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원 1년 만에 2만여 명의 어린이 환자를 치료한 대전세종충남·넥슨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지속적으로 운영비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고공어린이재활병원은 개원 당시 병상 70개(입원 50, 낮병동 20)를 갖춘 충청권 최초의 건립형 소아재활 전문병원으로 로봇치료실·수치료실·무장애 놀이터까지 포함된 통합형 모델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원 첫해에만 2만 3000명에 달하는 환자를 수용했음에도 운영비는 예산에서 반복적으로 누락되며 2023년 35억 원, 2024년 34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2025년에는 40억 원 이상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환자가 늘어날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적 역설 속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공공 어린이병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난제를 겪고 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은 국내 유일의 국립 어린이 전문병원으로 330여 개 병상을 운영하며 2024년 한 해 동안 외래 환자만 27만 명, 입원 환자 8만 명을 진료했다.
그러나 고정비가 큰 중환자실과 신생아 중환자실 운영에도 불구하고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에 재정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 역시 240병상 규모로 경남권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구조적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남대병원 권역 어린이병원은 144병상 체계를 갖췄지만 권역별 재원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서울특별시립 어린이병원은 112개 병상을 운영하며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역시 안정적인 재정 지원 체계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공공어린이병원들이 운영상 적자를 내는 가장 큰 원인은 소아재활이나 소아중환자 진료처럼 인력과 시설 투입이 필수적인 분야는 고정비 부담이 큰 반면, 건강보험 수가는 낮아 환자가 많을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적 불균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획재정부가 “건립비는 지원하지만 운영비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운영 재원을 국비로 보전받지 못하는 현실은 병원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전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경우 운영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반영되었다가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삭감됐다. 보건복지부는 지원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기재부는 다른 공공병원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하며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2024년부터 권역별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 39곳을 지정했고 언어·감각통합 치료 같은 비급여 항목 일부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전환했다.
또 소아진료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라는 사후보상 제도를 도입해 기관 단위로 발생한 손실을 일정 부분 보상하는 실험도 시작했다.
2025년 정부 업무계획에서도 소아 진료 수가를 인상하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12개소로 확대하는 등 응급·야간 진료 체계를 보강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병원 현장의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아이들을 위한 공공 어린이병원은 단순한 의료시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전 병원의 경우, 어린이 환자 수요는 분명 존재하고 개원 첫해에만 2만 명 이상의 환자가 몰려들었지만 재정 구조는 오히려 불리하다.
결국 공공 어린이병원의 위기는 정치적 공방이나 문서 한 장의 해석이 아니라 제도와 재정 구조의 부재에 있다.
한편 최근 대전충남세종넥슨후원공공어린이병원을 둘러싼 논란의 초점은 병원의 본질이 아닌 ‘확약서’에 쏠리고 있다.
대전시가 지난 2018년 정부 공모 과정에서 제출한 확약서에는 “추가 소요되는 비용에 시비를 적극 투입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이를 두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국비 포기 각서'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프레시안> 취재 결과 밝혀졌다.
당시 확약서는 국비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병원 유치를 위해 대전시가 책임 의지를 밝힌 절차적 문서였다.
당시 정부 공모 자체가 지자체의 책임 의지를 평가하는 성격이 있었던 만큼, 이 문서는 행정적 요건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허태정 전 시장 역시 “확약서는 책임 약속이지 포기 각서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약서를 둘러싼 정쟁이 아니다. 매년 불안정하게 예산 반영을 시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 어린이병원의 운영비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환자는 늘고 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현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협력해 공공성을 강화하고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시민들이 바라는 진짜 답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