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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수의 '암울한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박민영을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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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수의 '암울한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박민영을 보게 하라

[박세열 칼럼] '토론 배틀'로 키워진 '싸움꾼'이 보수의 미래?

미국의 청년 보수라는 극우주의자 찰리 커크는 피살되기 전까지 대학을 돌면서 '토론 배틀'을 벌였다. 그가 내건 '배틀 필드'의 간판은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 봐"였다. 도발적인 구호다. 이를 통해 찰리 커크는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신화를 심어 놓았다.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 봐" 투어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걸 선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찰리 커크가 틀렸음을 증명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껏 한번도 그걸 증명한 사람이 없다고 결정하면 되니까.

이 극우 청년의 목적은 간단하다. '찰리 커크는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각인 효과다. 그래야 지지자들을 열광케 하고 돈도 긁어모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들이키게 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철학과 논리를 팔아 치웠던 것처럼.

이런 '청년 보수'의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 물론 주관적인 관찰의 경험이다. 우선 이들은 토론 자체를 '신성시'한다. 찰리 커크는 생전에 "우린 이 모든 것(토론과 발언들)을 기록하고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의 생각이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이 말을 멈추면 폭력이 발생한다. 내전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때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총칼 없이 말로 하는 '전쟁' 쯤으로 인식했다. 정치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소통'의 유일한 방식은 '전투' 뿐이며 그 전장에서 관용, 배려, 공감은 패배를 의미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찰리 커크가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 봐"라는 팻말을 들고 벌인 전국 순회공연도 그가 '불사신'임을 공인받을 목적의 선전전(戰)이었다.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이준석이 시작한 '청년 보수' 프로젝트가 '토론 배틀'로 시작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이준석은 '토론 전사'를 발굴하는 걸 '청년 정치 육성'으로 봤다. 그렇게 줄줄이 등장한 '이준석 키즈' 중 한 명이 최근 '장애인 혐오 발언 논란'의 당사자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이다. 이준석이 2017년 바른정당에서 주관한 '바른토론배틀' 우승자로 정치에 입문한 박민영은, 국회의장배 토론대회 등 무려 11개 토론대회에서 우승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준석은 국민의힘 대표가 된 후에 '나는 국대다 with 준스톤'이라는 이름의 토론배틀 대회를 열었다. 여기에서도 '토론 전사' 청년 보수 정치인들이 여럿 발탁됐다.

이준석은 자신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이런 이준석식 '능력주의'는 '토론배틀'로 가려진다. 말로 상대를 굴복시켜 1위를 차지하는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보수 정당의 '청년 정치'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청년 보수'들은 '토론 능력'이 곧 자신의 '전투력'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해하는 '정치'라는 건 총칼과 대포 대신 뇌관을 장착한 논리의 구조물을 상대에게 투척하는 '전장'이다. 합의와 양보는 '토론 배틀'에 낄 수 없다. 1등이 탄생하면 반드시 2등, 3등이 존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토론배틀은 '편가르기'를 전제하는 것이라, 이들은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굴복시키는 노력에 힘을 쏟는다. 정치는 협소해지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토론 방식'은 영악하다. 스스로 '보수'라고 규정하는 이들답게, 인류가 쌓아 올린 편견과 고정관념의 높은 고지 위에 참호를 판다. 넓은 시야를 확보해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전술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진격하려는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펼친다. 찰리 커크나 이준석의 전략은 편견, 불관용, 배제, 고정관념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약자들을 공론장에 올려놓고 사냥하듯 몰아붙인다. 상대가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게 승리다.

능력주의와 약자 공격, 그리고 파벌주의, 소수 인종을 겨냥한 찰리 커크의 발언들과 김예지 의원을 겨냥한 박민영의 발언을 보면 공통점이 많다. 극우 인사들의 발언을 추적하는 비영리 단체 '미디어 매터스 포 아메리카(Media Matters for America)'가 기록한 찰리 커크의 발언들은 한국의 '청년 보수 토론 전사'의 훌륭한 교과서다.

"고객 서비스 부서에서 멍청한 흑인 여성을 상대하게 된다면, 그녀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그녀의 탁월함 때문인지, 아니면 우대 정책 때문인지 궁금해진다." -찰리 커크 쇼, 2024년 1월 3일

"미셸 오바마, 쉴라 잭슨 리(판사 출신 흑인 여성 정치인. 소수자 우대 정책을 옹호한다.) 등을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대상자라고 말한다면 우린 인종차별주의자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내가 소수자 우대 정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한다... 스스로 '나는 내 능력으로 이 자리에 오를만큼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그래서 백인의 자리를 훔쳐야 했다는 말이다." 찰리 커크 쇼, 2023년 7월 13일

박민영의 욕설이 난무한 막말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해서 시각장애인인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을 겨냥해 "저는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을 해서 문제라고 본다"면서 "(비례대표 공천을) 전문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김 의원) 본인은 장애인이라 주체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배려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피해 의식으로 똘똘 뭉친 것"이라고 말했다. 찰리 커크의 논리와 판박이다. 박민영은 나아가 "막말로, 김예지 같은 사람이 눈 불편한 것 말고는 기득권"이라며 "오히려 그런 일부 약자성(장애)을 무기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 국회의원 신동욱은 "공교롭게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영을 보면서 전 세계 극우화 동조 현상을 목격 중이다. 이들은 '소수인종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찰리 커크)이라거나,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박민영)이라며 '소수자 정책'의 진지한 접근법을 역이용해 조롱한다. 편견이 쌓아 올린 고지 위에 서서 소수인종이나 장애인 정책의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구조적 차별'에 관한 지적 탐구 활동을 혐오하며 '(장애인 할당과 같은) 우대도 차별이다'라고 주장한다. 앙상한 논리의 뼈대만으로 직조한 폭탄을 투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우린 '반지성주의'라고 한다.

박민영을 옹호하는 보수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보면, 그가 원하는 반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일종의 '도그 휘슬'이다. "김예지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게 머가 있어요? 장애인이니까 그저 해줘법안들뿐이네요", "(김예지가 낸) 법안 내용 보면 하나같이 나라 곳간 퍼주는 내용인데 지탱 가능할까요?" 능력주의의 기준은 '국가 경쟁력 도움'이고 장애인은 방해물일 뿐이다. 소수 인종이나 장애인 우선 정책은 '정당한 능력을 가진 정상인'이나 '백인'들의 자리를 훔쳐낸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보라. 증명하지 못한다면 나는 옳은 것이다'라고 한다. 박민영은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나를 비난하는 것은 한동훈 팬들이다'라는 갈라치기다.

애초에 이준석 류의 청년보수 프로젝트가 '토론 배틀' 따위 예능 수준이었으니, 그 결과물은 '박민영'같은 'AI급 토론 전사'들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을 건조한 논리 구조물로 이해하고, 도그마에 갇혀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라"고 윽박지르는 수준이다. 그러니 같은 팀이라도 '정적'으로 규정만 하면 '논리력'으로 무장한 '토론 전사'들이 무차별 난사한다. 이게 '토론 배틀'로 키워진 청년 보수의 실체다. 누가 보수의 암울한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박민영을 보게 하라.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국민의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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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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