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어지러운 한 주일이었다. 특히 북대서양 양쪽이 그랬다. 8일(월),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긴축 기조의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의회 신임투표에서 패배해 사임했다. 작년 조기총선 이후 두 번째 내각 붕괴다. 이를 신호탄으로 10일부터 '모든 것을 막자(Bloquons tout)'는 구호를 내걸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규탄하는 파업과 시위가 시작됐다. 이런 혼란 속에서 극우파 국민결집(RN)은 지지율 1위 정당 지위를 굳건히 지키며 차기 대선 승리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다.
10일(수), 미국 유타 주에서는 젊은 마가(MAGA) 선동가 찰리 커크가 순회 집회 중에 암살당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극우 진영 전체가 커크를 '순교자'로 떠받들면서 '좌파나 소수자임이 분명한' 암살범과 그 배후 세력에 대한 피의 복수를 맹세하고 나섰다. 막상 검거된 범인이 골수 공화당 집안 출신 백인 청년이라 너무 일찍 터져 나온 복수의 맹세가 좀 무안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가뜩이나 심각했던 미국 사회의 '내전'적 분위기가 이 사건 이후 훨씬 더 위험천만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13일(토), 영국 런던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했다. 찰리 커크의 영국판이라 할, 아니 그보다 더 악명 높은 인종주의 선동가인 토미 로빈슨이 주최한 '난민 반대' 집회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마치 한국의 윤석열 지지 시위대마냥 자국 국기와 더불어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었고, 일론 머스크는 지금 당장 키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핏발 선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이미 프랑스처럼 여론조사에서 극우 영국개혁당(Reform UK)이 압도적 1위를 달리는 영국에서 이런 광경은 곧 닥칠 미래의 섬뜩한 예고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주가 시작된 15일(월). 이날은 2007년 UN이 지정한 '세계 민주주의 날'이었다. 여느 때면 별 감흥 없이 넘어갈 형식적 기념일 중 하나였겠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 자처하는 나라들에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세력들, 이제는 '파시즘'이라는 딱지조차 별로 꺼려하지 않는 세력들이 힘차게 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사의 두 번째 '파국의 30년대'가 벌써 시작된 것인가.

2기 트럼프 정부 8개월만에 승승장구하는 전 세계 극우정치
밤늦은 시간, TV 화면에 난입한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로 느닷없이 반민주주의의 위협을 실감하는 나라와 달리, 앞에 언급한 국가들에서는 2010년대부터 극우정당들이 '착실히' 성장해왔다. 대의민주주의 규칙에 따라 선거에서 지지를 늘리며 꾸준히 세를 불려왔다. 따라서 지금 돌연 '파국의 30년대' 운운하는 것이 호들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양상은 분명히 이전과 다른 데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서양 양안 여러 나라의 극우세력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기존 주류 정치세력들을 비판했고, 의식적으로 과거 파시즘과 거리를 뒀다. 1기 트럼프 정부가 그랬고, 연립정부에 참여한 유럽 극우정당들이 그랬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나서 벌어진 무장 군중의 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 풍향이 크게 바뀌었다. 이때부터 몇몇 국가에서 극우파가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서길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가령, 브라질리아에서 반복된 의사당 습격 사건).
그리고 2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지난 8개월 동안, 이런 양상이 하루가 다르게 고조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승리하고 2기 트럼프 정부가 예상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고 모험적인 국내외 정책을 펼치자, 팬데믹 직후 한때 움츠러들었던 극우파가 곳곳에서 다시 활개를 친다. 무엇보다 독일이나 영국의 광범한 대중 사이에서 이제는 극우정당을 선택해도 '괜찮다'는 정서가 확산되는 중이다. 그리고 이미 극우파를 지지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다양한 극우 정파 가운데에서도 더 극단적인 쪽으로 지지를 옮기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서 확인되는 분명한 사실은 미국 정부의 성향 및 결정과 세계 곳곳의 극우정치가 아주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으며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요즘 외신면을 채우는 뉴스만 봐도 그렇다. 트럼프의 원조 극우 가정교사였던 스티브 배넌과 최근 트럼프와 결별한 일론 머스크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타국의 극우세력들을 지원하며 이데올로기 비슷한 것을 급조해 퍼뜨린다. 과거 좌파의 특기였던 국제연대가 이제는 극우파의 무기가 됐고, 막후에서 쿠데타를 부추기던 CIA의 고된 작전은 중도파 정부를 전복하라는 머스크의 적나라한 선동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이고 정세적인 연계 말고도 미국과 세계 파시즘 사이에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연관성이 있다. 파시즘의 시작부터가 그러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파시즘 흐름(독일의 민족사회주의)의 결정적 구성요소였던 인종주의는 본래 미국을 주된 무대로 삼아 발전한 이데올로기였다. 게다가 1920-30년대에 유럽에서 파시즘의 등장과 급성장의 배경이 된 대공황을 비롯한 잇단 혼란은 당시 미국이 이미 지구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나 패권국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바람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계속 길을 찾지 못했다면, 유럽은 실제 전개된 역사보다 훨씬 더 길고 심각하게 파시즘 치하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만큼 파시즘의 성장과 그 1차적 패퇴에는 지구정치적 요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파시즘의 잠정적 퇴장에는 반파시즘 투쟁에 나선 각국 내부 대항세력 역시 한 몫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두 가지 외부 요소, 즉 소비에트연방의 존재와 미국 뉴딜 정부의 선택이 큰 방향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요소 덕분에 파시즘의 첫 세대는 처참히 패배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복지국가나 세계 전역의 구식민지-독립국가라는 전에 없던 현실이 대두했다. 