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주민 청년 뚜안(가명·25) 씨의 발인이 있던 지난 10월 31일, 그의 부모님은 노란 무릎 담요를 꼭 끌어안고 한나절 내내 통곡했다. 생전 뚜안 씨가 항상 두르던 담요였다.
"못 보낸다. 내 딸 못 보낸다. 억울하다. 다음 생엔 내가 뚜안 딸로 태어날 거다. 다음 생에 또 만나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만나자. 혼자 외롭지 않게 내가 같이 있어 줄게."
어머니 A 씨는 이날 여러 번 주저앉아 이렇게 말했다. 관이 화구에 들어갈 때도 "못 보낸다"며 오열했고 "내가 부족해서 네가 그런 사고가 났을까"라며 가슴을 쳤다.
뚜안 씨는 지난달 28일 자신이 일했던 대구 성서공단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들이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한다며 공장을 급습한 후, 장시간 수색을 끝내고 공장에서 나간 직후였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이날 오전 9시, 빈소가 마련된 대구 구병원 3분향실에서 뚜안 씨의 발인이 시작됐다. 이날 일찍부터 빈소를 찾은 가족, 친구들은 극락왕생 기도를 같이 올린 후 장례 행렬을 시작했다. 뚜안 씨의 남자 친구가 영정사진을, 절친한 친구가 향을 들고 행렬을 이끌었다.
장지로 향하기 전, 이들은 뚜안 씨가 일했던 성서공단의 공장을 들러 노제를 지냈다. 공장 1층 가장 안쪽 방, 뚜안 씨가 숨진 곳 가장 가까이에 책상을 놓고 간이 제사상을 차렸다. 뚜안 씨는 이곳 창문 밖 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콘크리트 바닥엔 다량의 혈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이를 보던 아버지는 곧장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이내 돌아온 그는 딸이 사망한 자리에 몇 개의 과일과 꽃, 술을 놓고 향을 피웠다. 뚜안 씨의 담요로 바닥을 계속 덮어주려고도 했다.
뚜안 씨의 부모님은 제사상 앞에서 두 번 절을 올리고도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합장한 손을 부르르 떨며 크게 울부짖었다. 노제는 장례 참가자들의 눈물바다 속에 10여 분간 진행됐다.
평택 한 공장에서 야간 일을 하는 사촌오빠 B 씨는 이날 새벽 첫차를 타고 바로 대구로 왔다. B 씨는 <프레시안>에 "너무 슬퍼서 어떤 말이 잘 안 나온다"며 "뚜안은 정말 열심히 살았던 애다. 지금 우리 가족은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죽음 부른 단속과 뚜안 씨의 마지막 말 "너무 무서워. 숨쉬기가 힘들어"
'나는 숨어 있어. 무서워. 지금 8명이 잡혔다고 해. 조금 전 내가 있는 곳으로 출입국이 왔어. 들어와서 소리치고 있어. 너무 무서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28일 3~4시 뚜안 씨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대구출입국 단속반 차량은 당일 오후 3시경 뚜안 씨가 일한 공장으로 돌연 진입했다. 출입국 직원들은 경비실에 차량 차단기를 올리라 한 후, 사무실로 가 단속을 통보하며 이주노동자 명단을 요구했다. 회사는 40명의 명단을 제출했다.
연대회의는 "공장 내로 들어온 30~40명의 단속반은 미란다원칙 등 어떤 고지도 없이, 체류 비자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이주민으로 보이면 무조건 2명씩 짝을 지워 수갑을 채우고 호송 버스로 데려갔다"고 밝혔다. 이들은 버스 안에서 이주민의 신원을 확인하고 출입국에 전화해 체류 비자 여부를 확인했다. 체류 비자가 확인되면 버스에서 내보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긴급 체포했다.
현장에 있던 한 이주민은 당시 상황을 "단속반이 공장을 에워쌌고, 공장은 아수라장이었으며, 단속반은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붙였고 소리 질렀다"며 "이주노동자들이 겁에 질려 모두 뛰어다녔고 공포에 떨었다"고 회상했다.
단속반은 이날 3시간 넘게 공장을 수색했다. 도중 '왜 이렇게 오래 단속하느냐'며 한 이주민이 묻자, 출입국 직원은 '40명의 명단 중 현재 39명의 신원만 확인됐다. 한 명이 공장 안에 남아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한 명은 뚜안 씨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뚜안 씨는 이날 최소한 저녁 6시 27분까지 공장 2층 한 창고에 계속 숨어 있었다. 뚜안 씨는 3시간 동안 친구들과 계속 통화와 문자를 나눴다. 그는 "단속반이 큰소리치면서 돌아다니는 소리나 체포된 동료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공포를 느꼈다"거나 "숨쉬기가 힘들다. 답답하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저녁 6시 27분, 그는 친구에게 "숨쉬기 힘들다"는 문자를 보냈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10분 뒤 친구가 '(단속반) 다 갔어. 너 어디야?'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리곤 저녁 6시 40분, 그는 1층 바닥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가 숨었던 2층 창고는 바닥에서 약 10m 높이에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직접 사인은 머리뼈 골절이며, 약 2층 높이(실제 구조상은 3층 높이)에서 추락해 머리, 온몸이 골절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가 추락한 창문 바로 앞엔 공장 펜스가 설치돼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선 뚜안 씨가 2층 창문을 통해 공장 펜스를 넘는 과정에서 추락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보도자료에서 "단속직원은 회사 관계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관계자 안내에 따라 사업장 내부 단속을 실시했다"며 "오후 4시경 불법체류 및 취업 외국인 34명을 적발해 단속을 종료했고, 5시 50분경 적발된 외국인을 대구출입국사무소로 이송하면서 단속반원들도 함께 철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 사망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이후로, 단속이 종료된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대회의는 지난 30일 대구출입국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거짓해명은 책임회피이며 '절차를 지켰다'는 말은 공허하다“며 "단속이 남긴 공포와 긴박한 추적의 시간 속에서 노동자가 숨졌다는 사실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의 폭력적 단속이 낳은 인권 참사이자 제도적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뚜안 씨의 죽음엔 법무부의 강압적 단속 외에도 짚어야 할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가 법무부 단속을 피하려 할 수밖에 없던 배경엔 외국인 유학생의 삶을 옥죄는 비자 체계도 연관돼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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