 장소를 두 번 공격(double-tap)한 것 관련 즉각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공격이 사상자를 돕기 위해 온 구조대와 다른 민간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필립 라짜리니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25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오늘 더 많은 언론인이 가자지구에서 살해됐다. 기근 속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해 보도하는 마지막 남은 목소리들을 침묵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공격으로 숨진 영상기자 모하메드 살라마를 포함해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자사 기자 10명을 잃은 알자지라는 25일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이 "진실을 묻기 위한 명백한 의도"에서 이뤄졌다며 "이스라엘 점령군이 진실을 침묵시키기 위한 체계적 작전의 일환으로 언론인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살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스라엘, 국제언론 가자 출입 거의 2년 막아…가자서 기자 약 200명 살해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2023년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달 25일까지 최소 197명의 언론인이 가자지구에서 살해됐다. 이 단체는 "이스라엘은 CPJ가 기록을 시작한 이래 가장 고의적·치명적으로 언론인 살해 및 침묵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기록하고 증언하는 언론을 침묵시킴으로써 전쟁을 침묵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국제언론의 가자지구 취재를 막고 있어 가자지구 현장 취재 인력 자체가 희소한 상황이다. AP, 로이터는 25일 이스라엘 정부에 보낸 공동서한을 통해 살해된 언론인들이 가자지구에서 "목격자로서 중요한 활동을 수행했다"며 "이스라엘이 거의 2년간 외국 언론인의 가자지구 출입을 금지한 상황에서 이들의 활동은 특히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서한에서 이스라엘에 언론의 가자지구 출입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매체 <+972매거진>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언론인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연결점을 찾아 살해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이른바 "정당화 조직(Legitimization Cell)"을 운영 중이라고 복수의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의 동기는 안보가 아니라 선전으로, 조직원들은 가자지구 보도가 "(이스라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분노에 휩싸여 하마스와 연결해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기자를 찾으려 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세계 언론이 이스라엘이 무고한 언론인을 죽였다고 보도하면 곧바로 그다지 무고하지 않은 언론인 한 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들어온다. 그러면 마치 나머지 20명을 죽인 게 허용되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언론인 살해 뒤 많은 경우 이들이 하마스와 연계됐다고 주장해 왔다.

매체는 지난 10일 숨진 알자지라 기자 아나스 알샤리프가 정당화 조직의 최근 목표물이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당시 공격이 알샤리프를 겨냥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알샤리프와 하마스 연계를 주장했다.

프랑스24 방송은 기자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무장단체원으로 중상모략 당한 뒤 같은 혐의로 공습 당해 숨지는 양상이 명확해졌다고 언론자유단체들이 분석 중이라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서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잇따랐다. 25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한 성명에서 "의료인과 언론인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간섭, 위협, 피해 없이 필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공격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악"을 표했고 독일 외무부도 이 사건이 "반드시 조사돼야 한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독립적인 외국 언론의 가자지구 즉각 접근 허용 및 언론인 보호를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사건을 "용납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에 국제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네타냐후 "비극적 사고"…이스라엘군 "전쟁 현장 보도는 위험 수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5일 성명을 통해 "오늘 가자지구 나세르 병원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고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군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나세르 병원 지역에서 공습을 벌였고 언론인을 포함한 민간인 피해 보도를 인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에피 데프린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서의 보도는 엄청난 위험을 수반한다"며 "이스라엘군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없는 개인의 피해에 유감"을 표명했다.

CNN은 초기 조사 내용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 보안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나세르 병원 옥상에서 이스라엘군을 감시하는 하마스 카메라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공격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방송은 소식통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에 나세르 병원 카메라를 향한 무인기(드론) 공습이 승인됐지만 실제 사용된 건 전차 포탄으로, 첫 공격은 카메라, 두 번째 공격은 구조대를 향했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초기 조사 내용이 이스라엘군이 구조대 등 첫 공격 수습 인력을 의도적으로 겨냥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 공습으로 숨진 AP 통신 프리랜서 기자 마리암 다가(33)가 지난 6월14일 칸유니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25일 공격으로 다가를 포함해 기자 5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기자 5명을 포함해 최소 20명이 숨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 공습 뒤 공격 대상이 된 병원 상층부 계단 부근이 무너져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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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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