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는 팔레스타인의 빼앗긴 땅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부는 당신의 아미(ARMY·BTS 팬클럽)이기도 합니다. 제발 광고 활동을 하지 마세요. 이 문제를 알아보시고 생각해 주세요. 이번 광고를 중단하고, 인류의 편에 서주세요."
지난 7월 말과 8월 초 X를 뜨겁게 달궜던 해외 BTS 팬덤 글 중 하나다. 7월 31일 한국 코카콜라가 BTS 구성원인 뷔(본명 김태형)를 새 앰배서더(브랜드 홍보대사)로 발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코카콜라는 지난해 11월 팔레스타인 BDS전국위원회가 선정한 공식 불매 기업이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적극 연루된 행적이 드러난 후 불매 명단에 올랐다. 이에 일부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의 아미들이 SNS를 중심으로 홍보대사 철회와 불매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당신의 가장 큰 목소리, 아미'라고 밝힌 작성자가 BTS를 향해 작성한 한 공개서한은 X,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이 글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대학살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반인류적 위기 중 하나이고,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라는 내용이 적혔다.
공개서한엔 "여러분은 우리에게 BTS의 음악과 캠페인, 기부 활동 등을 통해 전 세계의 폭력과 불공정에 맞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고 가르쳐 줬다"며 "여러분이 항상 그랬듯, 의식 있는 인간, 책임 있는 인간, 배려하는 인간으로 남아주길 바란다"는 내용도 담겼다. 작성자는 "'예술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고 싶다'던 말은 어디로 갔느냐"며 "우리는 이제 여러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SNS 글에 #SpeakYourselfBTS(#BTS스스로목소리를내라), #BoycottCoke,(#코카콜라보이콧) #HybeDivestFromZionism(#하이브는시오니즘에투자철회) 등의 해시태그를 붙이며 BDS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BDS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인권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기관에 대한 불매(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경제 제재(Sanctions)를 촉구하는 국제적인 비폭력 운동이다. 팔레스타인 BDS전국위원회는 이 운동의 준거점 역할을 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전 세계 시민단체들이 풀뿌리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한국에서 BDS 운동에 참여하는 BDS Korea(팔레스타인 평화연대)는 지난 4일 이들의 활동을 전하며 "이스라엘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기소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한 전쟁범죄자 네타냐후 총리의 리더십 하에 22개월간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며 "우리 중 누구도, 우리 시대 홀로코스트와 무관하다고 더는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BTS가 국제적인 그룹인 만큼 많은 팔레스타인 팬 역시 우리 시대 가장 급박한 문제인 가자 집단학살에 대해 목소리 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며 "함께 운동을 일궈 나갈 한국의 동료들을 찾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팬덤의 사회 참여적 불매운동... 한국도 "SPC 빵 철회"
지난 7일 이들을 조명한 인도의 <The Indian Express>는 "(홍보대사 발탁이) 한국에서는 환영을 받았지만, 전 세계 아미 사이에서는 팬덤이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협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언론 <DAWN>도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광고 모델 활동 자체가 아니라, BTS의 오랜 이미지와 명성과 관련이 있다"며 "BTS 멤버들은 아시아인 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도 지지해 왔으나, 가자지구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해 왔다는 점이 팬들의 실망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덤 내 의견은 분분하다. 인도, 파키스탄, 요르단 등의 매체들은 "코카콜라 한국 지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전범으로 지목된) 글로벌 모회사와는 관련이 없다"거나 "연예인에게 정치적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함께 전했다.
<DAWN>은 이에 "그럼에도 윤리적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지역 운영과 상관없이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는 본질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구조와 연결돼 있다고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DAWN>은 또 "팬들이 뷔와 코카콜라 협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가 과거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한 가자지구 어린이 지원 기부 등 팔레스타인 아동에 대한 연민을 보여왔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인 중 한 명일 경우, 단 한 번의 기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감과 정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팬덤을 가진 만큼, 아티스트의 선택은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더 중요한 건 단순히 뷔나 BTS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불의' 시대에서 스타가 가진 영향력과 책임"이라며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며, 이제는 사랑·희망·평화만 노래하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돌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팬덤의 사회참여형 불매운동은 근래 연이어 발견되고 있다. BTS의 소속사 하이브는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팬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2022년엔 SPC그룹이 '세븐틴' 공식 유튜브 영상에 브랜드 간접광고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세븐틴 팬덤을 중심으로 ‘#SPC불매’ ‘#고잉세븐틴_베라PPL취소해’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팬덤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조 탄압 등 SPC그룹의 부당노동행위 문제를 비판했다.
2023년엔 하이브가 소속 그룹 '엔하이픈'의 새 앨범을 발매하며 SPC와 협업해 '오렌지 블러드 케이크'를 판매하기로 했다가 팬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팬덤은 당시 SPC 계열 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제빵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산재 사건 등을 지적하며 협업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5월엔 야구 팬덤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일동’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SPC와의 협업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섰다. 5월 19일 SPC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산재 사망한 지 하루 뒤다.
국제 비영리 기구 'WhoProfits'에 따르면, 코카콜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인 아타롯(Atarot)에서 지역 유통센터와 냉장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또 코카콜라의 자회사인 타보르 와이너리(Tabor Winery)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시리아의 불법 정착촌 안에 있는 포토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상 전쟁 범죄다. BDS 측은 "코카콜라는 전쟁 범죄에 공모하며 이윤을 얻고 있다"며 "정착촌 내 코카콜라 유통센터 등의 운영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번 전쟁 중엔 이스라엘 군인들이 코카콜라 캔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자주 포착돼 더 큰 팬덤의 공분을 자아냈다. BDS위원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지지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이스라엘군에 기부한 물품이다.
지난 10일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후 누적 사망자가 6만 1430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하루에 91명꼴이다. 다만 이는 병원에 등록된 시신에 한정된 최솟값이다. 누적 부상자는 15만 3213명이고,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망한 피해자는 217명으로 집계됐다. 보건부는 217명 중 100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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