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문화문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별로 빛을 보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제자들이 문화문법에 관한 논문을 쓰고, 외국인 제자들이 한국어와 자국어를 비교•대조하면서 문화가 아니고서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고 문화를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제법 문화문법에 관한 논문도 나오고, 문화문법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화용론에서는 문화문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에 동영상 세계에서 외국어로 번역할 수 없는 우리말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정말로 아름다운 한국어가 바로 의성어, 의태어다.”라고 하면서 한국어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음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문화문법이라는 것이 사실은 별것이 아니다. 우리의 언어 속에 녹아 있는 문화적 특성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간담(肝膽)이 서늘하다’라고 할 때 ‘간과 쓸개가 서늘한 것’이 어떻게 ‘무섭거나 위협적인 말로 인해 놀라다’의 뜻으로 쓰이는지 문화적으로 접근하여 알려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한의학적 기초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고, 한국의 언어가 신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외국인 학생에게 “내가 국제적으로 마당발이야.”라고 했더니 무슨 말인 줄 모르고 “마당발이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응, 발이 넓다는 뜻이야.”라고 했더니, 발을 내려다보면서 “교수님 발은 그리 크지 않은데요?”라고 하면서 또 의아해 한다. 참으로 난감하다. 그래서 다시 설명하였다. “응, 발이 넓다는 말은 ‘사귀어 아는 사람이 많거나 교제 관계가 넓다’는 말이야.”라고 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국제적 마당발이야.”를 번역기에 돌려 보았다. 파파*에서는 “I am international ball.”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마당발’은 그냥 ‘wide foot’라고 번역해 놓았다. “고무신 바꿔 신다.”를 같은 번역기에 넣어 보면 “Change the rubber shoes.”라고 번역하고, “가방끈이 짧다.”를 번역하라고 하면 “The bag strap is short.”라고 번역해 준다. 하나같이 제대로 된 번역이 없다. 이와 같이 AI가 번역하는 것은 우리말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가 없다. 한국의 군대 문화와 고무신 문화, 한국의 교육열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한국어의 맛을 살릴 수 있는데, 기계는 기계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아직 이르다.
마당발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들과 사귐이 많고 폭넓은 사람’이라고 나타나 있다. 한국인의 언어 체계에 마당이라는 넓은 속성과 ‘발’의 의미가 합하여 서양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의미를 담게 된 것이다. 마당발의 예문을 보자.
태호는 학계에서 마당발로 통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어.
태호는 여주에서 10대째 살아온 이 동네의 마당발이다.
와 같이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을 들어도 아무 걸림이 없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 발이라는 것이 ‘인간 관계’를 지칭하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난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 거 잘 몰라.”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정말로 가방끈만을 생각하지, 그것이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는 줄 모른다. 그래서 번역기도 글자 그대로만 번역할 뿐이지 그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는 파악하지 못한다. 화용론에서는 이러한 것을 많이 가르친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어떻게 외국인들이 쉽게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한국어 화용론의 주된 목적이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어 오를 때 코 끝에 풍기는 맛과 향(?)을 외국인들은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글보글’이라는 말만 들어도 침이 흐른다. 맥주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올 때 그 광경을 본다면 그 말이 주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하게 단어의 의미만 가르쳐 주는 시대는 지났다. 문화를 통해서 그 깊은 맛을 함께 알려야 진정한 한국어의 맛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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