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왜 청소년은 '특수형 콘돔'을 쓰면 안 되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왜 청소년은 '특수형 콘돔'을 쓰면 안 되나?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 청소년이 성(性)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한국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가 놓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의 성적 행위가 법으로 금지돼 있거나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의제강간 제도 등 몇 가지 복잡한 연령 기준을 고려해야겠으나, 예컨대 17세 정도의 청소년 2명이 서로 동의해 성관계를 맺는 데는 법적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성관계를 직접 묘사한 영상물 같은 콘텐츠(청소년유해매체물)를 시청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숙박시설에서 청소년의 혼숙 역시 금지돼 있다. 직접 성행위를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영상을 보지는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시설은 이용할 수 없다니, 모순적이다.

▲이마트 콘돔 공지ⓒ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청소년의 성

지난 5월 이마트 지점 중 한 곳에서 '청소년 보호를 위해 청소년에게는 콘돔을 판매하지 않는다(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28조)'라는 안내문을 게시해 놓은 일이 알려졌다. 법에 근거한 것처럼 쓴 것은 분명 틀린 내용이었다. 현행법상 일반적인 콘돔의 구입에 연령 제한은 없다. '돌기형' 등 특수형 콘돔 종류만 여성가족부의 고시에 의해 청소년유해물로 지정돼 있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이 이를 지적하며 항의하자 이마트 본사 측은 "혼동해 잘못 고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애초에 청소년은 콘돔을 써도 되는데 특수형 콘돔을 써선 안 된다는 법령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솔직히 이 이마트 사례가 별로 특이하거나 놀라운 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령 설문조사를 해 보면 청소년이 콘돔을 구입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삼분지일 이상 되지 않을까. 이는 단지 복잡하고 이상한 법령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청소년의 성에 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의 성에 관해 아주 다른 가치관들이 산재해 있다. 자유연애와 사생활 존중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혼전순결을 내걸고 청소년의 성적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위험과 문제를 경험한 청소년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와중에 대개 더 많은 권력을 쥔 쪽은 청소년의 성을 금기시하고 통제하려는 보수적인 이들이었다. 그래서 청소년의 성에 관한 문제는 원칙이나 합리적 이유가 부족한 채 오락가락하다가 금지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민원과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흔하다.

콘돔을 둘러싼 상황은 마치 청소년의 성이 놓인 위치를 상징하는 듯하다. 어쨌건 대한민국은 '자유 진영'의 민주주의 국가이니만큼, 법률상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기본적으로는 인정된다. 따라서 청소년도 콘돔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제약에 가로막히며, 국가는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데는 소극적이고 종종 적대적이다. 예컨대 특수형 콘돔 등을 금지당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런 이도 저도 아닌 상황 속에서,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탓에 청소년들은 성적 권리를 금지당한다고 느끼게 된다. 마트, 편의점에서 종종 콘돔 판매를 거부당하고 신분증 검사를 요구받듯이.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광대한 SNS 세상의 한구석에서는 간혹가다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논제가 그리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 속에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섹스로 대표되는 성적 행위 전반을 금지, 억압당한다고 느끼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억압에 대한 반기와 저항이라는 점에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청소년에게 섹스할 권리(성관계를 맺을 자유)를 허하라는 정도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청소년의 권리를 신장하고자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기본적인 인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이 권리가 어떤 의미이며 이를 위해 무엇이 보장되어야 하는지는 꽤나 복잡한 문제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때로는 국가가 개인의 정조나 혼인, 성을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때로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성폭력 피해자의 존엄성을 뜻했다. 자기 자신의 성적 지향을 정체화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 확장되기도 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와 방향은 다면적이다.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경우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딸려 오는 고민거리나 과제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인권보장에 관한 국가의 의무로 보통 존중, 보호, 실현을 든다. 존중은 국가가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의무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의 섹스를 법으로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는 형식상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

보호는 타인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예방·구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가는 청소년이 남에게 성폭력이나 성착취를 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범죄를 막아야 한다. 이는 현재 청소년의 성적 권리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주제며, 그럼에도 미흡한 면이 계속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청소년이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타인이 부당하게 억압하는 경우에 대해선 국가가 보호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기나 할까? '불순한 이성교제'를 한 학생에게 학교가 불이익을 주는 경우, 또는 부모가 자식의 연애를 통제하고 이를 이유로 직간접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에 대해 한국 정부는 딱히 나설 의사가 없어 보인다.

가장 논의되지도, 고려되지도 못하는 것은 바로 실현의 의무다. 국가는 청소년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고 행사할 수 있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 필요한 정보나 지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청소년 스스로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확한 정보와 평등한 관점을 담은 성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청소년이 피임기구나 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 등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령 다수 청소년이 독립적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문제라면,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내밀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실현의 의무를 방기함으로써, 아니 오히려 실현을 방해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빈약하게 만들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교육 문제다. 교육부는 국가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내용, 성소수자 언급 금지, 청소년은 성적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금지 논리를 제시했고, 이 표준안은 지금까지도 공식 폐기/대체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섹슈얼리티", "연애", "포궁", "성소수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 지자체가 나서서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열람 제한, 폐기하곤 했다. 이는 청소년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실현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적절한 보호와 존중 역시 불가능하다. 청소년의 성을 금기시하는 학교에서는 임신한 학생이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 성적 행위가 잘못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규정당하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은 보호자에게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숙박시설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더욱 열악하고 부적절한 환경에서 만나는 장면들을 부르게 된다.

선언이나 형식적 법에 그치지 않게

헌법상 성적 자기결정권에서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라는 대원칙을 인정받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는 청소년이 평등한 인간이자 사회구성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며 기본권으로 보장받아야 할 영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것이 단순한 선언이나 형식적 법 논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 보장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지원해야 하는지를 공론화해야 한다. 성교육의 변화를 촉구할 수도 있을 테고, 특수형 콘돔이나 섹스토이 등 합리적 이유 없이 '성인'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섹스를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 성에 관해 스스로 고민하고 알아보고 결정할 권리를 보장할 정책과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1차적 역할이고,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원칙이다. 가령 10대에는 건강상으로나 사회·경제적 지위상 아직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연애 말고 공부에 집중할 시기라거나 하는 주관적 가치관이나 문화적 규범의 이야기는 그다음에나 끼어들 일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