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1심 결과가 20일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장찬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관계자 27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폭력 행사 등과 같은 부분은 유죄가 인정됐지만, 주요 인물들 모두 국회법 위반 부분에서는 '의원직 상실형'을 피했다.
이쯤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검찰의 기계적 상소' 관행에 대한 비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고, 무죄 판결이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것 아닌가"라며 "왜 이렇게 방치하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밝힌 원칙이 이번에도 지켜지는 게 맞다. 먼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성격을 살펴보자. 이 사안을 단순한 형사 사건으로 보면 본질은 왜곡되고 만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됐음에도, 이를 실천할 주체들의 미숙한 운영과 진영간 극한 대립이 만들어낸 정치적 갈등으로 보는 게 맞다. 즉 이 사건은 명백히 정치 사건이다. 하지만 국회는 스스로 만든 '재앙'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법정으로 가지고 갔다. 넓은 의미의 '직무 유기'다.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경고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자꾸 수사 기관으로, 법정으로 가져가면서 우리 정치 문화의 극한 대립이 더 심화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물론 2019년 당시 여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선거법 등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폭력 사태 자체를 옹호해선 안된다. 실제 법원도 그런 부분을 감안해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의 부분에선 벌금형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나. 다만 법원이 국회법 위반 부분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 원을 밑도는 판결을 내린 것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한마디로 '법 위반'은 맞지만, 정치적 갈등의 고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의원직을 박탈할 정도로까지 죄질이 중하지는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19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런데 1심 판결까지 6년 7개월을 끌어왔다. 그 이유는 모두가 짐작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떠안게 된 사법부 역시 난감했던 것이다. 이 역시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사회의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국가 역량이 낭비된 부작용의 사례라 할 만하다. 정권이 두 번 바뀌는 기간 6년 7개월이 걸린 1심 판결인데, 2심, 3심까지 가서 발생할 '갈등 비용'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실익은 무엇일까?
'정치의 사법화'와 관련된 비판적 논문들은 구글 검색만 해도 줄줄이 나온다. '정치의 사법화'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과정으로 해소되는 현상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법 해석권한을 사법부가 독점하는 효과를 낳음으로써 법의 지배라는 정치원리를 형해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권분리에 입각한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2010년 전남대학교 오승용의 논문)"는 지적도 수차례 나왔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검찰 측에 항소에 신중하라는 의견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검찰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지론'과 법무부의 일관된 의견 제시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처벌받은 대부분이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정치권에서 '협치'의 계기로 작동하게 될 여지도 없지 않다. 이번 패스트트랙 사건 선고를 계기로 여야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자제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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