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베짜기가 꿈꾼 혁명
1844년 12월 21일, 동짓날 저녁이었다. 영국 북서부 멘체스터 로치데일의 두꺼비 골목에 있는 허름한 가게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진열대에 놓인 건 버터 몇 덩어리, 설탕, 밀가루, 오트밀 한 자루, 그리고 촛불 몇 개. 가스 회사가 공급을 거부해서 이 촛불로 가게를 밝혀야 했다. 웃음거리였다. 자본가들은 코웃음 쳤고, 이웃들은 "또 망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 초라한 가게가 전 세계 7억 명의 삶을 바꿀 운동의 출발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중심에 찰스 하워스(Charles Howarth, 1814-1868)라는 면직물 공장의 날실 감는 노동자가 있었다.
이상주의자의 첫 번째 실패
하워스는 젊은 시절부터 남달랐다.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의 사상에 깊이 빠진 그는 1833년, 겨우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첫 협동조합 가게를 열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2년 만에 가게는 문을 닫았고 빚더미만 남았다.
보통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자본가들이 이기는 게임이지." 하지만 하워스는 달랐다. 그는 실패에서 배웠다. 문제는 이상이 아니라 방법이었다. 자본이 부족했고, 원칙이 불명확했으며, 조합원들의 헌신이 약했다.
28명의 개척자들, 1파운드씩 모으다
11년 후인 1844년, 하워스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엔 준비가 달랐다. 그는 로치데일의 베짜기, 직물공, 노동자들과 모임을 만들어 조금씩 돈을 모았다. 일주일에 2펜스, 3펜스씩. 개는 울타리 너머 고기를 보며 침을 흘리는데, 이들은 울타리를 직접 만들고 있었다.
28명이 모였다. 각자 1파운드씩 냈다. 당시 2주치 임금이었다. 굶기를 각오한 투자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로치데일 공정한 개척자 협회"(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라고 불렀다. 거창한 이름이었지만, 동네 도매상들은 이들에게 물건 팔기를 거부했다. 맨체스터까지 걸어가서 물건을 사 와야 했다.
배당금의 마법, 하워스의 천재적 발상
하워스의 진짜 천재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가 작성한 협회규약에는 혁명적인 원칙이 담겨 있었다. 바로 "구매액 비례 배당"이다. 협동조합이 이익을 내면 그 돈을 조합원들에게 나눠주되, 각자가 구매한 만큼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대수냐고? 당시로선 혁명이었다. 자본주의 가게는 주인이 이익을 독차지했다. 노동자들은 늘 손님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워스의 방식에선 손님이 곧 주인이었다. 물건을 살수록 더 많은 배당을 받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선할 구조를 만든 것이다.
더 놀라운 건, 1846년부터 여성도 완전한 조합원 자격과 투표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여성이 선거권을 얻은 건 1928년이다. 하워스와 개척자들은 80년을 앞서갔다.
성공, 그리고 조롱자들의 침묵
첫 해가 지나자 조합원은 80명으로 늘었다. 1850년에는 600명이 되었다. 가게는 확장했고, 물건 종류도 늘었다. 차와 담배까지 팔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물건에 물이나 분필을 섞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가게들은 우유에 물을 타고 밀가루에 분필을 섞는 게 일상이었다. 하워스의 가게는 정직했다. 정확한 무게와 순수한 물건.
조롱하던 자본가들은 입을 다물었다. 1900년에 이르자 영국 전역에 1439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하워스의 원칙은 국경을 넘어 퍼져나갔다.
하나 더, 도매 협동조합의 창립자
하워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850년, 로치데일 협동조합 제분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1850년대 중반부터는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개별 협동조합들이 물건을 공동으로 대량 구매하면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1863년, 북잉글랜드 협동조합 도매조합(North of England Co-operative Wholesale Society)이 설립되었다. 하워스는 12명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조직은 지역 협동조합들에 물건을 공급하는 거대한 유통망이 되었다.
천식과 함께 사라진 개척자
1868년 6월 25일, 찰스 하워스는 헤이우드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54세. 사인은 천식이었다. 1860년대 중반부터 날실 감는 일을 그만두고 병과 싸우며 살았다. 그가 남긴 것은 아내와 다섯 자녀,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협동조합 원칙이었다.
하워스가 죽을 무렵, 그가 만든 작은 가게는 이미 수백 개의 가게로, 수만 명의 조합원으로 번져 있었다.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ICA)이 내세우는 협동조합 7대 원칙의 뿌리는 바로 하워스가 작성한 1844년 규약에 있다.
역사는 누가 쓰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하워스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로버트 오언은 유명하다. 로치데일 개척자들도 집단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정작 규약을 작성하고, 배당원칙을 고안하고, 도매조합 설립을 주도한 하워스는? 역사책 귀퉁이에 겨우 몇 줄.
왜 그럴까. 그는 화려한 연설가가 아니었다. 부자도 아니었다. 그저 날실 감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섰고, 원칙을 세웠으며,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꿨다.
오늘의 질문
2025년 현재, 전 세계 협동조합 조합원은 약 12억 명으로 추정된다. 찰스 하워스가 1833년 처음 시도했던 그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우리는 묻는다. 거대 자본이 모든 것을 삼키는 이 시대에, 하워스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 손님이 주인이고,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며, 정직한 거래를 추구하는 가게는 여전히 가능한가?
답은 아마도 하워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라. 28명만 모아라. 1파운드씩만 모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시작하라. 세상은 생각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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