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윤리인 시대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성실히 출석한 친구를 향한 '개근 거지'라는 조롱이 떠돌고, 청년들은 호화로운 여행 사진을 자랑하는 SNS에 몰입한다. 연중 한 번 정도는 해외로, 철 따라는 국내의 관광지로 가족여행 가는 것이 중장년들의 친구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이야깃거리이고, 전 세계 안 가본 곳을 꼽아보는 어떤 이들에게는 은퇴 후의 꿈이란 여행가의 삶이다. 어떤 여행이든 개인적으로는 쉼과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경험이 될 터라, 모든 이가 여행하는 이 시대에 우리 여행의 기술은 빠르게 늘어만 간다.
이 개인적 차원의 여행이 시대의 대세가 되면서 '관광'이 문제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지역은 절대적 약자다. 한 상인의 불친절에 온라인을 통해 전국의 잠재적 손님들로부터 비난이 집중되고, 좀 심하다 싶게 비싼 음식 가격은 지자체가 나서 반성해야 하는 집단 금기로 여겨진다. 청명한 하늘과 울긋불긋 단풍이 지천인 이 시절, 주말마다 전국의 '지역들'은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의 테마 축제로 경쟁하며 손님을 끄는데 결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 장면에서 지역은 먼 곳으로부터 와주신 고객을 위해 합당하게 '서비스' 해야 하는 업주가 되어버렸다.
좋은 관광 프로그램과 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토록 다양하고 고유한 사연을 가진 지역들이 서로서로 비교당하며 모객에만 몰두하는 사업가처럼 비쳤을 때, 지역의 모든 관심과 자원이 오로지 관광객에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답답함과 우려가 커진다. 얼마 전의 개인적 경험이 이 불편한 느낌에 기름을 부었다. 지역의 광역지자체 고위 담당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한 정책이 관광인프라의 보강을 최우선시하고, 주거 정책이라기보다는 '주택'산업 정책이 서울의 그것을 복제해서 서울 사람이 세컨하우스로 살만한 '뷰가 좋은' 고층아파트 단지 건설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정책 오판이라는 생각보다는, 전면적인 인구감소와 지역 소멸을 앞둔 시점에서 지역 살리기가 방문객과 외지인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처럼 보였다. 지역 살리기는 분명 복합적인 차원의 문제이고, 지역 입장에 선 정책 담당자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균형발전, 혁신도시, 광역권 메가시티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역 살리기의 국가적 사업과 정책 담론에 대해, 당사자인 지역은 그 사업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해야 할까? 중앙정부의 정책과 연계하는 한편으로,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해 볼 정책이란 어떤 것일까?
2023년부터 통계청은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생활인구' 통계를 집계, 공표하기 시작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와 외국인등록인구에 통신사 데이터를 활용, 한 지역에서 머무는 시간이 일정 기준 즉,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인 '체류인구'를 합친 개념이다. 통계가 지역에 대한 속성으로 물리적 시설 지표가 아닌 '사람'에 초점을 두고 있는, 그 전과는 다른 접근이어서 기대가 된다. 그렇지만 그 통계를 활용해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쉽기만 하다. 체류 기간, 재방문율, 카드 사용 부문에 따른 소비 구성 등, 관광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라면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인식하고 있는 지역이란 여전히 방문객에 대한 서비스에 목을 매는 사업주 정도로 전형화될 것이다.
