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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다리 잃기 싫어요" 바뀐 진단서, 4개월간 방치…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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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다리 잃기 싫어요" 바뀐 진단서, 4개월간 방치… 화성외국인보호소에 무슨 일이?

단속 때 다친 후 4개월 째 병원 치료 못 받아… 피해자 "다시 못 걸을 까봐 두렵다"

"제 다리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 다리를 자르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제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난 10일 오전, 경기도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실에서 만난 A 씨(39)가 거듭 호소했다. A 씨는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보이며, 현저히 얇아진 발목을 왼손으로 잡았다. 그의 발목 두께는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정도였다.

A 씨는 다리를 절뚝이며 면회실로 들어왔다. A 씨는 지난 4개월간 오른쪽 발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고 딛고 설 수 없어 발을 끌며 걷는다고 했다. 통증이 계속된 지 4개월째다. 그런데 아직 정확한 진단명을 모른다.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정밀 진료를 받은 적도 없다. "신속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매일같이 호소했으나, 화성외국인보호소는 그를 방치했다. A 씨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 4개월째 구금된 이주민이다.

법무부 화성외국인보호소는 2012년, 2017년, 2019년 등 구금된 이주민이 구금 중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의료 지원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그러나 부실한 의료 조치는 지금도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그중 한 피해자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전경. ⓒ프레시안(손가영)

"너무 아프다" 하는데 왜 병원을 못 가나

A 씨의 치료 요구는 다친 날부터 3개월 넘게 묵살됐다. A 씨는 지난 5월 19일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한다며 근무지를 급습한 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오른쪽 발과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이윽고 붙잡혀 호송버스에 탄 A 씨는 자신의 오른쪽 발과 발목이 신발을 신지 못할 정도로 눈에 띄게 부푼 것을 확인했다. 통증도 극심했다. "너무 아프다.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양주출입국 직원에게 말했으나, 직원은 A 씨 요청을 무시했다. 그는 5월 21일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되기 전까지 이틀 동안 양주 출입국 측에 병원 치료를 요구했으나, 모두 묵살됐다.

화성외국인보호소도 마찬가지였다. A 씨는 5월 21일 이송된 날부터 자신의 담당 직원(매니저)에게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보호소 내 다른 수용자가 '여기서는 최선을 다해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 A 씨는 거의 매일 같이 내부 진료소를 들러 통증을 호소했다. 내부 진료소는 '학교 보건실'과 비슷한 곳으로, 방사선 촬영 도구 등 의료 장비는 없다. A 씨는 매번 진통제만 받을 수 있었다.

A 씨는 3개월이 지나서야 처음 외부 병원 진료를 받았다. 지난 8월 12일 화성보호소 협력병원인 개인 의원을 방문했다. 의사는 정형외과가 아닌 가정의학과 전문의였다. 의사는 A 씨의 발과 발목을 엑스레이(X-ray) 촬영을 했다. 골절 등 뼈 손상이 없음은 확인했다. A 씨는 "당시 동석한 통역가를 통해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의사 말을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A 씨는 이후 한 달이 지난 12일까지도 추가 진료를 받지 못했다. 부상을 당한 지 116일이 지날 때까지 아무 치료를 받지 못한 셈이다. 외부 병원을 한 번 방문해 의사를 면담했고, 그곳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한 차례 거쳤을 뿐이다. 그러는 새 A 씨의 발목은 눈에 띄게 얇아졌다. A 씨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대체 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것이냐"며 "오른발을 영영 쓰지 못할까봐 매우 두렵다"고 말했다.

