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다양한 취지를 품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사유는 나날이 핵무력을 증강하면서 핵잠수함 건조까지 추진하고 있는 조선에 대한 대응 능력 확보에 있다. '조선 핵위협에 맞서 핵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잠수함 보유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의 핵잠수함 도입 및 원자력 협정 개정 방침을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정책 방향의 현실성과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우리도 핵이 들어가는 뭔가를 가져야 한다'는 지배적 감정 앞에선 초라해지기 일쑤이다.
또 한 가지 포인트가 있다. 북미간의 협상이 재개되면 비핵화는 먼 훗날의 과제로 이루고 동결과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군비통제'가 부상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이 조선의 핵보유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다. 북미회담을 원하는 이재명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핵잠수함 도입은 이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의 성격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비핵화가 불가능해지거나 장기 과제로 미뤄지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상쇄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 주목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소나마 여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우리도 핵잠수함 보유와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을 추진할 테니 동결과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북미 협상을 이해해 달라'는 입장이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1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은 분명한 이익이 있다"며, "결실 없는 최종 목표를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달성할 것인지 문제"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런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발언 속에는 비핵화를 고집할수록 북핵 능력이 강해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현실적인 목표", 즉 북핵 동결부터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북미 간에 핵 동결에 합의하면 "한국은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전후해서도 이재명 정부는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북핵 접근을 계속 거론해왔다. 동시에 두 차례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북핵 동결 합의 수용'과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핵 대처에 대한 정부의 선택지를 넓히고 여론을 달래는 데에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동시에 그 부작용도 직시할 필요는 있다. 한미공조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대화 재개 및 북핵 동결과 이에 대한 상응조치의 의제화는 한미 간의 긴밀한 논의를 요한다. 그런데 '안보 분야'의 논의의 초점이 핵잠수함 도입에 맞춰지면 북핵 협상에 대한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다. 건조 지역부터 핵연료 공급 방안에 이르기까지 한미 간의 이견과 난관이 수두룩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한국이 핵잠수함 도입을 비롯한 군비증강에 집착할수록 '북핵 동결'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선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2차 핵공격 능력' 확보를 통한 핵억제력의 현대화에 있다. 조선의 핵잠수함 건조 계획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조선으로 하여금 핵잠수함 건조를 비롯한 추가적인 핵능력 강화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려면, 한반도 차원의 군비경쟁 완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재명 정부가 북핵 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한국도 핵잠수함 도입을 비롯한 군비증강에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할 때이다. 핵잠수함 도입을 비롯한 대대적인 군비증강 계획과 북핵 동결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은 결코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 톡톡히 경험했던 바이기도 하다.
부디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우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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