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한국 국적자를 포함한 직원들을 마구잡이 식으로 끌고 간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최종적으로 구금된 한국 국적자의 숫자도 이들의 귀국이 임박해서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 구금됐던 인원들이 속했던 업체 수가 몇 개냐는 질문에 업체 수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317명(이라는 한국 국적자 인원) 숫자도 마지막에 나왔다. ICE도 파악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귀국하기 직전인 현지시간 9일 저녁 또는 10일에서야 정확한 인원이 집계됐다고 말했다.
이는 단속의 주요 역할을 했던 ICE가 현장을 급습해 눈에 보이는 인원들을 신원 확인 없이 구금시설로 끌고 갔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한국 정부는 이들의 구금 이후 ICE 측과 협의했을 때 회의 참석 및 계약 등을 위한 단기 체류 비자인 'B1' 비자를 소지한 분들이 정당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기준으로 현장 단속을 했냐고 항의했지만, ICE 측은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현장에 있었던 인원을 단속하는 것이 기준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ICE의 단속 때문에 B1 비자뿐만 아니라 '취업허가' 비자인 EAD 비자 (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를 가지고 있는 한국 국적자까지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은 외교부와 현대엔지니어링, 엘지에너지솔루션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인용해 "이 과정에서 EAD 비자를 보유하고 있던 협력사 직원 1명은 합법적인 신분으로 허용된 범위 내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ICE의 무리한 단속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확한 기준 없이 닥치는대로 잡아들인 ICE는 끝까지 자신들은 합법한 행위를 했다면서, 구금된 인원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묶는 등의 조치를 유지하며 이들을 이동시키려 했다. 구금 인원들의 호송 문제에 ICE와 정부 간 이견이 있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해결된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ICE의 부적절한 단속에 대한 비판은 이미 미국 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뉴스위크>는 "ICE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시작된 광범위한 단속으로 미국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인종에 대한 표적 수사, 과도한 무력 사용, 미국 시민권자와 합법적 거주자에 대한 구금 사례"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금된 인원의 일부를 법률 대리하고 있는 애틀랜타의 찰스 쿡 변호사는 지난 8일 미국 방송 NBC와 인터뷰에서 합법적 비자를 받은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은 당시 ICE와 함께 단속을 벌인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사전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HSI가 다소 섣불리 움직여서 일단 모두 체포한 뒤 나중에 정리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는데, ICE가 정확한 인원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부분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ICE가 이처럼 무리한 구금을 시도한 배경에는 불법체류자를 많이 단속하고 추방해야 업무 실적을 높이는 것이라는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고위급인 트럼프 대통령이 재발 방지를 사실상 약속했지만, 이러한 미 이민 당국의 현실을 고려해 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확인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구금자들이 한국에 귀국해 일부 언론을 통해 구금시설이 열악했고 인종차별적 언어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 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냐는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구금자들에 대해) 영사접견한 기록을 봤는데 거기에는 나오지 않았고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구금자들이 영사접견에서 외부와 통화 및 약품 전달 등의 불편 사항을 이야기했다면서, 외부 통화의 경우 그 자리에서 영치금을 넣는 조건으로 가능하게 했고 의약품은 구금 시설에 상주하는 미국 의사가 있어 이들로부터 제공하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구금자들의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대해 "ICE 측에 문제를 제기하면 미측은 당연히 자기들은 합법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우리 국민들의 조기 출국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빠르게 출국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해 필요한 문제제기는 그 이후에 한다는 입장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ICE 측에서는 합법적 법 집행을 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인권침해 문제는 외교적 채널로 항의할 수도 있고 우리 국민이 미국의 사법적 구제를 받기 원하면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복잡한 문제"로 들어갈 수 있어 조속한 귀국을 우선으로 미국과 협상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정당한 비자를 받고 활동하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없도록 우리와 ICE 지부 간의 협의 체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ICE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도 들었다"면서 "우리 근로자분들이 단속 당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또 부당하게 체포 및 구금된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구금 시설 안에서 어떤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기업과 협의해 관련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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