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표면상 별다른 성과가 없는 회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이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른 역사적 순간이었다. 시진핑은 '경제의 안보화' 구조를 흔들며 새로운 질서의 문법을 제시했고, 트럼프는 체면을 지키는 대가로 미국의 절대 금기를 내주었다.
1. '앙금 없는 찐빵'이라는 오독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국내외 언론은 "성과 없는 회담", "앙금 없는 찐빵"이라며 냉소적인 평가를 내놨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펜타닐 관세 일부 완화, 중국의 대두 수입 확대, 희토류 수출 허용 정도가 합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를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실질적 성과"라 포장했고, 시진핑은 "보복의 악순환이 아닌 장기 협력의 이익에 집중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이 '온건한 어조'의 배후에는 훨씬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시진핑은 회담에서 "중국은 반격할 능력을 이미 증명했다"고 말하며, 미국의 압박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즉, 표면의 미소와 악수 뒤에서 벌어진 진짜 협상은 '무역'이 아니라 '국가안보' 그 자체의 거래화였다.
2. 안보의 성역이 협상 테이블로 내려오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지난 9월 말 발표했던 '제재대상 확대조치'의 철회에 있다고 보인다. 이 조치는 제재 대상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모든 자회사까지 제재 범위를 확장하는 내용으로, 중국 내 1200개 기업이 단숨에 2만여 개로 불어날 위험에 처했다. 이는 사실상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마비시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부산 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치를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미국이 자국의 '국가안보 정책'을 외교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린 첫 번째 사례이자, 2018년 이후 이어져온 '경제의 안보화' 체제의 균열을 의미한다. 이제 안보는 더 이상 절대적 금기가 아니다. 정치적 비용이 계산되는, 교환 가능한 카드가 된 것이다.
3. 시진핑의 연출 — '강의하는 주석'
뉴욕타임스는 시진핑이 이번 회담에서 단순한 협상 상대가 아니라, '강의하듯' 트럼프에게 설명하는 자세를 취했다고 전한다. 그는 "중국이 반격할 능력을 증명했으니 미국은 이를 잊지 말라"고 단언했고, 트럼프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 장면은 중국이 지난 수개월간 준비한 '정치적 연출'의 절정이었다. 희토류 수출 통제는 압박의 수단이었고, 대두 수입 재개는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 이해를 고려한 미끼였다.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승리로 포장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대신, 미국으로 하여금 '안보정책의 협상화'라는 선을 넘어오게 만들었다. 이것이 이번 회담의 실질적 승리였다.
4. '역보복의 기술' — 안보논리를 되돌려주다
중국은 회담 직전, "중국산 희토류가 0.1%라도 포함된 제품의 역외 수출을 통제한다"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논리를 대칭적으로 되돌려주는 '역보복(counter-security)'이었다. "당신들이 안보를 이유로 제재한다면, 우리도 안보를 이유로 공급망을 통제할 수 있다." 이 메시지는 워싱턴보다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즉 미국 산업계의 신경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실제로 보잉, GE, 퀄컴, 인텔 등 주요 기업들이 즉각 반발하며 "BIS 조치가 자국 산업의 공급망을 파괴한다"고 백악관에 압력을 넣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후퇴를 선택했다. 겉으로는 경제적 거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안보의 우위성을 누가 쥘 것인가의 협상이었다.
5. 반도체는 왜 의제에서 제외되었을까?
주목할 점은, 중국이 반도체 제재 완화를 의제로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이미 반도체 자립을 '국가전략의 축'으로 확정했으며, 단기적 제재 해제보다 장기적 기술주권 확보를 선택했다. 이로써 협상의 경계가 명확해졌다. 중국은 '협상 가능한 영역'과 '협상 불가한 영역'을 구분했고, 미국은 스스로의 금기였던 '국가안보의 절대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순간, 전략적 주도권은 완전히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트럼프가 '승리'를 국내 정치용으로 포장하는 사이, 시진핑은 국제질서의 규칙 자체를 한 칸 이동시킨 셈이다.
6. '두더지 잡기'의 함정 — 전략 없는 전술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친 연구원은 이번 회담을 두고 "전략 없는 전술의 전형"이라 평가했다. 미국은 봉쇄와 관세, 제재와 완화를 반복하며 '두더지 잡기'식 대응을 이어왔지만, 중국은 이 패턴을 계산적으로 역이용했다.
트럼프의 목표는 '국내용 승리 선언'이었고, 시진핑의 목표는 '미국의 구조적 후퇴'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 결과, 겉보기 거래는 트럼프의 몫이 되었으나 실질적 제도 변화는 시진핑이 가져갔다. 이는 미중 경쟁의 세 번째 단계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7. 미중 전략경쟁의 제3단계 — '경제안보의 현실조정기'
이번 부산 회담은 미중 전략경쟁이 새로운 국면, 즉 '조정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2018년 무역전쟁이 촉발한 '충돌기(Decoupling)', 2021년 이후 공급망 재편과 동맹 강화로 이어진 '봉쇄기(Containment)'를 지나, 이제 양국은 각자의 손익을 따져가며 '경제안보의 현실조정기'에 진입했다.
이 단계의 핵심은 단순한 긴장 완화가 아니다. 안보의 정치경제화, 즉 안보 논리가 경제적 효율성의 제약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기술봉쇄의 부메랑을, 중국은 자립화의 비용을 체감했다. 결국 양국은 '전면 봉쇄'에서 '부분 협상'으로, '원칙 경쟁'에서 '비용 조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공급망 불안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내적 압박을, 시진핑은 외자 회복과 경기 둔화라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다. 이 양방향의 압력이 맞물리며, 미중 경쟁은 이제 '체제 대결'에서 '제도 효율의 경쟁'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
요컨대, 부산 회담은 '총체적 봉쇄'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고, '경제안보'를 둘러싼 상호 현실조정이 시작된 출발점이었다. 양국은 이제 '누가 더 강한가'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계산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 변화는 긴장의 완화가 아니라 비용의 현실화다. 양국 모두가 '총체적 봉쇄'의 지속이 자국 이익을 갉아먹고 있음을 인정한 결과이자, 전략 경쟁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려는 제도적 조정의 시기다.
8. 결론
부산 김해공항의 악수는 조용했지만, 그 여운은 깊다. 이번 회담에서 세계는 처음으로 '국가안보'가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의 교환대상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중국은 협상권을 되찾았고, 미국은 체면을 지키는 대신 '안보정책의 절대성'을 포기했다. 이것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세계경제 질서가 새로운 문법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 불린 이번 부산 회담의 속살에는 전략 경쟁의 세 번째 막, 즉 '질서의 재문법화' 시대의 개막이 숨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협상이었지만, 그 여파는 이미 세계질서의 균형선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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