이후, 실상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교과서에는 민주주의가 '정상'이며 파시즘이 '예외'이자 '질병'이라고 씌어 있었던 시대가 80여 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바로 이 시대가 끝나려 한다. 다름 아닌 현 미국 정부가 이 시대를 끝내려고 혈안이 돼 있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일단 국내에서는 타국 극우세력들이 아직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수준으로까지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들에 손을 대고 있다. 무능하고 무력한 민주당이 중간선거만 기다리는 사이에 트럼프는 미국 헌정 체제의 모든 약점을 활용해 일상적 계엄 상태를 조성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을 준거점으로 여겨온 인류에게 이것은 새로운 기준의 선포나 마찬가지다. 당장, 나치의 어두운 기억에 짓눌려 있던 서유럽 극우파부터 해방감을 느끼면서 감히 전후 민주주의의 금기와 한계선에 도전하고 나설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2기 트럼프 정부는 중대한 구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성기까지만 해도 미국은 지구자본주의 안에서 자국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고상한 자유주의 규칙을 늘 함께 내밀었다. 브레턴우즈 체제 시기든 신자유주의 시기든 이 두 카드가 쌍을 이뤘다는 점만은 일관됐다. 그러나 2기 트럼프 정부는 뉴딜 이후 처음으로 자유주의 규칙을 스스로 폐기한 채 미국의 이해관계만을 폭압적으로 실현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강요에 맞서거나 최소한 협상을 시도하는 민주적 정부를 안으로부터 교란하거나 전복시킬 수단으로 각국 극우세력을 활용하려 한다.
미국은 한때 파시즘의 첫 세대를 격퇴시킨 핵심 동력이었지만, 지금 그 미국의 변화를 통해 파시즘의 두 번째 세대가 개화하려 한다.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트럼프 정부와 그 대항세력 간의 투쟁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작금의 미국 정치는 다른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대 파시즘' 전선과 연결된 첫 번째 결정적 전장이 되어 버렸다.
내란 재발 방지 개헌을 통해 광장연합을 이어가야 한다
'다른 모든 나라' 안에는 물론 대한민국도 포함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도 이제는 선명한 극우정치 흐름이 존재한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안에서 계속 영향력을 다지는 한편, 트럼프 지지 블록 내 일부와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암살당하기 직전, 찰리 커크가 하필 한국에 방문하여 극우파 행사에 참석한 것은 결코 우발적인 일화가 아니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하기 직전에 트럼프가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기이한 메시지("한국에서 숙청 혹은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는 단순한 착오나 협상용 언급만으로 보기 힘들다. 서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트럼프주의자들이 활용할만한 극우세력이 있고 자신은 여차하면 이 카드를 써먹을 준비가 돼 있다는 엄포는 아닐까. 적어도 이재명 정부가 단 한 번의 회담을 통해 트럼프의 심술에서 비껴났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최근 가까스로 극우 독재의 위험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도 2기 트럼프 정부를 통해 시작된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파시즘 전선에서 홀로 예외일 수 없음을 철저히 자각해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12.3 친위쿠데타의 기나긴 진압을 최종 정리하고 새로운 정치-사회 지형을 열어가야 할 향후 몇 달, 몇 년간은 2기 트럼프 정부 임기와 겹친다. 그 중에서도 트럼프 정부가 중간선거 결과와 마주할 내년 11월까지는 트럼프 정부의 행보 하나하나에 특히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시기다. 이 시기에 미국 내 트럼프주의의 움직임이 한국 내 극우 블록의 책략과 결합해 예기치 않은 난국을 만들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어렵게 지켜낸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급선무일 뿐만 아니라 파시즘 부활에 맞서는 전 지구적 노력의 일부다.
이를 위해서는 친위쿠데타 진압의 기본 동력이었던 광장의 최대연합을 지속시켜야 한다. 다만, 정권 교체를 통해 광장 세력의 일부가 집권하고 일부는 야당과 시민사회 세력으로 남은 현재로서는 몇 달 전처럼 말 그대로의 '광장'만으로 최대연합을 이어갈 수 없다. 지난겨울과 달리 지금은 정부와 정부 밖 세력 사이에 의견 일치보다는 이견이 더 선명히 부각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면에 맞는, 몇 달 전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주목할 만한 것은 '개헌의 정치'의 가능성이다. 가령, 개헌 의제를 열어놓되 친위쿠데타 재발 방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가령, 헌법 전문에 '5.18' 명시, 비상계엄 조항의 삭제나 개정, 대통령 권한대행 조항 개정 등)을 1차 개헌 과제로 설정해 지방선거에서 이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단계적 개헌'을 추진한다면, 내년 지방선거 국면까지 내란 재발 방지 개헌에 동의하는 광범한 시민들의 단결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1차 개헌안을 현 국회를 넘어 시민 참여 숙의 과정을 통해 마련한다면, 극우화된 원내 일부의 방해를 최소화하면서 개헌 지지 연합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작년 말에 시작된 내란 진압 과정이 '지구화'하는 국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 고립되고 있는 극우 세력은 전 지구적 파시즘 부활 흐름에 기대어 반격에 나서려 한다. 그렇다면 광장연합은 스스로를 새 국면에 맞는 형태로 변형시켜 유지하면서 저들보다 더 적극적인 지구정치적 행위자로서 당당히 맞서나가야 한다. '개헌의 정치'와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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