A 씨를 면회해 온 이주연 마중(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 시민모임) 활동가는 "얇아진 발목 상태를 보면, 부상 때문에 발을 오래 사용하지 못해 근육 퇴화가 상당히 진행된 걸로 보인다"며 "영구 장애로 남지 않을지 매우 우려스럽다. 정밀조사와 치료적 조치가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A 씨를 진료했던 병원이 발급한 진단서. 위는 A 씨가 보호소를 통해 8월 21일 발급받은 진단서이고, 아래는 9월 2일 화성외국인보호소가 재발급한 두 번째 진단서이다. 첫 번째 진단서에 없던 내용이 두 번째 진단서에 추가됐다. ⓒ마중

갑자기 바뀐 진단서… 제멋대로 의료 대응?

이 과정에서 A 씨 진단서가 갑자기 바뀌는 일도 발생했다. A 씨는 '가만히 있으면 보호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에 지난 한 달간 내부 진료소를 줄곧 찾아가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적극 요구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지난 2일 A 씨 진단서를 다시 발급받았다. 그런데 두 번째 진단서엔 "수술적 및 보존적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는 문구가 치료 소견에 추가로 적혀 있었다.

이주연 활동가는 "같은 병원, 같은 날짜, 같은 번호의 진단서인데, 내용이 바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진단서 변경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진단서 발급은 본인만 가능한데, A 씨 얘길 들어보면 보호소가 (두 번째 진단서에 대해) 명확한 동의를 받았는지 의문"이라며 "A 씨는 '의사가 수술이 필요하다 했다'거나 '빨리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일관되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 대변인실은 13일 <프레시안>에 "A 씨는 (첫 외래 진료 이후에) 진단서 발급을 희망했고, 8월 21일 보호소 직원이 진단서를 대신 발급받고 전달했다"며 "이후 A 씨가 진단서에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고 요청해 해당 병원에 연락해 진단서 내용 추가가 가능한지를 문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병원 측이 이를 수락해, 9월 2일 직원이 방문해 수정된 진단서를 발급받아 전달해 줬다"고 밝혔다.

법무부 "내부 의료진이 응급 상황 아니라 판단"

화성외국인보호소는 A 씨 발이 '선천성 기형(내반족) 상태이며, 응급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입소 다음날 내부 의무관이 진료할 때 A 씨가 오른쪽 다리 통증을 호소했으나, 오른쪽 발목은 기형의 상태로 염좌(인대 손상)와는 관련 없고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소견이었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또 "A 씨는 내부 의료진이 50회 이상 진료했고, 의무관은 긴급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의무관은 A 씨 다리질환이 오래전 부상이나 선천적 기형에 의한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이어 "의무관을 통해 (A 씨에게) 정기 및 수시 진료를 하고 있으며, 통증에 대해서도 적절한 처방을 해주고 있다"며 "A 씨가 신속히 출국해 본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한편, 내부 의료진의 수시 진료를 통해 보호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실은 양주출입국사무소의 치료 방치와 관련해 "A 씨는 단속 및 (양주출입국) 보호실 입소 과정에서 부상을 호소하거나 병원 진료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A 씨는 "나는 단속 때 발을 다친 것이고, 그 부상 때문에 너무 아프다고 계속, 계속 말했다"며 "선천성 기형에 대한 수술이나 치료를 요구한 것도 절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다치기 전까진 문제없이 잘 걷고, 일도 잘 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왔다"고 밝혔다.

이 활동가도 "보호소 의료진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엑스레이 촬영 조차 없이 '긴급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리 상태를 다른 원인 때문이라 추정한다는데, 왜 추정만 하고 검사와 진단을 지체하느냐? 환자는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활동가는 "다친 지 4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통증의 원인도, 정확한 진단명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영구 장애가 남는다면,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그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될 것이다. 치료 거부는 돌이킬 수 없는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추가 검사와 치료가 기한없이 늦어지자, 이 활동가는 보호일시 해제 등의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이주민이 생명, 재산 등에 중대한 위협을 받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일시적으로 구금이 해제될 수 있는 제도다. 이 활동가는 "외국인보호소 구금 이주민들이 제대로 된 의료 조치를 못 받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며 "A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내부가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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