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인도네시아 주민들의 고통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전식 전지의 주요 원료인 니켈이 핵심 광물로 주목받으면서, 니켈 매장량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에선 니켈 채굴·가공을 위한 투자가 급격히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파괴와 공중보건 위기, 인권 침해 등이 동반됐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환경운동 단체 AEER의 미우스 긴팅 활동가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기업 책임 강화를 위한 아시아 연대와 대응 국제포럼' 오전 세션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니켈 생산은 인도네시아에서 막대한 산림 파괴, 환경 오염, 원주민 삶과 인권 파괴 등을 낳았다"며 "한중일 등 동아시아에서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것의 실체는 불공정하고 환경 파괴적인 공급망을 통해서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생산국이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저장 장치 등의 핵심 부품인 양극재의 원료로,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추세에 따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왔다.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은 2020년 이후 생산량이 3년간 3배 넘게 증가해 2023년 175.6백만 톤을 기록할 만큼 급증했다. 제련소도 건설 중인 것을 합하면 60여 개가 존재한다.
광물 채굴부터 제련, 중간재 가공, 배터리 제조, 완제품(전기차 등)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사슬에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부유국이 깊숙이 자리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채굴과 제련을 거친 니켈이 중국, 한국, 일본 등의 기업을 거치며 중간재에서 배터리로, 배터리에서 전기차 등의 제품으로 완성되는 흐름이다. 미우스 활동가는 이를 '인도네시아-동아시아 니켈 공급망'이라 불렀다.
그는 광산이 위치한 지역 주민의 삶은 오랫동안 파괴됐고 지금도 위태롭다고 밝혔다. 일부가 아닌 거의 모든 광산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다. 그는 "동의 없이 건설이 이뤄져 강제로 쫓겨나거나, 약속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농지가 심각히 파괴돼 집단 항의에 나서면, 오히려 주민들이 체포되고 구금된다"며 "광범위한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제련 등 중간 가공이 이뤄지는 산업단지 오염 실태도 심각하다. 막대하게 분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에 더해, 지난 3월 산단 IMIP 주변에선 폭우가 내린 후 광산 폐기물로 추정되는 붉은 물이 범람해 마을로 유입됐다. 미우스 씨는 341가구의 주민이 중금속에 노출됐다고 우려했다. 바다, 하천으로 폐기물이 누출된다는 우려는 지역 내에 팽배하며, 탁도가 높아지고 어획량이 감소했다는 어부들의 증언도 거듭 보고된다.
미우스 활동가는 현재 니켈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전환은 그린워싱에 가깝다며 "한중일, 유럽 등의 자동차 회사는 청정에너지 전환을 홍보하지만, 실제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화석연료 발전과 거대한 환경파괴, 지역 주민 인권 침해를 동반하며 생산된다"고 지적했다.
 
									
발암물질 누출, 반대 주민 암살, 산재 사망
인도네시아 니켈 산업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대기업들이 투자자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LX그룹의 LX인터내셔널과 STX 등이 니켈 광산에 직접 투자했다. 포스코홀딩스, 에코프로, LG에너지솔루션, 현대모비스 등은 제련, 가공 등의 공장에 투자했다.
김혜린 기후해양정책연구소 실장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AKP광산을 예로 들어, "2021년엔 광산 폐기물이 식수원 오염을 일으켜 주민 수백 명이 광산 진입 도로를 막고 광산 폐쇄를 요구했고, 2023년엔 허가 없는 불법 벌목도 이뤄졌다"며 "2025년 감전으로 노동자 산재 사망이 발생했고, 지난 7월엔 노조 가입 방해 및 해고 협박 등이 발생해 광산 봉쇄까지 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광산은 2024년부터 LX인터내셔널이 지분 일부를 인수했다.
이와 관련 LX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당사는 감전 사고 후 안전담당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통해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했으며, 유족과 만나 조의를 표하고, 전후 사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으며 보상 절차를 마쳤다"며 "광산 인수 후 사업장을 재정비하면서, 인수 당시 8명에 불과하던 안전팀 인원을 31명으로 늘리는 등 근로자들의 안전과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노조 가입 방해 의혹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며, 당사와 관련 없는 한 지역노조가 수시로 사업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여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현지 경찰은 지역노조 측의 허위 사실 유포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검찰 송치 절차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게루 다나카 PARC 활동가는 필리핀 팔라완섬 내 한 니켈 광산 인근 강이 짙붉게 물든 사진과 주민들 피부에 붉은 반점이 오른 피부염 사진을 토론회장 화면에 띄웠다. 시게루 활동가는 "일본 지구의 벗(환경단체) 자체 조사 결과 인근 하천에 발암물질 6가 크롬이 검출됐다"며 "이 광산의 니켈 원광석은 중간 단계를 거쳐 일본의 도요타, 테슬라, 파나소닉 등으로 간다"고 밝혔다.
그는 한 20대 남성의 사진도 띄웠다. 베로니코 니코 델라멘테(Veronico Nico Delamente)란 이름의 이 청년은 2017년 1월 암살된 타가니토 광산 마을의 지도자였다. 필리핀과 일본 기업이 합작 투자한 광산이다. 시게루 활동가는 "원주민 국가위원회에 나가 '광산이 원주민 동의 없이 진행되며, 우리는 광산 확대를 반대한다'고 증언한 이"라며 "지역공동체 인구가 수천 명 정도라서 수사를 하면 암살범을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정부는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경 보호, 인권 존중, 지역공동체 존중 등의 정의 원칙에 따른 '책임 채굴'은 마치 유니콘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뿔이 달렸고 털이 무지개색인 말이라며 설명은 할 수 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말"이라며 "마찬가지로, 나는 책임 채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미우스 활동가는 "한중일, 그리고 유럽의 정부와 기업은 광산 단계에서부터 니켈 공급망의 문제를 투명하게 추적하고, 원료 출처, 오염물질 배출량, 사회·환경 피해 영향 정보를 사회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배터리 제조사와 자동차 생산기업은 OECD와 유엔기업과인권지침(UNGP)등 기준에 따라 인권과 환경에 관한 사전 실사(조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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