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효력 정지시킨 9.19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복원을 공언한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정부 내에서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민통선 내 옛 미군기지인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통일부와 경기도, 김대중재단·노무현재단·포럼사의재·한반도평화포럼이 함께하는 민주정부 한반도 평화 계승발전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경기도와 포럼 사의재가 공동 주관하며 프리디리히 에버트 재단이 후원하는 7주년 9.19 평양공동선언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 장관은 9.19 복원에 대해 "정부 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은) 9.19의 선제적 복원을 약속했다. 교류·협력 분야에 관해 통일부 장관에게 책임과 권한이 다 있는데 군사합의는 제 권한은 아니다"라면서도 "적어도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9.19 복원하겠다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부적 합의가 안됐다고 시간 끌면 안 된다"며 "통일부가 인원도 예산도 적은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고함 지르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 구조다. (정동영 장관) 좋은 목소리로 고함 좀 지르시라. 두 번째 장관 하는 것이니 용기있게 하시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올해 한미 연합 훈련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년 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 훈련을 취소할지 소규모로 할지, 윤석열 정부 때처럼 강하게 할지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의 시간이 결정된다"며 "이건 국방부 장관에게 맡기면 안된다. 통일부 장관이 '페이스메이커'로 국방부 장관이 '피스 메이커'가 되도록 해라"라고 당부했다.
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가 꼼수를 쓰면서 9.19 군사 합의를 북한이 파기하게 만든 것은 천추의 한이 되는 역사적 죄악"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을 유엔 총회 참석 위해 월요일에 떠나기 전에 통일부와 국방부가 손잡고 선제적 복원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정동영 장관은 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대북 평화적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라면서 "국회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특사 활용 요청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9.19 합의 파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연관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3년 11월 22일 9.19 합의에 대해 일부 효력을 정지했는데, 명분은 전날인 21일 실시된 북한의 군사 정찰 위성 발사였다. 9.19와 위성 발사를 직접 연결시킬 필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열흘 전 계엄 3인방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이 임명됐다. 이 때 계엄 준비를 마치고 명분 찾기에 돌입했는데, 위성을 발사로 효력정지하고 이후 2024년 6월 4일 전부 효력 정지를 결정한 것"이라며 "이게 계엄 쿠데타의 준비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 돼있는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의 문을 닫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닫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감옥에 가고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하고 평화를 파괴했다는 것"이라며 향후 9.19 복원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국내 정치적인 문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새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일단 윤석열 정부 3년을 청산하는 일"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과 대규모 야외 기동 훈련을 48차례로 확대했고 전략자산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참수 훈련을 공개하면서 합참의장이 여기에 공식 방문을 해서 겁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이재정 전 장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개성 연락사무소가 폭파됐고 금강산에 우리가 공들여 만든 이산가족 상봉 면회소도 폭파 직전에 있는 걸로 이야기를 들었다"며 남북관계를 개선하기에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면서도 "2005년 9.19 선언과 2018년 9.19 선언이 갖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과거보다 좀 어려운 것이 한반도의 지형이, 역학관계가 바뀌었다. 남북관계에 대해 왜 북한이 저러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헤쳐 보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가 바뀐 것"이라며 "새로운 질서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전략을 취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미국과 협의가 중요하고 미국이 북한과 회담을 여는 것도 중요한데,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중국, 러시아와 대화하고 협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진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장은 이날 기념식 축사에서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우한 점을 언급했다. 그는 "제가 손을 내밀자 김정은 위원장은 '반갑습니다' 라고 답하며 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우 의장은 "'한반도 평화 참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직감했던 악수"라면서도 "그러나 맞잡은 손을 통해 저에게 전해진 온기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불가능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헸다. 평화는 의지로 만드는 것이고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 이재명 대통령의 축사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본인 계정에 "9.19 군사합의 정신 복원을 위해,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대통령으로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국민과 함께 차근차근 해나가겠다"라며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이 없다는 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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