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는 오래전부터 '예향'의 도시로 불렸으나 그 명성을 실질로 만든 인물에 대해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화려한 무대 뒤 예술인을 키우고 전주 예술의 터전을 일군 남전(藍田) 허산옥(1924~1993)은 지금의 김제시 부량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남원 권번에 들어가 '산옥(山玉)'이라는 예명을 얻고 그곳에서 춤과 노래, 시, 그림을 배웠다. 당시 권번은 당대 예술인들이 모여 가무와 문학, 서화를 익히던 종합예술학교였다.
그는 해방 이후 전주로 자리를 옮겨 풍남문 인근 좁은 골목 안에 자신의 예명을 딴 한정식집 '행원(杏園)'을 열었으며 의재 허백련, 이응노, 이용우, 송성룡, 변관식 등 당대 화가들이 전주에 들리면 가장 먼저 찾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번 돈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고 학비가 부족한 청년들에게는 유학비를 내주기도 했다. 6·25전쟁 때 피란 온 명창 박초월, 김소희, 김연수, 임방울과 한국화가인 김은호, 변관식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국악인도 여럿 배출됐다고 한다.
그는 의재 허백련에게 산수화를, 강암 송성룡에게 서예를 배우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으며 1960년 제9회 대한민국전람회(국전)에서 '묵국(墨菊)'으로 입선한 뒤 1980년까지 총 15차례 입선했다.
국전에서 4회 이상 수상하면 추천작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남성 중심 심사체계에서 낙선했던 그에 당시 연구자들은 "다른 남성 작가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남성 심사위원들에 의한 차별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93년 전북예술회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자신이 만든 행원에서 예술인들을 맞았다. 그가 떠난 뒤에도 행원은 국악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굵직한 행보를 남긴 남정의 예술세계를 반추하기 위해 전북도립미술관은 오는 15일부터 내년 2월 22일까지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허산옥, 남쪽 창 아래서'를 연다.
이번 전시는 해방 이후 전북 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그동안 미술사적 평가를 충분히 받지 못했던 허산옥의 삶과 작품을 추적해 그가 구축한 미적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전시에는 허산옥의 대표 화조화와 함께 그가 교류했던 지역 작가들의 작품, 새롭게 발굴된 아카이브 자료가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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