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에는 외래어가 참으로 많다. 대화를 하다 보면 필자도 아리송한 단어들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양 이야기한다.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과 같은 단어는 이미 고전이 되어 버렸다. 지난 번에 “너 T야?”라는 글을 쓰면서 심리학 용어가 벌써 우리 근처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T’가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이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에서 ‘가스라이팅’과 ‘스모킹 건’의 유래와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도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선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고 유래를 알아보자. 영어로는 ‘gaslighting’이라고 쓴다, 그 뜻은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그 사람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그루밍과는 다른 말이다. 그루밍(grooming)이란 원래 마부가 말을 돌보는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요즘은 범죄에서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행위’을 이르는 말이다. 의미가 지나치게 확장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스라이팅’과 그루밍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스라이팅의 유래를 요약해 보자. 이 단어는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1938년에 발표한 희곡 ‘Gaslight(가스등)’에서 유래하였다. 후에 1944년 상영되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자.
잭이라는 남성이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 부인을 살해한다. 보석을 찾기 위해 집을 뒤지려면 가스등을 켜야 하는데, 한 집에서 가스등을 켜면 다른 집의 가스등이 어두워진다. 잭의 아내는 밤마다 가스등이 어두워지고 윗집에서 소음이 들리자 불안해 하지만 잭은 마치 아내가 정신이상으로 환청을 듣는 것으로 몰아간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아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점점 공허함과 무기력에 빠져 결국 남편 잭의 결정만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경찰의 기지로 결국 잭의 범죄가 발각된다.(<나무위키>에서 발췌 요약)
여기서 잭이 아내에게 사용한 행위(아내의 판단력이 비정상적이라고 몰아가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 ‘가스라이팅’이다. 결국 남편 잭에게 수긍하고 의존하게 되어 버린다. 과거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단어인데,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기 위하여 상대편에서 네거티브 공세로 사용한 것이 지금처럼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일종의 ‘세뇌’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예문으로는
그녀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남편이 해 온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였다.
와 같이 쓴다.
‘스모킹 건(smoking gun)’도 많이 쓰고 있는 외래어이다. 우리말 규범 표기는 아직 없다. 그냥 영어로 ‘스모킹 건’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범죄•사건 따위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확실한 증거”를 이른다. ‘총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실탄을 발사한 후에 총구에서 연기가 남)’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예문을 보자.
그것이 이번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스모킹 건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증거가 유죄를 확정 지을 스모킹 건이 되기는 어렵다.
등과 같이 쓴다.
우리말 표기상 아직 규범 표기가 없는 것은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면 우리말의 국적이 없어진다. 가능하면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이 좋다. 스모킹 건은 ‘결정적인 단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심리적 지배’라고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아이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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