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태국의 정치 혼란 속 '국민 없는' 전력 개발 계획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태국의 정치 혼란 속 '국민 없는' 전력 개발 계획

[초록發光] 시민 참여 배제 '깜깜이' 속 정부·에너지기업·전문가 집단이 좌지우지

태국은 다시금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패텅탄 친나왓 총리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발단은 5월 태국-캄보디아 국경 지대에서 발생한 교전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현 캄보디아 총리의 부친)와 나눈 개인적 통화가 유출된 사건이었다. 패텅탄의 부친 탁신 친나왓과 훈센은 오랜 친분이 있었고, 패텅탄은 통화에서 훈센을 '삼촌'이라 부르며 국경을 관할하는 태국군 사령관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헌재는 이런 발언이 총리에게 요구되는 헌법상 윤리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해임을 결정했다.

총리 해임 이후 태국은 새로운 연립정부 구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9월 3일 총리 직무대행이 의회 해산령을 제출했으나 국왕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대신 보수세력인 품짜이타이당의 총리 후보 아누틴을 중심으로 새 정부 구성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재편이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더 고조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권력 재편 문제를 넘어 국가의 중장기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 위기 대응, 전력 개발계획(PDP, Power Development Plan) 같은 핵심 정책 과제 역시 정치 혼란 속에서 지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작년 의견 수렴을 위해 대중에 공개됐던 'PDP2024'는 지난 8월 전격 취소되면서, 새로운 계획 수립을 위한 국가 전력 개발계획 준비위원회가 새로 꾸려졌다. 불안정한 정국과 정부의 일방적 결정,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 대중의 참여 속에서 마련되는 PDP가 과연 태국의 에너지 전환을 이끌 중장기 전략이 될 수 있을까?

형식적 참여에 머문 전력 개발계획(PDP)의 역사

태국의 PDP는 향후 15~20년간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발전설비 확충, 수요 관리, 송·변전 설비 계획을 종합적으로 담는 국가 전략이다. 한국의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해당하는 문서로, 사실상 태국 전력 시스템의 미래를 좌우한다.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는 계획이지만, 2~3년마다 재검토와 신규 계획 수립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정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태국에서 PDP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7년에 발표된 태국전력청(EGAT, Electricity Generating Authority of Thailand)의 자체 전력 개발계획이었다. 이후 2002년 탁신 정부하에서 에너지부가 신설되면서 2004년에 PDP2024가 발표됐고, 2007년 에너지산업법 제정 전까지는 태국전력청이 초안을 주도했다. 본격적으로 에너지부가 PDP 개발을 담당하게 된 것은 PDP2010 3차 개정안 이후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늘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형식상 공청회 절차가 마련됐으나, 실제로는 이미 계획이 확립된 뒤에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PDP2007의 경우, 2007년 2월 24일 학계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치고 4월 3일 방콕 왕립 태국 육군 클럽에서 첫 공청회가 개최됐다. 이후 6월 4일에는 에너지정책기획청(EPPO, Energy Policy and Planning Office)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런 절차에도 불구하고 초안 작성 과정의 세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계획 수립에 사용된 가정 역시 대중이 접근할 수 없었다. 다른 PDP 공청회도 개최 장소와 협의 기간은 방콕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에 불과했고, 지방에서의 공청회는 PDP2018 과정에서 단 한 차례 진행된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사실은 PDP가 국가 전력 개발 전략의 중장기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중의 참여는 형식적 절차에 머물러 왔음을 보여준다. 태국 국민이 전력 소비자이자 개발로부터 영향을 받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온 것이다.

PDP2024, 기대와 좌절

PDP2024 수립 과정은 처음부터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태국 에너지정책기획청은 2024년 6월, 13일 공공 및 민간 부문 기업가 대상 공청회와 19~23일 대중 온라인 의견 수렴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공청회가 채 2주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PDP 초안은 공개되지 않았고, 의견이 어떻게 검토되고 반영될지, 언제 공식 제출되고 승인될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대중은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의사 결정권은 정치인, 정부 기관, 발전회사, 에너지 기업, 전문가 집단에 집중된 채 개별 소비자와 시민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시민사회는 자체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7월 31일, 시민사회 플랫폼 'JustPow'는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태국 5개 지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공개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PDP 초안 검토 기간 연장 요구와 함께 북부 빡벵 댐, 동북부 푸응오이 댐, 부라파 발전소, 제3 LNG 항구 건설 반대 등 지역 현안이 제기됐고, 그 결과는 에너지부 장관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이후 1년 동안 PDP2024는 사실상 표류했고, 결국 시민사회는 "#PDP가 사라진 1년(#1ปีที่แผนPDPหายไป)"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통해 정부에 진행 과정 공개를 촉구했다.

▲태국의 “#PDP가 사라진 1년” 해시태그 캠페인(출처: https://justpow.co/news-public-demand-pdp/) ⓒjustpow

그런데 지난달 4일, 태국 정부는 PDP2024를 전면 취소하고 새로운 PDP 수립을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달 15일, 20명으로 구성된 국가 전력 개발계획 준비위원회를 발표했지만, 여기에도 국민을 대표할 인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부총리 겸 에너지부 장관이 “새로운 PDP는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청정에너지 접근성과 공정한 가격, 지역발전까지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한 발언과는 정반대의 구성이었다. 결국 PDP2024는 기대와 달리 참여 없는 계획으로 끝났고, 새롭게 시작될 PDP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이번 PDP2024 전격 취소의 배경에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기후 기준에 부응하려는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태국은 2050년 탄소중립, 2065년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 0)라는 다소 늦은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3차 NDC(온실가스 감축목표)에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선언하기 위해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PDP가 이런 흐름 속에서 더 진전된 방향으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전력 개발계획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역 주민과 전력 소비자인 개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