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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전략으로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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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전략으로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시민건강논평] 지역 문제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며칠 전 우리 연구소는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어느 공공 연구기관을 방문했다. 연구소의 오랜 관심인 인구 변화와 지역 불평등에 관한 연구 현황을 공유하고 관심과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어서 그런지 비교적 솔직한, 그러나 도저히 희망차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예상보다 교류의 자리는 일찍 파했다. 여러 주제를 다루었지만, 논의는 결국 도돌이표에 막혀 금방 제자리로 되돌아왔다고나 할까. 지금 지역 문제는 매우 구조적이어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이야기, 심하게 말하면 "백약이 무효"라는 판단이 결론 아닌 결론이었다. 누구도 노골적으로 이렇다 표현하지 않았으나, 이심전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위기가 밝을 수 없었다. 현실과 괴리가 큰 결론은 허무하고 무력하기 마련이다. 한편에서 막막하게 새로운 틀을 고민하는 사이, 현실의 모든 '지역'은 전례 없는 성장 신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형편이 아닌가. 취소 판결을 받은 새만금 공항은 다음 재판에서 설욕을 다짐하고, 여러 지역이 동시에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고 또는 이미 유치했다고 성과를 자랑하는 중이다.

그뿐인가, 새 정부 들어 '실용'의 바람에 편승해 모든 곳이 경제, 소득, 산업, 인구 늘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후퇴와 수축, 나아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상상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세종 같은 경우도 이 끝없는 경쟁에서 빠지지 않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회도 집단도, 그리고 개인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성장은 여전히 우리의 정신이고 몸이라 해도 좋다. 이 도도한 '시대 정신'은 전혀 끝날 기미가 없다.

비수도권 대부분(아니 모든) 지역이 이렇게 나서는 사정을 모르지 않으니 더욱 답답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상상력이 더 큰 성장이니 말이다. 지역 살리기와 인구 유지에 무슨 효과가 있고 없고를 따질 계제는 이미 지났다.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반론에 기후 위기니 성장의 한계 같은 주장은 아무 힘이 없다. 체제 전환 이야기는 자칫 현실을 모르는 청맹과니나 '정치적 올바름'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막상 두려운 것은 객관적 정세가 아니다. 구조와 개인이 조우하는 대표적인 현실 경험, 추석 명절을 맞아서도 지역 문제가 맞닥뜨린 가장 큰 걱정은 무력감과 패배주의가 아닐까 싶다. 미국이 제국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때에 한국의 새 정권 또한 신종 발전국가를 국정 목표로 내걸었다. 오늘날 한국의 지역 문제를 초래한 그 구조와 권력이 겉모습만 바꾼 채 굴복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해 힘에 부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과 친지와의 틈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정은 점점 더 불리해질 것이라 장담한다. 하지만, 역사의 성패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그 숱한 억압에 저항한 이들이 그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마따나 희망은 예측이라기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 상상력이다. 명절을 맞아 바로 그 '지역'을 찾아간 이, 또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피하지 못하고 이 문제를 떠올릴 때, 무수한 대안의 불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구조와 함께 주체를 다시 가다듬어야 함을 생각한다. 이 넓은 틈이 바로 새로운 '이중 운동'이 가까웠음을 나타내는 희망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구조와 주체에 함께 균열을 내는 데에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우리(나)의 실천은 우리(나)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의 이성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라는 그람시의 말이 우리의 다짐이 된다. 함께, 지역 문제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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