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 대한 중국의 기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중국 내에서는 이재명 정부와 한·중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났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를 미국 편향적인 정책이자 미국의 반중 정책에 동조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반발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내세우며 외교 노선의 유연성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이재명 정부가 이전 정부와는 다른 대중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과 중국 간에 비교적 균형 잡힌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2025년 6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외국 정상과의 통화였다. 당시 시진핑(习近平) 주석은 한·중관계의 회복과 발전에 공감대를 표명하면서도,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발전을 위해 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글로벌 및 지역 공급망의 안정성을 보장하며,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입장을 줄곧 강조해 왔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강경한 반중 정책을 취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아래 무차별적 관세 정책을 추진하자, 중국은 이에 대응해 오히려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 공급망 안정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미국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진핑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 공급망 안정 보장을 강조한 것은 양국이 협력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항해야 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은 지역 내에서 확대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며, 이는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 억제와 견제를 최우선 순위로 삼고, 이를 위해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라는 이름하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내세우며 한국에 한·미동맹의 협력 범위 확대와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대만 문제와 연결되는데, 중국은 대만 문제를 자국의 핵심 이익이자 내정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국가의 개입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일방적인 요구로 인해서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주한미군이 축소되거나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이 가시화된다면, 중국은 그것을 지역 내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축소이자 대만 문제에 대한 주도권 확보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하고 한·중 양국의 협력과 양자관계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양자 차원을 넘어 한·중관계 개선을 매개로 지역 내 미국의 대중 견제와 압박을 완화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중관계를 지렛대로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
중국의 기대와 달리 이재명 정부는 지난 8월에 한·일 및 한·미 정상회담을 연달아 개최하며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한국이 과거와 같이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재명 정부의 균형외교를 기대했던 중국은 이런 외교 행보에 실망감을 표출했다. 이재명 정부가 방일 및 방미 일정을 앞두고 중국에 특사단을 보냈지만, 과거와 달리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은 없었다.
또한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8월 28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을 공식 발표했고, 9월 3일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은 위원장을 의전 서열 2위로 예우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이는 중국이 향후 북한 문제를 지렛대(leverage)로 사용해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임을 시사한다.
과거 북핵 문제에 있어서 중국 정부와 한국 진보 정부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체제', 중국의 '쌍잠정(雙暫停: 북한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쌍궤병진(雙軌竝進: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동시 추진)'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중관계 회복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2016년 사드 사태로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대중 정책은 정치 분열 및 반중 정서와 맞물려 국내에서 '굴욕 외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고려할 때, 중국은 한국 진보 정부와 북한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력과 소통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전단 살포 중단 요청,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표명 등을 통해서 북한과의 관계 회복과 이에 기반한 한반도 긴장 완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지난 8월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동결(freeze)-축소(reduction)-폐기(dismantlement)'라는 3단계 비핵화 전략을 제안했고, 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은 9월 2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것을 '중단(stop)-축소(reduction)-폐기(dismantlement)'로 표현했다. 이는 북·미 대화의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신고와 검증이 요구되는 동결과 달리 중단은 선언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 개최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은 9월 4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6년여 만에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중관계를 복원했다. 이는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중국 전승절 참석과 북·중 정상회담 개최가 대내적으로 '강성대국'의 위상을 선전하고 향후 미국과 협상하는 데에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미국 및 한국과의 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 목표가 상이한 상황에서 북·중 협력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회복되고 발전해 나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중국은 북한과 고위급 교류 및 교역을 확대해 나가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에, 특히 한국에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빌미로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의 축소와 중단을 요구하며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내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을 완화·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 방안
10월 말 APEC 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고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시진핑 주석이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한·중관계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대내외적으로 한·중관계의 회복과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며 한·중 간 경제협력과 교류 확대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단기간에 한·중 양국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 정부는 한·중관계의 회복과 발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고, 중국이 미·중 전략경쟁의 관점에서 한국에 접근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중국은 지역 내 미국의 대중 견제와 압박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한·중 협력과 북한 문제를 빌미로 한국의 미·중 간 균형적 태도, 대만 문제 불개입 등의 반대급부를 요구해 올 것으로 봐야 한다. 나아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 공급망 안정 보장을 명목으로 중국의 글로벌 담론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 외에도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다양한 안보 현안을 미국과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요구는 한국의 선택적 딜레마를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음을 중국에 전달하며 양국 간 오해와 대립이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나아가 역내 평화와 경제안보 증진 등 중국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대북 관계에서 중국이 실질적 역할을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중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오직 '국익'과 '실용'에 집중하면서, 국제 정세와 한반도 안보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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