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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과 점수로 통제되는 대리기사·라이더…그런데 왜 노동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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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과 점수로 통제되는 대리기사·라이더…그런데 왜 노동자가 아닌가

[李 정부도 외면한 노동자] ① 대리기사가 배민 로드러너 저지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면서도 프리랜서, 특수고용,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이들을 '노동자'로 추정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노동계는 정부가 준비 중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도 노동자 추정제는 담기지 않거나 의미없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 중이다. 또 차별을 조장하는 이상한 특별법 말고,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길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진지한 제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노동자라는 이름을 빼앗겨 권리까지 박탈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편집자

"대리기사가 소고기인가? 기사 등급제 폐지하라!"

지난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거래상지위남용 심사 지침' 개정을 요구하며 들었던 팻말이다.

당시 카카오모빌리티와 로지연합(대리운전업체 연합 플랫폼)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경쟁하면서 대리기사들을 충성도에 따라 등급으로 나눠 상위등급에 콜을 몰아주고 하위등급은 '똥콜' 처리반을 만드는 방식의 배정정책을 펼쳤다.

대체 어떻게 28만 명에 달하는 대리기사의 등급을 나누나? 놀랍게도 이렇게 엄청난 일을 알고리즘이 해낸다. 휴대폰에 설치된 앱은 알고리즘을 통해 24시간 대리기사의 동선을 수집해 마치 소 엉덩이에 도장을 찍듯이 등급을 정하고 가격을 매긴다.

알고리즘은 미션을 통과한 대리기사에게 인센티브가 되지만 미션을 통과하지 못한 대리기사에게 패널티가 된다. 미션은 어렵지 않다. 일단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쉽지 않나?

그러나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대리기사는 보통 두 세 개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정된 소득을 이어가기 어려운데 문제는 플랫폼마다 비슷한 미션이 동시에 제시되고 피크타임 동안 달성해야 하는 제한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근거리에 있는 하위등급 기사를 제쳐 놓고 멀리 있는 상위등급 기사에게 콜을 밀어주기도 한다. 등급을 유지하려면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 콜센터가 여러 플랫폼에 콜을 띄우고 먼저 도착한 대리기사가 해당 콜을 운행하는 경우 뒤늦게 도착한 대리기사들은 노쇼를 당하게 되는데 보상은커녕 콜 취소에 따른 알고리즘의 등급조정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리기사들은 언젠가부터 등급제 때문에 휴일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로그온을 한다. 점수를 높여놔야 한 주를 덜 쫓기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러나 등급제가 주는 압박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 가족의 생계를 지키려면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은 이러한 압박을 이용해 플랫폼노동자를 탈수기에 넣어 짜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달의 민족의 '로드러너'와 카카오T대리의 '점수보상제'는 닮았다. 플랫폼의 노동 통제와 착취율을 높이는 효율적인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떠한 미사여구를 앞에 붙이더라도 두 플랫폼 기업의 우선순위가 노동자의 안전과 생계에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배민의 '로드러너'로 인해 라이더의 배달료가 삭감되는 현상이 벌어지듯 카카오T대리의 '점수보상제' 또한 사실상 저가 콜 운행을 강요해 대리운전노동자가 받는 대리운전 운임이 사실상 삭감되는 결과를 낳는다. 안전과 생계는 플랫폼 기업의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이 대리기사와 고객의 매칭율을 높이고 대리운전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리기사와 배달기사는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이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을 통제해 착취율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고 있다.

출퇴근의 자유와 일하는 시간의 자유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제 알고리즘은 일감 배정과 보수를 결정하고 심지어 노동시간과 출퇴근을 통제한다. 그렇다면 왜 배달노동자와 대리운전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란 말인가?

노동법을 비껴가며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노동자를 언제든 꺼내 쓰고 버릴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대리기사들도 11월 25일 오후 3시, 배달의 민족 앞 로드러너 철회 요구 집회에 함께 한다. 플랫폼 기업의 계획을 저지하려면 더 많은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

▲ 플램폼노동자공동행동과 로드러너라이더대응팀은 오는 25일 서울 송파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플랫폼 특수고용 노동자 등 노동법 적용, 배민 로드러너 폐기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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