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세 교사의 정체성-교사의 보람
영유아의 '성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0~5세 교사들의 가장 큰 보람이며, 영유아의 순수한 신뢰와 애정은 0~5세 교사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 울음을 멈추고 선생님의 손을 잡는 순간, 첫걸음을 떼는 순간, 처음 말이 트이는 순간 등…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영아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세상 어떤 보상보다 값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친구와 손잡고 놀이를 즐기며 사회성을 배워가는 모습을 볼 때, 기본생활 습관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 규칙을 이해하며 공동체 생활을 해내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감동과 기쁨을 느낀다.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를 겪으며 자립해가는 작은 발걸음마다 함께한다는 사실에 교사들은 보람을 느낀다.
또한, 교사들은 학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 아이의 첫 선생님이어서 감사하다고 할 때, 영유아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에 대해 고마움을 전할 때 등 교사들은 자신이 영유아의 삶뿐 아니라 가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도 느낀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와 교사가 함께 이뤄내는 성취이며, 그 과정에 교사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직업의 특별한 보람 중 하나이다.
0~5세 교사의 정체성-교사의 애환
많은 교사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무엇보다 '아이를 예뻐하고 좋아해서' 유아교육을 공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으로 보람만 가지고 현장에서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교사 A : 내 딸은 절대 안 시키지
교사 B : 우린 3D를 넘어 4D 업종
교사 C :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다시 태어나면 이 직업 안 할래요
교사 D : 탈출은 지능 순이래요
교사 E : 제가 교사인지 사진사인지 헷갈려요
10년 차 이상 동료 교사들의 자조 섞인 말이다. 3D, 4D (Dirty 열악함, Difficult 힘듦, Dangerous 위험성, Dreamless 꿈이 없는, Depressing 우울한) 등은 근무 시간과 업무량 등 임금 대비 열악한 근무 환경, 이로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충, 직무 스트레스를 넘어 직업적 정체성 위기, 사회적 인식 부재로 인한 교권 추락 등 0~5세 교사가 현장에서 겪는 다차원적 어려움과 고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 명의 교사가 배변 지도, 식사 지도, 놀이 지도 등 지도자인 동시에 하루에도 수차례 영유아의 기분을 달래고 감정을 섬세하게 보듬어 주어야 하는 양육자 및 심리 상담가의 역할 뿐 아니라 다툼과 사고를 중재하는 안전 관리자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현재의 교사 대 아동 비율로 발달차가 큰 아동들이 같은 반에 있다면 개정된 놀이 중심 교육과정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 놀이 지원은 한계에 부딪힌다. 뿐만 아니다.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운영 방식에 따라 교사의 개인 번호가 노출되기도 하는데, 학부모의 카톡 상담이 이어지는 날에는 퇴근을 하여도 퇴근이 아니다.
양육과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와 의견 충돌이 교사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며, 교육적 판단이 학부모의 기대와 다를 경우 오해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교사의 전문성과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 느끼는 답답함도 크다. 활동 사진이 업로드 되는 날이면 더욱 긴장을 한다. "선생님, 우리 아이 표정이 왜 이래요? 잘 웃는 아이인데, 웃지를 않네요.", "○○는 왜 가장자리에 있죠? 가운데 자리에 세워주세요." 실제 현장에서 교사들이 빈번히 듣는 민원이다. 심지어 원장님들이 교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웃는 사진' 찍어주세요." 라고... 우리는 분명 교사인데 어느 순간 사진사가 되어 있고, 우리는 분명 교육을 하는 교육자로 현장에 왔는데 어느 순간 학부모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런 과정은 신체적인 노동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으로 이어져 교사들을 지치게 한다. 0~5세 영유아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지만, 가치에 비하여 근무 환경은 열악하고, 가치를 실현하기에도 전문가로서의 교사를 대우하는 환경은 멀고도 멀다. '탈출은 지능 순' 이라는 말이 가슴 아프지만 영유아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실제적 상황이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은 크지만 감당해야 할 무게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선택한 영유아교육을 사랑하고 언젠간 우리 분야도 바뀔 것이고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 우리의 후배들은 좀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영유아와의 관계와 교육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0~5세 교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목소리를 내왔다.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 '급여 수준 개선',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등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현장에 남아있는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한결같다. 우리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임금, 과도한 업무 부담 등은 교사들이 지속 가능한 직업으로 일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영유아와 함께 성장하는 기쁨 뒤에는 무거운 노동과 책임이 자리하며, 처우 개선이 시급한 현실에 직면해있다. 영유아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절실하다.
정부와 사회가 현장의 현실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영유아교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스승'으로서, 교사들이 존중받고 지원받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아직까지도 그저 아이를 '봐주는 사람'으로 '취급' 하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 영유아 권리 존중은 곧 교권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선생님들이 있어서 마음 놓고 우리 아이들을 맡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끄는 교사들, 정말 소중한 존재' 라는 덧없는 '말'만이 아니라 마음 놓고 맡겨주신 만큼 교사들도 마음 놓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교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없도록, 카메라가 아닌 눈을 맞추고 소통할 수 있도록, 유의미한 놀이 지원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 투~쓰리 담임(교실 하나에 여러 반을 합하여 구성)반 구성 규제, 교사 호봉 인상, 등·하원 차량 지원 등의 교육 외 업무 규제 등 현장에서 교사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처우 개선을 간절히 기대한다.
"△△야,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가 아닌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고, "◯◯아, 여기 봐~ 브이~" 가 아닌 아이의 시선을 따라 함께 탐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단순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닌 영유아 전문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싶다. 개별 영유아의 눈높이에 맞춰 매 순간 진심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이할 때 아이들의 배움을 읽어주고 지원하며 함께 성장하고 나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
이 글에 담긴 내용은 특정 기관이나 개인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0~5세 영유아 교사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처우와 제도적 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부디 이 글이 교사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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