통계에의 실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생활인구 개념에는 지역이 가진 문제 상황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실마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체류인구라는 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해당 지역의 공간을 '경험'하는 주체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생각도 한 지역의 생활인구로서의 최근 몇 년 동안의 개인적 경험에 따른 것이다. 2020년부터 지역에 있는 인구 20만의 도시에서 매주 2, 3일을 지내고 있다. 몇 년간 지내면서 반복될 때마다 새삼 지역의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몇 가지 장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 도시는 바다를 면하고 시가지 내에 기나긴 녹지띠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매력 넘치는 도시지만, 새로 지은 시청사는 도보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청사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청사 입구에서 500m나 떨어져 있고 그 거리는 모두 오르막이다. 5개 노선이 표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운행 중인 노선은 단 한 개였다. 운전해서 방문한다면 넉넉히 1시간 정도면 될 일을 버스를 타고 걸었더니 4시간이 걸렸다. 그 청사는 정말 수백 대 규모의 커다란 주차장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도 주차장은 항상 만차여서 수차례를 빙빙 돌아도 빈자리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우연히 발견한 사회조사보고서에서 그 상황과 관련된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도시는 승용차 의존도가 67%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였다. 대중교통 이용률도 14% 미만으로 가장 낮은 곳이어서, 시민의 75%는 '단 한 번도' 시내버스를 타지 않는다. 시민 천 명당 67명만 버스를 타고, 그들 대부분은 운전할 수 없거나 개인이 승용차를 가지지 않은 70대 이상 고령자, 여성 비율이 특히 높은 청년과 중고등학교 다니는 청소년이다. 게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그 작은 도시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부모가 운전하는 승용차로는 단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말이다. 악순환의 전형이다.
이런 도시에 사는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계층은 장기적으로 '이동 능력'에 종속될 것이다. 이 도시에서 모두가 차를 가지는 이유다. 듣기에 이웃의 말은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가 '사람 노릇 하라'고 차를 사준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자기 차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청년들은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 막차 시간이 7시 반이어서, 퇴근 후에 학원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려면 언제나 택시를 타야만 한다고 했다. 운전하지 않는 청년들, 청소년들, 고령의 노인들은 자신의 이동을 개인적으로 해결해 줄 누군가가 없다면 절대적 이동 약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이동 능력이 제한된 이는 도시에서 찾아야 하는 기회와 자원 접근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생활 여건이 되는 인프라, 즉 거주 '경험'을 구성하는 차원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세계의 확장이 거침없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료서비스에의 접근성, 다양한 교육 기회와 자원에의 접근성,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 등과 같이 우리 일상의 매 순간은 거주하는 지역 내의 인프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동성을 비롯한 어떤 지역이 가진 인프라적 조건은, 그곳에 거주하는 한 개인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자원을 얼마나 수월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엮을 수 있는가의 기본 조건이 된다. 결국, 그것은 거주하는 개개인 역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집합적인 의미에서 '지역 역량'이 된다.
체류 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반영하는 정책이라면, 체류하는 사람을 관광객으로만 치환해서 상상해서는 안될 이유다.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는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프라와 공통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는 제주 마을처럼 휴일에는 농기계가 드나들 수 없는 농촌 마을 안 생활도로나 외지인이 운영하며 경관 자원을 독점하는 거대한 카페 등과 같은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관광객을 우선하면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사람의 경험에 무감한 상황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방문객을 위한 차도와 주차장은 드넓지만, 보도는 형식상 설치된 좁고 울퉁불퉁한 띠에 불과하다. 몇 년간 차도 포장은 거의 매년 반복되고 교통신호등은 해가 다르게 '스마트'해졌지만, 고령의 동네 주민들이 걸어야 할 그 좁고 울퉁불퉁한 보도는 시청의 다른 부서에서 설치한 장식 조명과 조형물, 구조물이 새로 설치되고, 부서지고, 고장 나기를 반복했다.
지낸 기간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이런 경험은 '지역 격차'를 개인의 경험 차원에서 이해할 계기가 되었다. 보고서와 논문에서 보던, 지역의 인프라 수준을 측정해 놓은 각종 지표의 의미가 지역 현장에서는 이런 것이었구나! 지역들을 중앙에 뒤처지는 '지방'으로 만드는 그 격차는 그렇게 생활하는 주민들의 현실 속에 드러난다. 지역 정책이 어떤 이들을 목적으로 두어야 하는지를 격차를 안고 있는 지방의 시점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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