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부가 타이레놀을 먹으면 태아의 자폐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미 식품의약국에 이어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도 타이레놀과 태아의 자폐증 발생에는 연관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5일 식약처는 "최근 미국 정부의 '타이레놀'에 대한 발표와 관련해, 현재 시점에서 국내 임신부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를 기존 사용상의 주의사항대로 의사, 약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고 복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임신 초기 38℃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면 태아 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심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며 "다만, 복용량은 하루에 4,000mg(밀리그램)을 넘지 않도록 한다"고 권고했다.
다만 식약처는 "통증 완화에 사용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등)는 태아 신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임신 20~30주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량을 최단기간 사용하고, 임신 30주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개인별로 의료적 상황이 다를 수 있으므로 임신부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복용하기 전에 의약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타이레놀 등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의 국내 허가 사항에는 임신 중 복용과 자폐증간 연관성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식약처는 해당 업체에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한 의견 및 자료 제출을 요청하였으며, 관련 자료 및 근거에 대해 지속적으로 신중히 검토해 새로운 과학적 증거 및 사실이 발견되면 사용상의 주의사항 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쿠바에서는 돈이 없어 타이레놀을 구할 수 없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사실상 자폐증이 없다"며 "임신 중이라면 타이레놀을 먹지 말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과 함께 FDA를 통해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임신 중에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 통지문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학계를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날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 자폐증과학자연합(CAS), 앨리슨 싱어 자폐증과학재단 공동창립자 등은 자폐증과 타이레놀과 연관성이 없다면서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FDA도 22일 발송한 의사 통지문에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권고하면서도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의 연관성이 "인과 관계로 확립되지 않았고 이에 반대되는 연구들이 있다. 과학적 논쟁이 진행 중인 영역"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4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존 튠 의원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한 파장을 "매우 우려한다"며 진통제와 자폐증의 연관성을 부인해온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열거했다. 그는 "과학이 이러한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발표에 참고로 제시된 연구들이 있었지만 "의학계에는 타이레놀 사용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며 "일반적인 주장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며, 과학과 의학에 기반을 두고 해당 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고 이러한 모든 내용이 충분히 문서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의 의사 출신인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의 본인 계정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보건복지부를 지원하려는 마음은 이해한다"면서도 "이것(타이레놀의 자폐증 유발)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증거들이 있다. 여성들이 임신 중 통증을 관리할 방법이 없어질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밝히는 등 논란이 커지자 미 정부는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다. J.D 밴스 부통령은 이날 미국 방송 뉴스네이션에 출연해 "임신부들에게 제가 드릴 조언은 아주 간단하다. 의사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례별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넓게 보면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의 근본적인 주장은 이러한 약물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부작용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표에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도 자리했다. 그는 백신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코로나 19 시기와 맞물리면서 일정한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케네디 장관의 주장을 수용하여 타이레놀과 자폐증의 연관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밴스 부통령은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약물 중 일부에 대해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약을 복용해야 할지 여부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