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이하 현지시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평화 계획을 지지하는 결의안이 승인됐다. 2027년 말까지 가자지구 과도 통치와 재건을 감독할 평화위원회 및 국제안정화군 승인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성이 떨어져 실행에 난항이 예상되지만 휴전 2단계 이행의 발판을 마련해 종전 의지는 강조됐다는 평가다.
미국이 초안한 해당 결의안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15개 이사국 중 13개국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기권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진 않았다. 결의안 통과를 위해선 9개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상임이사국 중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러시아는 자체 결의안을 작성해 미국 안에 대항했지만 아랍국들의 미국 안에 대한 지지를 의식해 결국 거부권 행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결의안 통과로 평화위원회와 국제안정화군 창설이 핵심인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전후 통치 및 재건 구상이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안보리가 "나를 의장으로 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존경 받는 지도자들이 포함될 평화위원회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놀라운 투표"를 한 것에 대해 "축하"를 표현했다. 이어 관련해 "향후 몇 주 안에 많은 흥미로운 발표"가 있을 것을 예고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 외에 평화위 참여 예정 인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 평화 구상에 따르면 전후 가자지구 통치는 팔레스타인인과 국제 전문가들로 이뤄진 기술관료 중심의 팔레스타인 위원회가 맡게 되는데, 평화위는 이 과도 정부를 감독하고 재건 자금 조달을 포함해 가자 재건 틀을 짜는 역할을 맡는다.
아직 어느 나라도 참여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은 국제안정화군의 경우도 결의안 통과로 창설을 향한 길을 닦게 됐다. 이집트, 튀르키예(터키),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인도네시아 등은 미국에 안정화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유엔 승인이 필요하다고 시사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결의안 통과를 트럼프 대통령 구상 실행을 위한 주요 단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마이클 월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인도네시아, 아제르바이잔 등 많은 부분이 무슬림 다수국에서 파견될 강력한 평화지킴이 연합"인 안정화군이 "가자 거리를 보호하고 비무장화를 감독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고 안전 통로를 통해 구호품을 호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의안은 모호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결의안은 가자지구 재건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개혁이 진전된 뒤 "팔레스타인 자결권과 국가 수립을 위한 신뢰할 만한 길이 마침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신문은 이는 초안엔 없던 내용으로 결의안에 대한 아랍 및 이슬람 세계의 지지 및 국제안정화군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이 이후 추가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명확한 일정 제시는 없었다.
결의안 통과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비무장화, 가자지구 전후 통치 및 재건 등 난제가 산적한 휴전 다음 단계로의 발판이 마련됐지만, 실행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평화위 및 국제안정화군의 구성이 드러나 있지 않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일정도 미제시돼 있는 등 결의안 자체의 모호성이 상당하다.
여기에 휴전 2단계의 가장 큰 과제로 꼽히는 하마스 무장해제 감독을 국제안정화군이 맡게 되며 구성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 통신은 결의안이 안정화군에 무기 해체, 군사시설 파괴 등 가자지구 비무장화 과정 보장을 맡김에 따라 하마스와 안정화군이 대립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스와의 충돌 가능성은 안정화군 파견을 고려하는 국가들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하마스는 결의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로이터>를 보면 하마스는 성명을 내 "결의안은 가자지구에 국제 후견 매커니즘을 부과하는데, 우리 국민과 파벌은 이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안정화군이 하마스 무장 해제 임무를 맡는 건 "중립성을 저버리고 분쟁 당사자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자지구에서 국제안정화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과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발생한다면 아랍권 여론은 안정화군 참여 반대로 뒤집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더해 결의안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모호하게 언급했음에도 이스라엘 쪽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국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으로, 추후 갈등이 예상된다. 16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어떤 영토에 수립되든 팔레스타인 국가를 반대한다는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디언>은 모호함 탓에 이 결의안이 "유엔 역사상 가장 이상한 결의안 중 하나"라면서도 "지난달 미국이 중재한 흔들리기 쉬운 휴전을 지속적 평화로 굳히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유럽과 이슬람 국가들 관점에서 볼 때 결의안 통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참여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문은 많은 국가가 평화위와 안정화군에 참여할 경우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독점적 통제가 약화할 수 있다고 짚으며, 유럽·아랍국들이 "미국 대통령의 자아라는 호랑이를 타고 궁극적으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트럼프 대통령)를 이끌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관련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에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2국가 해법을 지지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 비영리단체 '이스라엘인권의사회(PHRI)'는 17일 보고서 및 보도자료를 통해 가자지구 전쟁 기간 동안 이스라엘 구금 중 숨진 팔레스타인인 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단체에 따르면 가자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7일부터 지난달까지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인 98명이 숨졌다. 이는 전쟁 발발 전 10년간 구금 중 숨진 팔레스타인인이 30명 미만임을 감안할 때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단체는 가자 전쟁 뒤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강제 실종 사례를 고려하면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사망이 "체계적인 의료 제공 거부 및 고문"으로 인해 초래됐다며 이는 "이스라엘이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는 의도적 정책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