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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상태 빠진 한미 관세협상, APEC이 분수령 될까?

[전망] "큰 고비 넘겼다"던 관세협상의 교착…관건은 '불확실성' 해소

지난 7월 말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은 "큰 고비를 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 수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돌파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에 협상은 다시 교착에 빠져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두고 한국과 미국의 해석이 정면으로 엇갈리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 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지난달 22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협상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가운데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맞고, 우리나라가 감내할 수 있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한미 간 상호 호혜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있다"며 협상 시한 때문에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APEC에서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를 넘어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큰 고비 하나 넘었다"던 7월 관세 합의

지난 7월 31일 한미 양국은 극적인 합의 소식을 전했다. 미국이 예고했던 상호관세 25% 부과를 15%로 낮추고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도 15% 수준에서 합의됐다고 밝혔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는 추후 품목관세 협상에서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기로 했다. 대신 한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세협상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오늘의 합의를 통해 수출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제거했고, 우리 기업이 주요국 대비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며 "정부 출범 후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미 양국 간 호혜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협상 전략을 다듬고 치열한 고민을 거쳤다"고 말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에서는 방어선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직후 소셜미디어에 '농산물 시장도 완전 개방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김용범 실장은 "농축산물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가 전혀 없었고 합의된 바도 없다"고 분명히 했다.

3500억 달러, 우리 돈 약 48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의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에 대한 전용 투자 펀드로 설정돼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기자재 등 조선업 전반에 투입되기로 했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조선 분야 이외에 반도체, 핵발전, 2차전지 등 전략산업에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김 실장은 "대부분 보증과 대출로 구성되고 직접 투자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일본과의 대미 관세협상 결과를 비교하며 "우리는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더욱이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 펀드 1500억 달러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펀드 규모는 2000억 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우리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타결 직후 페이스북에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합의는 제조업 재건이라는 미국의 이해와 우리 기업의 경쟁력 확대라는 의지가 맞닿은 결과"라며 "한미 간 산업협력이 강화되고 동맹도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후속 협상 교착의 이유는 '3500억 달러 펀드'의 해석차이'현금'을 원하는 미국

하지만 후속 협상은 난항에 빠졌다. 핵심 쟁점은 투자펀드의 성격이었다. 한국은 미국에 투자하는 펀드에 들어갈 3500억 달러를 상한선(ceiling) 개념으로 이해하며 대출과 보증을 주된 방식으로 상정했다. 반면 미국은 현금이 직접 투입되는 지분투자를 주장하고 있다. 양국 간 '3500억 달러 펀드'의 투자 방식에 대한 인식차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upfront)"이라고 못 박았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달 11일 미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유연함은 없다.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25%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며 지난 7월 30일 합의에서 이견을 보이는 3500억 달러 투자 부분에 대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대통령실은 공개적으로 난색을 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스와프(통화 맞교환 계약) 등 안전 장치 없이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대통령은 "실무 협상에서 제시된 제안들은 상업적 타당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격차를 메우기가 어렵다",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이제 핵심 과제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고 난색을 표하며 "동맹 사이에서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 역시 지난달 24일 뉴욕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3500억 달러의 기한이나 내용을 볼 때 우리가 예상했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만약 그런 의미라면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이 당연히 눈에 들어왔다고, 그 부분을 미국에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낼 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미국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정부는 일단 통화스와프를 협상의 '필요조건'으로 제시했다. 김 실장은 "미국이 말하는 '캐시 플로우'를 자세히 보니 상당히 에쿼티(지분투자·equity)에 가까웠다"며 "그 문제(통화스와프)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충분조건은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고, 중요한 부담이라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수출입은행법 개정과 국회 보증동의 절차까지 언급했다.

김 실장은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이 맞고, 우리나라가 감내할 수 있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한미 간 상호 호혜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있다"며 "협상 시한 때문에 우리가 어떤 그런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 "데드 라인을 두고 있지 않다"고 재강조했다.

교착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모든 브랜드의 의약품에 100% 관세 부과 계획 등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과 유럽연합이 이미 자동차 관세 인하 혜택을 확보한 것과 달리, 한국만 불리한 위치에 남아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 의회와 외교·안보 오피니언 리더들을 상대로 설득전을 벌이며 "상업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협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 APEC에서 해소할 수 있을까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양국 협상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회의 참석차 방한할 예정이라 한미 정상회담이 자연스럽게 성사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실무협상에서 좁히지 못했던 입장 차를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주는 사실상 협상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을 협상의 중요한 계기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김용범 실장은 "중요한 계기는 경주 APEC"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면 양국 정상 간 면담이 있을 것이고, 협상팀 입장에서는 중요한 계기다. 그것도 염두에 두면서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미 관계에서 안보 측면 협력은 잘 진행되고 있다"며 "통상 분야에서도 상업적 합리성을 기초로 양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좋은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은 경제 규모와 외환 시장, 인프라 측면에서 일본과 크게 다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협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베선트 장관은 "이 대통령님의 말씀을 충분히 경청했고 내부적으로도 충분히 논의하겠다"며 "양국 통상협상과 관련 무역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어 "한미 동맹은 굳건하며 일시적 또는 단기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충분히 잘 극복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이 미국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착된 관세협상 상황에 더해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구금 사태까지 겹치며 협상 환경은 복잡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크리스토퍼 랜다우 미 국무부 부장관과 만나 "재발 방지를 위한 한미 비자 워킹그룹 출범"을 요구했고, 랜다우 부장관은 "미 행정부 관계 부처들과 적극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비자 문제와 통화스와프 협정 합의가 어렵다면 대미 투자 진행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김민석 국무총리)는 우려도 내놨다.

APEC에서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이 미국이 제안한‘3500억 달러 현금 투자' 프레임을 넘어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의 프레임에 갇혀서 현금투자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고스란히 받지 말고 언제든 재부과될 수 있는 관세·제재의 불확실성 제거가 핵심 목표여야 한다"며 "미국의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를 받으면 우리 경제는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고 가정해보더라도, 예컨대 언제 또 때릴지 모르는 불안에 떨면서 가만히 있을 것이냐. '이것을 주면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약속하라'고 하는 데까지 협상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미국이 절대적으로 힘이 강한 것은 알겠지만 우리가 없이 그들의 제조업 제건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제조업을 레버리지로 해서 협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다만 APEC 정상회의를 협상 시한으로 꼽는 것은 우리 협상력에 한계를 두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시한을 못박으면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APEC을 협상 시한인 것처럼 못박지 말아야 한다"며 "스스로 데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한 미국이 한국을 일본과 동일선상에두고 협상을 진행하려는 경향성에 대해서도 "한국과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미·일 합의의 각종 독소 조항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뉴욕 타임스스퀘어, 런던 피커딜리 광장 등 세계적 명소에서 알린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런던 피커딜리 광장 전광판에서 상영 중인 APEC 정상회의 홍보영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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